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읽는 동화’ 이번호에서는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창비 2002)에 실린 권정생 선생님의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을 읽습니다. 아래 책 사진을 클릭하시면 서지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엄마가 시키는 일에 어떻게 값을 받겠어요.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
“또야, 가서 콩나물 사 온.”
엄마가 또야한테 심부름을 하라는군요.
엄마 너구리는 지금 바느질하느라 바쁘거든요. 그것도 삯바느질이어서 오늘 안으로 일을 마쳐야 한대요.
“응, 콩나물 사 올게.”
아기 너구리 또야는 엄마가 건네주는 장바구니랑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 들고 돌아서 방을 나왔어요.
“옜다, 이걸로 뭐든 사 먹으렴.”
엄마는 또야한테 백 원짜리 동전 한 닢을 줬어요.
“이것 심부름하는 값이야?”
“아니, 심부름은 그냥 하는 거고 백 원은 그냥 주는 거야.”
또야는 함빡 웃었어요.
돈 백 원이 심부름값이라면 아무래도 찜찜하잖아요. 엄마가 시키는 일에 어떻게 값을 받겠어요.
또야는 문간까지 와서 한 번 돌아다 봤어요. 그러고는 똑똑히 이러는 거예요.
“엄마, 이 돈 백 원 진짜 그냥 주는 거지?”
“그럼, 그냥 주는 거야.”
“심부름하는 값 아니지?”
“그래 그래, 아니다.”
엄마 너구리는 속으로 웃으면서 겉으로는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시장 골목길은 언제나 복닥복닥 시끄러웠어요.
저만치에 또야가 가장 좋아하는 콩나물 장수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할머니!”
또야는 할딱거리며 뛰어가면서 불렀어요.
“오냐, 또야 왔니?”
할머니 너구리는 머리에 때묻은 수건을 쓰고 합죽합죽 물었어요.
“엄마 심부름 왔어요. 여깄어요. 콩나물 천 원어치 주세요.”
또야는 할머니께 천 원짜리 돈을 먼저 드렸어요.
할머니는 돈을 받아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고 콩나물 시루에서 듬뿍듬뿍 노랑 콩나물을 뽑아 또야 장바구니에 담아 줬어요.
“자, 이건 덤으로 주는 거다.”
할머니가 손을 요렇게 오므려 콩나물 쬐금 더 뽑아 줬어요.
“할머니, 고마워요.”
또야는 바구니를 들고 얼른 돌아서다 잠깐 멈춰 섰어요.
“저어기, 할머니.”
“뭐야?”
“이 돈 백 원 말이지, 엄마가 그냥 줬어요.”
“뭐라고?”
할머니는 별스럽지 않다고 무덤덤하네요.
“할머니, 우리 엄마가 이 돈 백 원은 또야 뭐든 사 먹으라고 그냥 줬다니까요. 심부름값이 아니고요.”
“그래, 알았다. 심부름값이 아니고 그냥 줬단 말이지?”
“그래요, 그러니까 또야는 심부름 그냥 한 거잖아요.”
“그래 그래, 착하다.”
또야는 겨우 마음이 즐거워졌어요.
돌아오는 길에 가끔 가는 과자 가게에 들어갔어요.
돌아오는 길에 가끔 가는 과자 가게에 들어갔어요.
백 원짜리로 살 수 있는 건 몇 가지 안 되지요. 잠깐 살피다가 또야는 조그만 막대 사탕 하나를 집었어요.
“아저씨!”
가겟집 아저씨 너구리는 검은 테 안경을 썼지요.
또야는 백 원짜리 동전을 내밀었어요.
“그래, 알았다.”
아저씨는 동전을 건네 받으면서 무뚝뚝하네요.
“아저씨, 이 돈 엄마가 그냥 줬어요.”
“………”
“심부름하는 값이 아니에요.”
“무슨 심부름?”
“콩나물 샀어요.”
또야는 장바구니를 치켜 올리며 보여 줬어요.
“그러니.”
“그런데 백 원짜리는 심부름값이 아니고 그냥 준 거예요.”
“그래 그래, 착하다.”
아저씨는 여전히 무뚝뚝하기만 하네요.
또야는 조금 섭섭했지만 막대 사탕을 오른손에 콩나물 바구니는 왼손에 들고 가게를 나왔어요.
동동동 달리듯이 걸었어요,
“엄마!”
또야는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쳤어요.
“또야 벌써 오니?”
“엄마, 이 사탕 엄마 먼저 조금 먹어.”
또야는 엄마 입에다 막대 사탕을 들이댔어요.
“그래, 조금만 먹자.”
엄마는 납작한 사탕 귀퉁이를 살짝 갉아먹었어요.
“됐다, 이젠 또야 먹으렴. 콩나물 바구니는 부엌에 갖다 놓고.”
또야는 역시 엄마가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막대 사탕도 굉장히 맛있었어요. [창비 웹매거진/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