어떤 의사

보건소장 승진에서 탈락된 이희원 전 제천보건소 의무과장 ⓒ 최영석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11월이었다. 온 국민의 염원이던 국가인권위원회가 드디어 문을 여는 날이었는데, 그 첫 진정인은 다름 아닌 의과대학 교수였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인권위가 ‘개시’하기만을 기다린 그의 손에 들린 진정서에는, 자신의 제자가 제천시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 행정기관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의 척도를 그대로 가늠하게 해주었던 사건. “장애인이기 때문에 시 전체의 보건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충북 제천시의 ‘친절하고 자의적인 배려’로, 보건소장에서 탈락한 제자 이희원(39)씨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참담하고 아팠다.
김용익(49)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인권위 첫 진정인으로 여러 언론에서 소개된 그를 만났다. 그는 부나비처럼 몰려다니는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고, 관심의 대상이 된 사실을 불편해했지만, 제자를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할 의지를 보였다. 무엇보다 그 스스로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의 지난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낮지만 단단한 그의 목소리가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로부터 몇달 뒤, 나는 그의 소식을 다시 한번 언론에서 접했다. 그가 대한의사협회로부터 2년 동안 회원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의약분업에 참여했고,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고 의약분업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조했다. 대한민국 의사집단 가운데 가장 힘이 세다는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그에 대한 징계건의서에 이런 이유를 달았다. “궁극적으로 의료기관의 사회소유를 획책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의료 공공성 확보라는 미명으로 획일적 통제 아래 두려 한다.” 동료 의사들은 의약분업 강행, 의료수가 인하 등을 주장한 그의 행동을 ‘동업자에게 해를 끼치는 반역 행위’ 나아가서는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적’ 행위로 받아들인 듯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홈페이지
그리고 또 어떤 의사
그는 지방 국립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2년, 레지던트 4년, 그리고 군복무 기간을 대신해 시골 보건소에서 3년 동안 근무한 뒤 얼마 전 서울에서 가까운 도시에 개인병원을 열었다. 아마도 그는 김용익 교수를 의사협회에서 자격 박탈하도록 한 개원의협의회 회원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이 의대 입학과 함께 돈과 명예의 빨간 카펫이 저절로 깔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를 통해 알았다. 그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의사로 밥벌이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그 길고도 지난한 수련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해도해도 끝없는 공부, 생명을 다룬다는 책임이 몰고오는 끊임없는 긴장,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늘 그를 따라다녔다.
보통의 상식과 30대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상식 있는 보통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그는 대한민국에서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신문을 구독하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으며, 환자를 대할 때도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한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여의도에서 열린 의사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의료수가 인상을 촉구하고, 정부의 의료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집회였다. 역시 같은 30대로, 보통의 상식과 나름의 가치관을 가진 그의 아내는 집회에 가는 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의사이기 전에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회문제들, 가령 재벌들의 재산은닉이나 족벌경영, 정치인들의 부패와 합종연횡, 군대 문제나 반미에 있어서 그와 나는 이야기가 비교적 잘 통하고 느끼는 지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의약분업 문제에 있어서는 그와 나 사이에 어떤 이야기도 오가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묵계다. 가족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인 셈이다. 그러나 의사를 가족으로 둔 사람 이전에 나 또한 의약분업의 테두리 안에 있는 국민의 한 사람이고, 언제든 병원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예비 환자다. 분기마다 오르는 의료보험료를 보며 분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30분 대기, 3분 진료의 싸이클에 또 한번 분노하지만, 내 분노가 닿을 곳은 지극히 모호하다.
의사들, 의사들, 의사들
의사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히포크라테스
첫번째는, 김용익 교수의 의사협회 징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그들이 의약분업을 ‘사유재산제도의 부정’이자 ‘공공성 확보라는 미명 아래의 획일적 통제’로 보는가, 그리고 두번째는 ‘의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품고 있는가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의약분업을 불편하지만 괜찮은 제도, 시행해야 할 제도로 여기고 있는 것을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것은 곧 의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의사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곰곰 생각해보니 말 많고 탈 많던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사들이 보여준 것은 말보다는 행동이었고, 이해보다는 힘이었다. 왜 의약분업을 하면 안되는지, 왜 그들이 결사적으로 그걸 막으려 했는지 한번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디로 흩어졌을까. 오랜 세월 책만 들여다보느라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탓일까, 혹시 나름의 논리로 무장한 의약분업 지지론자들에게 지레 겁먹고 집단의 힘 뒤로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회적 공감과 가족으로서의 동감, 그 간극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조만간 나는 나와 가까운 그 의사에게, 용기를 내서 물어볼 참이다. 도대체 의사란 무엇인지. 치료행위란 무엇이고, 의사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힘은 무엇인지. 의약분업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의사와 국민이, 한 의사와 다른 의사들이 버티고 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듣지 않고서는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지점은 이해와 믿음이 아닌, 순전한 기술과 기능일 뿐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제는 의사들이 대답해야 할 차례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