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창비 청소년 글쓰기 대회 고등부 우수상
『샹들리에』를 읽고
박승주(경기 고양동산고등학교 2)
단편 「그녀」에서 상수의 시선으로 잠시 등장했던 미진이는 또 다른 단편 「미진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표현되는 ‘나’는 보통 독자가 이입하기 쉬운 경우가 잦다. 또한 이입할 여지를 위해 그가 가진 단점이 적당히 미화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진이는 그렇지 않다. 소설 도입부부터 그녀의 오만한 성격은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엄마의 행동반경을 손에 쥐고 있다는 식의 거만함은 둘째 치더라도, “그래. 명령이야! 엄마가 마음대로 낳았으니까 당연히 책임도 져야지!”라는 대사에선 흡사 독재자의 횡포가 엿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예측 못 한 사건이 일어난다. 마냥 만만했던 엄마가 “죽여도 돼?” 그런다. “너 전혀 특별한 사람 아니야.”라고 한다. 소녀의 말은 갈 곳을 잃는다. 그녀를 두둔해 줄 줄 알았던 아빠마저 엄마가 우선인 것 같다.
그 부분을 읽을 즈음, 미진이에 대한 나의 감정 형태를 그제야 알아챘다. 불편하고 거슬리는 기분의 근간은 곧 강한 동족 혐오였다. 짜증을 돋우는 태도의 양상은 곧 나의 그것이었다. 부모는 나의 기분을 상시 고려해 줘야 하며, 나의 생각대로 움직여 줘야 한다는 미진이의 안일한 착각 속에는 많은 자식들의 모순이 녹아 있다. 그중 하나가 나다. 왜 부모는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리라는 까닭 모를 믿음이 발생할까. 믿음이라기엔 가히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의 사랑은 단 한 번도 당연했던 적이 없음을 알아채기에 자식들은 너무도 나태하다. 그 나태함에 미진이의 엄마는 이리 말한다.
“특별하지 않은 애를, 넌 특별하다 특별하다 하니까, 정말로 특별한 줄 알잖아.”
그 말에 미진이는 도피하듯 집을 나온다. 나도 모르는 재능 그거 부모가 찾아 줘야 되는 거 아니냐며 또 이기적인 요구를 곱씹는다. 아빠로부터 엄마가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은 후에도 그녀의 태도는 그대로다. 오랜 시간 참고 견뎌온 엄마의 고통보다도 자신의 통증이 더 커다란 그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리도 자기중심적일까. 마치 나처럼,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아프다고 생각하는 무수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처럼 말이다.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안타깝기도 하다. 이건 자기 연민이다. 동시에 답답함이 차오른다. 이건 자기혐오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모른 척 가지고 있는 이기심의 밑바닥을 드러낼 뿐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더 이상 자신을 딸이 아닌 ‘미진이’ 라고 부르는 엄마를 떠나 미진이는 시골에서 복학하게 된다. 당장 직면해야 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잠시나마 탈피한 그녀는 조금 변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이기심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돼지 똥 냄새와 녹슨 대문을 신경 쓰게 된다. 낡아 빠진 집을 예쁘게 만드는 걸 ‘꿈’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주 작은 변화이나, 세상과는 동떨어져 자신만을 위안하며 살던 미진이가 드디어 세상과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발전이기도 하다. 소설 초반, 오만함에 길들여진 그녀가 더욱 존재감이 강해 보이나 무엇을 팔아 돈을 벌지 궁리하는 후반부의 미진이가 더욱 독립적인 주체이다.
그녀가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은 회피일 수도 있다. 시련이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점차 잊히고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누가 그 방식을 비겁하다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역경은 계단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이 칸을 밟고 다음 칸을 디디면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며 다독이는 역경은 없다. 그렇다면 도망쳐도 어떤가. 그로 인해 미진이가 자신의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도망으로 인해 그녀가 조금 더 성숙된다면, 포기했던 문제가 조금은 쉬운 형태로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이론이다. 미진이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회피를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창비청소년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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