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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커뮤니티

8·15 민족통일대축전 북한방문기[1] / 도종환

2004.01.01커뮤니티 > 창비웹진 > 시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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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과 평양에서 있었던 8•15 민족통일대축전 참가차 평양을 방문했던 도종환 시인이 100여매에 이르는 방문기를 창비 웹매거진팀에 보내왔다. 보수적인 국내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로 인해 참가인사의 구속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당시 상황을 시인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이 글은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1주일에 한번씩 업테이트). – 편집자

 

8월 15일 인천공항을 떠나며

 

8·15 민족통일대축전 북한방문기[1]

8·15 민족통일대축전 북한방문기[1]

탑 승구 출국 수속장 전광판에 박힌 ‘평양행’ 세 글자를 사람들은 사진으로 찍는다. 오늘은 해방 56주년이 되는 날이다. 흐린 날씨에 연회색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비행기가 움직인다. 기내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 모두들 수만 가지의 감회가 가득하리라.

차이와 차별을 넘어, 분단 5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는 간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철조망도 쳐 있지 않고 지뢰도 묻혀 있지 않은 푸른 하늘을 날아 북조선 영공으로 들어갈 것이다.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은 수묵화의 짙은 먹빛이다. 아름답다. 고도 7925미터 상공을 시속 835킬로미터로 가고 있고 평양의 기온은 22도라고 안내하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린다.

 

북녘의 푸른 산하가 눈에 들어온다. 경지정리가 잘 된 논과 그 사이의 길들이 보인다. 구름의 그림자가 짙은 빛깔로 땅에 드리워져 있다. 아, 똑같은 산하. 똑같은 빛깔의 들과 똑같은 빛깔의 흙이 보인다.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한 가지 빛깔의 하늘과 구름 아래 똑같은 숲과 나무 이런 것이 제일 먼저 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이 모습이 왜 이렇게 반가울까. 구름이 흘러가는 여유로운 속도, 산맥 위에다 만드는 구름그림자의 빛깔, 사행천으로 흘러가는 물줄기, 하늘빛깔을 품고 있는 호수, 길가에 늘어선 나무의 푸른 허리도 모두 똑같은 북녘의 산천이다.

 

도착을 하는 순간 기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절로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지금 시간은 13시. 옥수수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들이 보이더니 활주로 옆에 하얀 망초꽃이 다복다복 모여 피어 있다. 노란 달맞이꽃도 예쁘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50년이 넘어서야 왔다.

 

평양의 첫인상

 

평양의 순안공항. 마중나온 평양시민들로 가득했다  ⓒ 민족문학작가회의

평양의 순안공항. 마중나온 평양시민들로 가득했다.
ⓒ 민족문학작가회의

순안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길가의 풍경들이 순박하다. 미루나무도 그렇고 수수밭도 그렇다. 순박한 풍경 속을 걷는 수수한 차림의 얼굴들이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우리 차량 행렬을 알아보는지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많다. 평양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슬로건들이다. 평양의 거리는 구호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슬로건과 프로파겐더로 이끌어가는 도시. 그렇게라도 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도시.

 

욕망과 당근으로 이끌어가는 서울과 비교하면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도 있겠다 싶다. 평양의 도시 전체의 색깔은 회색이다. 연한 회색, 그늘진 회색, 퇴락한 회색이 섞여 있다. 그러나 그 속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의지를 담고 있는 빛깔이다. 담담하게 견디고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 빛이라는 생각도 했다. 서울이 욕망의 빛깔, 온갖 현란함과 어지러운 빛깔, 유혹과 타락과 탐욕이 뒤섞인 빛이라면 평양의 빛은 그것들을 털어버리고 담백한 자존심으로 서 있는 승복 빛이다. 스님의 등뒤에 헐렁하게 매달린 바랑의 빛이다.

 

곤혹스러운 개막식 행사

 

저녁에 고려호텔 로비는 술렁거렸다. 8•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 개막식이 끝난 줄 알았더니 아직도 10만 군중이 밥도 거른 채 여섯 시간째 남측 사회단체 대표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장인 김종수 신부는 안된다고 갈 수 없다고 북측에 대답했다. 남측의 사정을 이해해달라는 말이었다. 통일운동의 폭이 요것밖에 안되느냐, 그럼 돌아가라,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장소를 옮겨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잔칫집에 와서 당신 집 안방에 갈 수 없으니 옆집 마당으로 옮겨달라는 게 예의냐 이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오고갔다. 의견이 분주하자 김신부가 그럼 이 문제에 대해 주석단(대표단)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회의를 소집했다. 대표단이 회의를 하러 가고 난 뒤 북측에서는 각 분야별로 남측 사람들을 붙들고 설득을 하였고 통일연대측 인사들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차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차는 출발해버렸다. 물론 참석은 아니고 참관을 하러 간다고 하였다. 다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몇몇은 가서 참관을 하는 게 북측에 대한 예의라고들 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심정도 착잡하고 무거웠다. 참관하러 간 사람은 통일 열망이 간절하고 선명하며 가지 않은 사람은 통일 의지가 미약하고 기회주의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부가 회의를 하고 있으니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북의 김영남 위원장이 주최하는 저녁 만찬은 11시가 넘어서 시작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북측 민화협 관계자가 참석 여부를 물어왔을 때도 마음이 유쾌하지 않았다. 남측 내부사정과 언론사 사주를 구속하기 직전의 상황이라서 정부가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며 언론과 큰 싸움을 하고 있어서 행동을 자제해야 하는 걸 이해해달라, 이런 설명을 하고 있어야 하는 내 모습이 구차스러워 보였다. 만남 그 자체가 기쁘고 감격스러워야 하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다.

 

8월 16일 청년중앙회관에서

 

오전에 청년중앙회관에서 청년학생연대회의가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남북 해외의 청년학생들이 통일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행사 겸 문화공연이 있었다. 공연은 남쪽의 대학생들 집회에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통일의 열기만은 뜨거웠다.

 

청년영웅도로 건설 기념화. ⓒ 민족문학작가회의

청년영웅도로 건설 기념화 ⓒ 민족문학작가회의

공연 중에 복도로 나와 거기 전시된 대형 기록화들을 보았다. 처음엔 그저 흔한 선전 기록화이려니 생각하고 그림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 1998년 중반부터 2000년 초까지 일 년 반에 걸쳐 뚫은 평양 남포 간 10차선 고속도로 공사의 내용을 담은 기록화였다. 5만명의 남녀 청년들이 자원하거나 추천을 받아 무보수로 노동해서 완성한 대공사였다. 백화점 여직원을 하다 배낭 하나를 메고 나오거나 건물보수사업소에서 일하다 어머니에게 쪽지편지 한 장을 남기고 나와 착암기를 쥐었다고 한다. 천막생활을 하면서 삽과 곡괭이와 햄머와 마대자루와 질통을 지고 5만명이 달려들어 산을 평지로 만들고 골짜기를 메우며 다리를 놓는 건설공사, 이들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도로를 닦았다. 기록화 밑에 전시된 공사도구들을 보며 나는 북한의 청년들이 무서웠다. 양쪽이 뭉툭해진 햄머들, 휘어진 정과 날이 사분의 일쯤 닳아 없어진 삽, 수십번을 꿰맨 운동화며 본래의 천보다 덧댄 헝겊이 더 많은 마대자루 이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들이 공사장에서 죽으면 어머니가 다시 나와 마대자루를 졌고 공사 중에 다쳐 눈을 잃으면 옆에 있던 여자가 당신과 평생 살겠다고 나섰다. 오경선과 황수연이란 남녀가 그렇게 결혼을 했다.

 

무섭고 안타까웠다.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기계를 동원하여 과학화•기계화한다면 훨씬 덜 고생을 하며 더 단단한 도로를 건설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는 안되는 것인가 하는 점과 이들의 이러한 견인불발의 의지와 남쪽의 자본과 기술이 합쳐져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남북 작가 예술가들의 만남

 

왼쪽 두번째부터 도종환, 신현수, 조정호, 황석영, 김보행, 정희성, 남대현, 김준태, 오영재, 정도상  ⓒ 민족문학작가회의

왼쪽 두번째부터 도종환, 신현수, 조정호, 황석영, 김보행, 정희성, 남대현, 김준태, 오영재, 정도상 ⓒ 민족문학작가회의

옥류관에서 점심으로 냉면을 두 그릇이나 먹고 오후에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료전시회가 있는 인민문화궁전으로 갔다. 전시회 행사 후에 남북작가의 만남이 있었다. 북에서는 작가동맹 부위원장인 소설가 김보행씨, 오영재 시인, 문학평론가 조정호씨, 『청춘송가』의 저자인 소설가 남대현씨 등이 나왔고 남측에선 정희성 시인, 김준태 시인, 황석영 소설가, 신현수 시인 그리고 내가 참석했다.

 

우리는 1989년 시도하다 무산된 작가회담 제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가능한 이른 시간 안에 작가회담이 개최되기를 희망한다는 것, 그게 안되면 시인들의 시낭송회 같은 행사라도 하자는 것 등을 제의했다. 북측에서 나온 조정호 박사는 자기도 1989년 작가회담 때 나갔다고 했고 이것을 시작으로 알고 자꾸 모이자는 말을 했다. 특히 이 시기에 통일을 주제로 한 시를 창작하자는 제의와 작품도 교환하자고 했다. 30분 정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남북 교류가 있을 때마다 문학도 만나자는 것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때도 문학이 곁들여지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영재 시인도 이 말에 동의를 하였다.

 

5시 30분 경 봉화예술극장에서 관람한 남북 문화공연은 북의 공연예술이 얼마나 뛰어난가 하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남측의 가수 이정열도 노래를 잘하고 임수경의 시낭송도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봉선화」를 부른 북측 가수 성난희의 목소리에서 배어나오는 비극적 아름다움 그 비장미에 압도되었고, 「눈이 내리네」는 공연 후에도 남측 예술가들의 입에서 찬사가 쏟아진 훌륭한 작품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기슭, 하얀 옷의 정령, 또는 영혼의 상징처럼 보이는 여인들의 군무, 그리고 그 가운데 붉은 기를 든 여전사, 하얀 배경 위에 선명한 색상 대비를 이루는 붉은 색, 그 속에 녹아 있는 예술성과 운동성의 조화,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주제를 드러내는 예술의 한 전형을 「눈이 내리네」는 보여주고 있었다.

 

폐막식 행사 참여 논란

 

저녁에 민족통일대축전 폐막식 행사 참여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통일연대 측에서는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화협이나 7대 종단에서는 지도부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측 전체 단장인 김종수 신부는 남쪽 언론 상황을 거론하며 안되면 내일 비행기를 보내달라고 해서 다들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양쪽 입장을 잘 정리한 것은 소설가 황석영씨였다. 어제 저녁 개막식 행사에 일부가 참여하여 북측에 어느 정도 예의를 표했고 지도부는 참가 불가의 입장을 가지고 회의를 하고 있었으므로 남측에 대해서도 신뢰를 지킨 것이니 오늘 저녁 폐막식 행사는 참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합의서라든가 부문별 성과를 안고 가야지 내일 비행기로 돌아간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했다. 우리가 놀러 온 것이 아닌 이상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을 통해 막힌 남북대화의 돌파구를 열고 사회 각 분야의 통일운동의 물꼬를 트는 약속들을 하고 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8•15 통일대축전 직후 발간된 남측 일간지

8•15 통일대축전 직후 발간된 남측 일간지

그러다가 대표단 30명이 폐막식에 참석하자는 안과, 우리 모두가 가되 행사장까지 들어가지는 말고 다리 앞에서 북측을 나오라고 해서 거기서 함께 만나자는 의견이 나왔다. 최종적으로는 대표단만 폐막식에 가기로 하고 출발을 했는데 이미 행사가 끝나 밀려나오는 군중 때문에 차량이 진입을 할 수가 없어서 되돌아왔다. 그런데 17일 아침 남쪽 신문에 방북단이 두 쪽으로 분열되었다는 것을 포함해 기사 내용이 더 안 좋아져 이런 상황하에서 관광이나 다니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여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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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북한방문기,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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