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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커뮤니티>독자통신

첫 모국 방문에서 찾은 세 가지 뿌리 / 변기자

2008.12.08커뮤니티 > 독자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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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몽실 언니』를 일역한 재일 번역가이자 동화작가인 변기자씨의 고국 방문기를 싣습니다. 변기자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 국적을 가지고 그동안 고국 방문의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얼마 전 ‘한일 아동문학 교류 쎄미나'(2002.9.28 출판문화회관)에 초청을 받아 60여년 만에 고향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아아, 정말로 꿈속에서도 그리워했던 내 나라, 어머니 품안에 안길 때가 왔구나! 비행기에서 이제부터 밟게 될 땅바닥이 보이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모국으로 불러주신 ‘한일아동문학연구회’와 창작과비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이 글을 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뿌리를 찾아서

 

‘한일 아동문학 교류 쎄미나’에 참가한 다음날 아침 일찍이 고향인 대구로 향했다. 대구공항에 내리자마자 무엇보다도 먼저 아버지가 그처럼 자랑하시던 새파란 가을하늘을 우러러봤다. 그리고 나선 내 고향 대구의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 그곳에서 들은 첫소리. “여 길을 건너 저짝에서 버스 타이소.” 이 길이 여 길, 저쪽이 저짝, 타시오가 타이소. 정말이지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 그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니 참으로 내가 경상도에 왔다! 대구에 왔다! 내 뿌리가 있는 데에 왔다! 는 실감이 났다. “어디 가시는기요? 침산동? 거긴 내 시갓집이 있는 데요” 하시면서 마을 이름, 다리 이름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친절한 아주머니. 시장 골목에서 갑자기 일어난 싸움판. “뭐라카노! 와이카노 여놈 새끼!” 빙 둘러서 싸움 구경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아이구, 무시라!” 소리.

색색이 예쁜 저고리에 이끌려 들어간 한복집 아주머니는 한참 동안 신세타령을 하시다가 “해방 후 나도 여기저기 다니다가 고향으로 왔소. 당신이 자기 뿌리 있는 데를 찾으려는 심정, 잘 알아요. 앞으로는 자주 오이소” 하시며 가게에서 몸을 내밀어 손을 흔들어주셨다. 택시운전사 아저씨는 침산동에 들어가면서 “옛날엔 여기가 미나리밭이었어, 저짝은 전구지(부추) 밭이었어” 라고 동네 안내를 멋지게 해주셨다. 그 덕분에 빌딩이야 주택가로 변해 옛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침산동에 서 있으면서도 마치 1930~40년대 침산동을 상상할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쎄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필자

그날은 어딜 가도 귀에 익은 경상도 사투리 속에서 지낸 하루였다. 생각해보니 본적지 경상북도 대구시 침산동, 이 글자를 여태까지 몇번이나 썼을까? 학교에 낸 서류, 취직할 때 서류, 외국인 등록 신청할 때 서류 등등. 글자 속에만 있는 고향.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고향. 그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한없이 희박하게만 한다. 식물이 뿌리가 있어야 자라나듯, 사람도 뿌리가 있어야 똑바로 잘 설 것이 아니냐! 그 뿌리를 찾는 데 6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길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기에. 그 뭔가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장애물이라면 사람의 손으로 없애버려야지. 이번에 날 모국에 불러주신 분들처럼.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 분들께.

 

‘몽실이’의 뿌리를 찾아서

 

안동으로 가는 저녁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나한테 길을 묻지 않겠는가! 남한테 길을 물어물어 여기까지 온 나한테 말이다. 신바람이 났다. 하루 대구에 있었더니 나도 대구 사람이 되었나봐! 뿌리를 찾았다는 걸 더욱 실감나게 했다. 그 여학생에게 길을 가르쳐줄 때의 그 기분이란!

고속버스는 정각에 출발했다. 안동을 향하여. 길가에는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안동시란 도로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이제 권정생 선생님이 계시는 곳, 몽실이 고향이 다가왔구나…… 『몽실 언니』를 번역하면서 수십번이나 그려봤던 그곳, 얼마나 보고 싶던 곳인가! 얼마나 뵙고 싶던 분이었던가! 그곳에 간다. 그분을 뵙게 된다.

동화작가 권정생

동화작가 권정생

드디어 조탑리에 도착했다. 안내를 해주신 ‘길벗어린이’의 고 주간님이 똑똑 문을 두드리면서 “선생님, 계세요?” 라고 하니, “예, 들어오세요”란 말소리와 함께 권정생 선생님이 방안에서 나오셨다. 셋이 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긴장이 안되었다. 막 긴장할 것이라 각오하고 왔는데. 지금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치 동네에 사시는 삼촌이라도 찾아간 기분으로 이말 저 말을 한 것 같다. (권정생 선생님, 혹 실례를 범했다면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댁을 나서면서 보니 소박한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댁 울타리에는 노랑 호박꽃이 피어 있고, 마당 앞으로는 연보랏빛 들국화랑 참억새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여기가 몽실이 태어난 곳, 여기에 몽실이 뿌리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면서 몽실이의 뿌리가 있는 데가 여기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한없이 사랑한 몽실이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실이 태어난 집을 방문한 기념으로 선생님 댁 길가에 핀 들국화를 한두 송이 따고 있는데, 차를 타신 줄 알았던 권정생 선생님이 뒤에서 “이게 향기도 좋고 예쁘기도 하지요” 하시며 붉게 물든 노을빛깔의 꽃을 내미셨다. 정말로 은은한 향기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몽실이가 영순이에게 꽃다발을 만들어 준 장면이 떠올랐다. 댓골로 가는 그 장면이! ‘초가을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조이삭이 패고, 수수이삭이 팼다. 댓골 가는 고갯길에 과남풀꽃이랑 달맞이꽃,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이 피어 있었다. 몽실은 꽃을 따 모았다. 영순이 갖다 줘야지―’ 때마침 가을이고, 권정생 선생님이 몽실이고 내가 영순이? 너무 뻔뻔스런 상상인가! 허허허.

점심을 먹고 안동민속박물관을 구경한 뒤, 선생님과 헤어졌다. 시내로 가시는 권정생 선생님의 뒷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면서 아아, 몽실은 권정생 선생님의 삶 속에서 태어났고 자라났다고 다시금 재확인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뿌리를 찾아서

 

서울 마지막 날, 우리들을 태운 차는 곧장 망향의 동산으로 갔다.

1997년12월16일 새벽. 전화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서울에서 온 김학순 할머니의 서거를 알려주는 전화였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수화기를 다시 들고 여러 군데에 통지를 했다. 서울로 갈 채비를 서둘러 마치자마자 다들 서울로 향했다. 나 혼자 남았다. 그날 밤 김학순 할머니가 어머니와 헤어질 때 받으셨다는 스웨터 색깔과 비슷하게 물든 은행나무 밑에 오래오래 서 있었다. “왜, 왜, 나는 못 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창밖을 보며 5년 전 일을 상기하고 있는 내게 황금주 할머니가 말을 건네셨다. (황금주 할머니 역시 종군위안부로 끌려가셨던 분.) “변기자, 잘 왔다. 학순이가 좋아할 거야. 근데, 내 무덤이 바로 학순이 옆이니까 내 죽은 뒤에도 오늘처럼 꼭 찾아와야 해. 응, 알았어? 내 부탁이야.” “네……”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할머니들은 10년 전에 처음 뵌 그날부터 늘 자기 죽은 뒤를 걱정하신다. 가족이 없는 까닭에, 한많은 삶인 까닭에.

일본 국회에서 종군위안부란 것은 없었다고 전면적으로 부정했을 때 “거짓말 마라! 여기, 내가 있다. 산 증인 내가!” 라며 나서신 김학순 할머니. 세상의 온갖 멸시와 차가운 시선을 각오하시면서 닫힌 역사의 문을 열기 위해 박차고 나서신 김학순 할머니. 그 용기와 정신이 망향의 동산에 뿌리박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의 뒤를 이어 한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등지에서 속속 피해자들이 나왔고, 그들의 단결된 힘은 전쟁의 진상규명을 추궁하고 있으며,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김학순 할머니! 할머니가 뿌리신 씨앗은 여기저기서 뿌리내려 자라나고 있으니 안심하고 고이고이 주무세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국 첫방문에서 찾은 세 가지 뿌리. 소중하고도 소중한 뿌리. 그 색도 모양도 크기도 제각기 다르다. 다르지만 그것들은 하나. 각자 자기 뿌리를 소중히 하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떳떳하게 살아보자! 삼천리 강산에 우리 하나하나의 꽃을 피워 보자! 아름답게. ㅡ 2002년10월, 우리 땅에서 여러분과 다시 뵐 날을 기대하면서 [창비 웹매거진/2002/11]

권정생, 몽실언니, 변기자, 종군위안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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