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김정미라는 ‘옛날 가수’의 음반이 CD로 재발매 혹은 ‘복각’되었다. 복각이 한자로 ‘復刻’이라면 ‘다시 새겼다’는 뜻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파형을 새긴 것이 아니라 디지털신호를 입력한 것이다. 그런데 김정미가 누구인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김정미가 누구냐?’라고 묻는 사람과 ‘언제 적 김정미냐?’라고 묻는 사람으로 양분될 것이다. 만약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황학동이라는 곳을 한번 이상은 들른 사람이 분명하다.
황학동이라는 곳을 아는가. ‘재래시장’으로 분류될 그곳에 가면 중고음반들을 사고 파는 곳이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들 같다. 보물을 건진 사람은 감격에 겨워하면서 진한 노스탤지어에 빠지기도 한다. 실패한 사람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여기서 거래되는 중고음반은 CD나 테이프가 아니라 LP판이라 불리는 검정색 비닐판이다. 이제는 거의 생산되지 않으므로 어떤 이에게는 과거의 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도 간혹 이사철이면 한 덩어리의 LP판이 덩어리채 폐기처분되기도 한다. 이사할 때 사용하는 포장끈으로 한 다발 친친 묶인 그 ‘애물단지’들은 집앞에 놓여 있다가 폐품처리장으로 옮겨져 방치된다. 여기 황학동까지 흘러들어오면 무척 행복한 운명이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중고 LP판의 가격이 훌쩍 뛰었다. 이곳에서 가격결정의 원리는 ‘희소성’이고, 그 대상은 외국 평단에서 ‘collector’s item’, ‘rarities’ 등으로 부르는 것들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외국에서 이런 용어는 대부분 비(非)정규 음반들을 가리킨다. 데모 레코딩, 미발표 레코딩, 공연의 ‘불법’ 레코딩 등이 여기에 해당되고, 이를 지칭하는 부틀레그 음반(bootleg record)이라는 단어도 정착한 상태다. 반면 한국은 대부분 정규음반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유는? 설명하자니 매우 괴롭다.
그중에서도 김정미의 음반은 ‘부르는 게 값’이다. 특히 『Now』와 『바람』 같은 음반들은 한때 100만원을 호가했다. 이처럼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니라 이 음반들은 ‘김정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신중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음반에는 ‘아무개 작•편곡집’이라는 문구가 반드시 들어 있었다. 가수는 ‘작곡가 선생님’으로부터 곡을 받는 존재였다(지금의 ‘땐쓰가수’들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신중현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한국적인 사이키델릭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를 갖고 내가 택한 가수는 김정미였다. 여가수를 통해 사이키델릭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성격 중에서 부드러움을 최대한 살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밴드가 들려주지 못하는 신비스러움까지 그녀가 노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이키델릭에 이해가 부족했던 김정미에게 내 요구는 너무 무리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미는 그녀 안에 불어넣어주는 색깔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그녀는 기꺼이 내가 조정하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그녀의 성실한 태도에 힘입어 1971년 발표된 그녀의 앨범은 내 의도와 바람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된 앨범 중의 하나가 되었다”(신중현, 『신중현, Rock』, 다나기획, 1999, p. 118)
‘꼭두각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신중현은 김정미의 음반이 ‘자신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독선’을 부리면서도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한국적 싸이키델리아’란 무엇일까. 여기서 ‘싸이키델릭 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1970년대를 살았던 보통 사람들은 ‘싸이키조명’이라는 단어만을 들었을 뿐이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국민총화’를 외치던 시기에 싸이키조명은 ‘대마초’와 더불어 ‘환각’과 ‘퇴폐’의 상징이었고 단죄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서울에서 대형 화재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모 일간지에는 “대학생들 나이트클럽에서 싸이키조명 아래 심야 춤파티 벌여” 운운하는 기사가 나온 일이 있다(개인적 생각으로는 ‘친일행각’, ‘독재찬미’ 못지 않은 한국 언론권력의 만행이다).
이번에 복각된 음반이 싸이키델릭 록의 진수가 아닌 김정미의 ‘명반’들이 아니라 1974년과 1977년에 발표된 두개의 음반들에서 추려낸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징후적이다. 후문으로는 이번에 발매된 음반마저도 “음반사 자료실에 사장돼 있다 발견된” 매스터 테이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필이면 왜 이 음반을……’이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대목이다. 그래서 앞의 일곱 트랙만 신중현의 작품이고, 뒤의 세 트랙은 김영광의 작품이다. 달리 말하면 앞의 트랙들과 뒤의 트랙들은 대마초사건을 경계로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지는 셈이다.
신중현의 음악이 ‘보통의’ 대중가요들처럼 국제적 유행을 ‘키치화’하는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에게는 분명 국제적 흐름을 포획하여 당대 한국인의 정서에 융화시키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것도 (요즘 말로) 매니아가 아니라 일반인이 듣기에도 그의 음악은 친숙하면서도 신선했다. 대중음악다운 ‘천박함’과 ‘야함’이 있으면서도 여느 고상함과 우아함을 능가하는 무엇이 있다. 그의 싸이키델릭 록이란 것도 ‘대중가요가 아닌 무언가’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다른'(혹은 ‘대안적’) 대중가요를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은 「봄」이나 「햇님」 같은 곡을 당대에 들어본 행운을 맛본 사람이라면 ‘민방공훈련’의 싸이렌 소리와 장발단속의 호루라기 소리를 벗어나는 몽환적 음향을 듣고 가상의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도 있었으리라. 이번에 발매된 음반에 실린 곡들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음악은 청자의 몸을 흔들게 할 뿐만 아니라 정신을 붕 뜨게 만든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듣는 ‘한국적 싸이키델릭 록’은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만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당시 명동의 거리나 음악다방의 분위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긴급조치 시대’라는 숨막히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는 현실에서도 ‘멋쟁이’를 지향하는 욕망을 감출 수 없었던 시절 가장 문화적으로 첨단적인 장소의 묘한 분위기 정도로 해두자. 거기에는 이런 권태로운, 그렇지만 유머러스한 정서도 포함된다. “담배를 붙여 물고 이 궁리 저 궁리 천장을 바라보고/ 찾아서 가볼까 여기서 기다릴까/ 아이고 뜨거워 놀래라 꽁초에 손을 데었네”(「담배꽁초」)
이런 분위기마저 후반의 세 트랙에 가면 완전히 소멸된다. 시기적으로도 대마초사건 이후 이른바 ‘작곡가 씨스템’의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뒤에 나온 것들이고 게다가 작곡가도 신중현이 아니라 김영광이다. 요즘 애들이 잘 쓰는 표현을 빌리면 음악은 매우 ‘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