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창비 청소년 글쓰기 대회 중등부 대상
『시인 동주』를 읽고
김민서(검정고시 준비 중, 16세)
윤동주 시인님께
그곳에서는 안녕하신가요?
여기는 노래 「스텐카 라진」이 흘러나오는 방이에요. 같은 시도 읽는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듯 노래도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시인님께서 김송 선생님의 하숙집에서 살 때 듣던 느낌과 지금 저의 느낌이 비슷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시인님께서 살던 곳, 걷던 길, 솔숲 돌계단, 창내 징검돌, 시와 별······. 저와는 참 많이 다른 길을 걸으신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결국 같은 길인 것 같기도 하여 알쏭달쏭합니다. 어쩌면 길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르지요.
연희 전문학교 1학년 때 즐겨 걸으시던 솔숲 산책길. 연희 전문학교에 처음 와 새로운 길을 처음 걸을 때, 그리고 그것이 이어져 수업을 받고 나서도 저녁 산책을 할 때, 그 길. 시인님은 부쩍 학교 행정에 총독부의 간섭이 심해져 고민이 많으셨겠습니다. 최현배 교수님의 아름다운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으면서도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에 떠는 삶은 얼마나 바들바들 떨렸을까요. 그 떨림을 고스란히 원고 노트에 받아 적으셨을 두근거리는 순간을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심장 소리와 함께 읽어 내려가는 건 아마저 또한 시인님처럼 불안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학교에 다니지 않는 저는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교복을 입고 수다를 떨면서 제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제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두렵기도 하고요. 표면적으로 시인님의 길과는 너무도 다르고 이기적인 고민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두려움 위를 걷는 이 기분을 시인님께서는 알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시인님께서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시고 걷게 될 길이 후쿠오카 형무소 안 제복 입은 순사들이 감시하는 통로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새로운 길」의 시구를 읊조리시며 산책을 하시던 스물두 살의 시인님조차도 모르셨겠지요. 하지만 살벌한 후쿠오카 형무소 안에서도 우리네들의 삶을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어 뼛속 깊이 새겨진 시의 길을 걸으셨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인지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고 고뇌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의 진로, 제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할 뿐이에요.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내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조국에 대해 항상 감사할 것을, 또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저만의 별 속에 온전히 담아 둘 것을 말입니다.
‘잠을 깨인 스텐카 라진. 외롭구나, 그 얼굴······.’ 아, 「스텐카 라진」의 마지막 구절이 흘러나오네요. 언제든 잠에서 깨시어 창밖에 계시거든 외로운 그 얼굴을 들이밀고 창을 두드리세요. 거세지 않은 시인님의 용정 사투리와 하늘 비단을 찢는 시인님의 노래를 기다리는 이가 많습니다. 그곳에서는 불안한 길보다는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나는 길을 오늘도 내일도*’ 걸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 중 일부)
– 김민서 올림
창비청소년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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