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창비 좋은어린이책 독서감상문대회 대상
『장군님과 농부』를 읽고
파주 해솔초등학교 4학년 염효제
권정생 선생님의 책들은 어려서부터 읽어서 이 책 역시 낯설지 않고 기대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책은 『황소 아저씨』, 『강냉이』, 『길 아저씨 손 아저씨』이다. 특히 『황소 아저씨』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 동생들을 생각하는 생쥐와 그런 생쥐들을 포근히 감싸주고 자신의 밥을 나눠주는 황소 아저씨의 마음에 나도 덩달아 따뜻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런 비슷한 기대감을 갖고 읽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많이 달랐다. 마음보다는 머리에 뭔가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다시 책 겉표지를 살펴보자 여러 가지가 더 궁금해졌다.
제목이 왜 장군님과 농부일까? 사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누군가 연필로 제목에 낙서를 해 놓았다. ‘장군님과 농부’라는 제목에 장군님의 ‘님’자에 가위 표시를 하고 농부에 ‘님’자를 붙여놓은 것이다. 나는 처음에 ‘누가 책에 낙서를 했지?’라고 기분이 좀 불쾌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님’은 누군가를 높여 부르는 말에 사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장군은 장군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농부가 더 훌륭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책을 읽은 누군가도 장군보다는 농부를 ‘농부님’으로 높여서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도 역시 같은 생각이다. 비록 낙서를 한 것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제목에도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궁금한 것은 표지 그림이었다. 이성표 화가 선생님께서 농부를 크게 그리고 장군님을 작게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장군님이 높은 사람이니까 장군님을 크게 그려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농부를 크게 주인공처럼 그리고, 장군님은 농부의 모자 끝에 초라하고 볼품없이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리셨다. 한참을 바라보니 제목과 그림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권정생 선생님께서 제목을 ‘장군님과 농부’라고 지으신 것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해 보라고 일부러 이렇게 지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표현하시고 싶은 의미가 있고 이것을 화가 선생님께서 눈에 보이도록 그림을 그리신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나는 장군과 농부를 비교해서 장군에 대해 비판할 점을 많이 발견하였다. 아무래도 장군은 ‘장군님’이라고 높여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비겁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농부도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와 장군에 대한 비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장군은 전쟁 도중에 부하들과 백성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기 위해서 혼자 도망쳤다. 나는 장군이 정말 의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농부는 ‘잘했다’라고 칭찬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농부가 너무 장군 편만 드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부하들과 백성들을 버리고 온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결정으로 옳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거나 부하들도 같이 살아나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농부가 조금 어리석게 느껴졌다.
둘째, 장군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마을에 도착해 농부를 만났을 때, 이 농부를 다스리고 부릴 수 있는 하인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 ‘부릴 수 있다’는 말이 조금 부정적이고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꼭 장군이라고 해서 농부를 부리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들은 원래 평등한 관계였다.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를 보면 다스리는 사람도 없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부족을 이루며 살면서 무리를 다스릴 우두머리가 필요했고 그때 지배 계급과 지배를 받는 계급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신분제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안정을 위해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을 부리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물론 요즘 사회는 다행히도 평등사회이다. 이 이야기에서 장군이 전쟁터에서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전쟁터가 아닌 데도 농부를 부리고 명령하는 것은 차별이고 잘못되었다. 그런데 농부는 뭐라고 하지도 않고 당연하게 장군을 모신다. 나는 여기서 농부도 잘못한 것 같다. 도와주고 보살펴 주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장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농부만 혼자서 일하고 할아버지인데 무거운 감자도 혼자만 들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도와달라고 하거나 함께 일을 하자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장군은 지위 높은 장군이긴 하지만 능력은 없고 겁이 너무 많았다. 또 농부는 장군이라고 너무 잘 따라주고 시키는 것은 다 해서 너무 순진했다. 이렇게 장군은 누구한테 시키기만 하고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장군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별로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 농부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많이 갖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장군과 농부의 역할은 크게 다르다. 장군은 주로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농부는 논과 밭에서 식물을 키우고 살리는 일을 한다. 그래서 장군은 살아가는 능력이 부족하고, 농부는 무언가를 살리는 능력이 많은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장군은 전쟁터에서는 쓸모 있는 사람이지만,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농부는 전쟁 중일 때도 혼자서 남아 마을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며 언젠가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면 먹을 수 있도록 농사를 지었다. 전쟁이 끝나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농부에게서 만들어진 식량이다. 그래서 농부의 ‘손’은 장군의 ‘훈장’보다 더 가치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가족과 함께 주말 텃밭을 가꾼 적이 있다.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옥수수, 감자, 상추, 수박, 고추, 땅콩을 심었다. 엄청 더운 여름날에도 차를 타고 더위에 식물들이 죽을까 봐 물을 주러 텃밭에 가서, 멀리 떨어진 수돗가까지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며 물을 날라다 주는 게 정말 힘들었다. 잡초는 아무리 뽑아주어도 오히려 우리가 키우려는 식물보다 더 무성히 컸었다. 무섭기까지 했다. 영양분을 다 빨아먹어 수박이 안 열리면 어쩌지? 옥수수가 안 자라면 어쩌지?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엄마께서 잡초나 풀꽃도 생명인데 더 뽑지 말고 두자고 하셔서 우리 텃밭은 거의 정원이 되었다. 내 걱정처럼 수박이랑 상추, 고추는 열리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식물들은 내 마음처럼 다 잘 크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옥수수, 감자, 땅콩은 잘 자라서 맛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생명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식물이라고 해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무언가를 키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생명을 키우고 지키는 농부의 ‘손’이 전쟁에서 이기고 적을 많이 죽여서 받는 ‘훈장’ 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농부와 장군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태도도 달랐다. 그들은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계속 도망을 가다가 결국 바다 앞에 다다른다. 그러자 장군은 “이제 죽어버리지 않을까?”라고 흥분하며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농부는 “하느님께서 장군님을 꼭 살려주실 것입니다.”라고 차분하고 긍정적으로 말한다. 이렇게 장군과 농부는 똑 같은 위기 앞에서 대하는 태도가 크게 차이가 났다. 부정적인 것에서는 힘이 나오지 않지만, 긍정적인 것에서는 힘이 나온다. 농부는 이렇게 장군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래서 나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끈기를 가질 것이다. 또 옆에 있는 사람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을 하겠다. 농부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위기를 헤쳐 나가도록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겠다.
마침내 농부는 바다를 건너가기 위해 배를 만들어 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먼저 돌을 갈아 연장을 만들고, 그 연장으로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어 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농부가 열심히 배를 만드는 동안 장군은 나무 그늘 아래서 편하게 쉬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이 장군이 되었는지 정말 실망스러웠다. 농부 덕분에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게 되는데 장군은 바다에서도 부정적인 생각만 한다.
결국 한 무인도에 도착할 수 있게 되고, 장군은 배가 와서 우리를 구하려고 온다면 농부에게 훈장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때 나는 ‘훈장’이 무엇이고, 또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전쟁에서 적군을 많이 죽이고 승리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훈장을 준다고 한다. 장군의 어깨에도 훈장이 달려 있었다. 장군에게는 그것이 자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장군의 훈장이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농부에게 훈장을 줘봤자 뭐가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에게는 훈장이 별로 필요 없을 것 같고 원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런 것이 없어도 농부는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또 장군이 농부에게 한 약속이 별로 믿기지도 않았다. 나중에 훈장을 준다는 말이 의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장군은 부하들도 버리고 혼자서 도망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다음에 뭔가를 선물해 준다는 것보다 지금 농부에게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이 훨씬 감사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군은 이때라도 농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그것이 훈장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이 책을 읽고 장군과 농부에 대해 비판을 했다. 주로 장군에 대한 비판이기는 했지만, 농부 역시 잘못 행동한 점이 있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권정생 선생님께서 왜 이런 결말을 썼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무인도에 한 척의 배가 다가오는데 장군은 섬에 홀로 남겨 놓고, 농부만 태우고 떠나버린다.
먼저 무인도에 찾아온 백성들이 장군은 ‘가짜 장군’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계급장도 ‘가짜’라고 했다. 아마도 장군의 이기적인 마음과 혼자만 살려는 태도 때문에 가짜라고 말한 것 같다. ‘진짜 장군’이라면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도우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이나 잘생긴 얼굴, 비싼 물건들을 갖고 있으면 좋게 평가하는데 이렇게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속아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장군도 멋진 계급장과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진짜 장군다운 마음씨와 태도를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농부는 생명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알았고, 말만 하는 약속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바로 농부 할아버지의 주름지고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부하들과 백성들은 배에 타면서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 섬에서 혼자 사십시오. 우리를 버리고 도망친 것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벌을 내리고 싶지만, 사람의 목숨은 하느님께 달린 것이니 그냥 살려 두는 것이오. 만약에 당신이 우리와 같이 진정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싶으면 스스로 배를 만들어 타고 건너오시오. 그러고는 함께 일하며 남을 섬기며 살도록 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읽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백성들은 장군이 혼자서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을 다 알고 있었고, 이렇게 벌을 준 것이다. 많은 백성들이 모이니까 큰 힘이 뿜어져 나왔다. 이때 장군이 조금 불쌍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는데, 결국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치 감옥처럼 말이다. 하지만 장군이 반성하고 농부가 한 것처럼 스스로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오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상상해 보았다. 앞으로 나도 이렇게 장군처럼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결말 부분에서는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장군일까? 아니면 농부일까? 라는 질문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계속 생각하게 했다. 나는 농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말만 잘하고, 말로만 약속하고, 위기가 닥치면 혼자 살기 위해 도망이나 치고, 그러다가 자신이 갖고 있는 계급장만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상을 받거나 이름이 유명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실력이 있고, 진심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줄 알고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권정생 선생님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농부처럼 생명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서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의도로 이 책을 이렇게 쓰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부터 생명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또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이 책의 제목은 ‘장군님과 농부’이지만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신 분은 농부 할아버지이기에 이 책의 진짜 제목은 ‘장군과 농부님’이 맞다고 생각한다.
창비어린이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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