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국경을 넘는 것, 일찍이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땅으로 이어지는 국가들에 대한 상상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안과 밖을 쉬 넘나드는 것에 대한 개념의 부재. 미국과 접한 멕시코의 북쪽은 서로 다른 역사와 언어와 문화를 나누는 선이 분명할 터인데 과떼말라로 넘어가는 남쪽은 ‘국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넘어야 할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다. 양 국가의 한쪽 귀퉁이에 초소와 몇몇 경찰이 있을 뿐.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는 멕시코 쪽으로의 이동은 좀더 복잡한 검문을 하지만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자유롭게 양쪽을 오가며 장을 본다든가 병원을 오가는 등의 일상을 영위한다. 과떼말라와 접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를 지나 저 남단의 칠레, 아르헨띠나에 이르기까지 이 공간의 개념은 확장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많은 지역의 이름, 즉 한 국가에서 볼 때 안과 밖의 구분은 19세기와 20세기의 정치적 산물인지라, 그 이전부터 형성된 소속감으로 인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국가에 자국 민족주의가 강하게 존재함에도, 또한 라틴아메리카라는 이름에 대하여 강대국 정치와 상상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있음에도 여전히 이곳에서 라틴아메리카라는 말은 그들의 정체성을 묻는 화두이다.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이 물음은 아마도 스페인의 식민통치 이후로 계속되어왔던 듯하다.
스페인어의 정체성(identidad)은 라틴어의 ‘동일한 것’이라는 말에서 왔다. 정체성에 대해서 묻는다는 것은 자신을 타자와 동일시하는 과정 정도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집합적인 의미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지배문화에 대항하는 집단으로부터 생겨났다. 누군가와 혹은 어떤 집단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 집단에 포함되지 않는 또다른 타자의 존재 없이 가능하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역사적으로 이 배제되는 타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 사회에서 80년대 한국 대학사회에서의 “이 자본주의적인……”과 맞먹는 비난으로 여겨지는 유럽중심주의자 혹은 인종주의자라는 말이 이들의 역사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의 일부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멕시코에서도 미국에 대한 문화적인 동화(同化)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흔히 정복 혹은 발견으로 정의되는 콜럼버스와 에르난 꼬르떼스(Hernan Cortes) 등의 식민주의자들의 도착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두 세계의 만남’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언어와 문화를 한쪽 부모로, 원주민의 세계관과 언어 및 문화를 다른 부모로 태어난 융합이 이들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상적인 문화이고 자신의 정체성의 근거로 삼는 것이지만, 이 공존이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실현되었다면 치아빠스의 사빠띠스따 혁명군과 같은 장기적인 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지역을 넘어서서는 패권 국가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가 내부에서는 지배집단과 원주민과의 길항관계 속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은 복잡한 가지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부감들도 있다. 이에 관한 일화. 멕시코의 어떤 인터넷 토론 페이지에 누군가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어떤 식의 통합이 가능한가’라는 제목을 달자 처음에는 ‘중미 연방이 가능한 이유’로 토론이 시작되었는데 곧이어 ‘어느 나라랑 어느 나라는 공존하기 힘들다, 파나마 사람들은 도둑놈들이고 아르헨띠나 사람들은 거만한 인종주의자이며……’ 식의 글들이 줄을 이었고 그 뒤에 ‘너 베네수엘라 출신이지?’ ‘칠레지?’로 이어지더니 무척 오랜 기간의 상호 비방 끝에 ‘이래서 통합은 어렵다’는 글이 올라온 걸 본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콜롬비아에서 온 한 친구는 아주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외부의 적들에 대한 적대감을 동일시하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 적대감이 당연히 미국을 향한 것이려니 했더니 꼴롬비아와 국경을 접한 나라들, 즉 베네수엘라와 에꾸아도르가 대상이었다고 한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언어가 다른 브라질에 대해서까지도 지역적인 연대를 배우고 느낀다. 다만 곳곳의 연대의 내용이 단일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보다 폭넓은 지역적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배경으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꼽는다. 언어와 문화적 일체감 외에도, 근대 유럽의 팽창주의와 이를 견제하는 미국에 대한 대항의 의미로서의 라틴아메리카라는 것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공동의 적에 대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일체감이 이들의 정체성을 재정의한다고 할 수 있다. 배제적인 타자를 염두에 둔 탓인지 이들의 정체성은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다. 멕시코에서는 사빠띠스따들의 집회조차 멕시코 국가로 시작한다.

호세 엔리케 로도의 저작 Ariel의 표지와 목차
80년대 군사정권의 잔인한 학살을 피하기 위해 밤을 도와 산을 타넘으며 걸어걸어 도착한 멕시코에서 과떼말라의 원주민들이 자신들과 같은 풍습에 같은 원주민어를 쓰는 깔리반들을 만났을 때, 더 거슬러올라가면 마찬가지로 독재를 피해 멕시코로 망명한 6,70년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담론 속에서, 그들이 살던 공간, 살고 있는 공간은 라틴아메리카라는 범주 속에서 새롭고 해석되고 창조된다.
이러한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국 사람들도 스스로를 아시아인으로 규정하느냐고 이곳 사람들이 물어올 때가 있다. 옛적에 “아시아의 젊은이여”를 노래하던 조용필이 잠시 스쳐가고 그 노래가 행사용이었던가 정치적이었던가 했다는 확실하지 않은 기억도 스쳐가고, 최근의 동아시아 연구도 떠오르지만,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으로서 아시아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라틴아메리카인들과 우리의 차이가, 땅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공간 개념이, 시간을 약간 거슬러올라가 이태준이나 김동환 시절의 한국, 중국,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기껏 아시아에 대한 상상력은 이들 나라에서 머문다.) 한국에서는 국경을 다른 곳으로의 이동 수단으로 생각해본 경험마저도 없어, 이태준이 「만주기행」을 쓸 무렵이나 김동환이 「국경의 밤」을 쓰던 무렵을 상상하려 해본다, 머나먼 곳 멕시코에서. 대상으로부터의 거리가 주어져야 그 대상이 좀더 눈에 들어오는 이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