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7년 여름에 발간된 계간 『창작과비평』 136호의 머리말입니다-편집자.
어느덧 6월항쟁 20주년을 맞는다. 역사의 중요한 사건일수록 10년 단위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고 각오를 다지는 일은 으레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남다른 감회를 갖게 된다. 민주화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 미래의 큰 흐름을 규정하게 될 한미FTA의 비준과 12월 대통령선거가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전망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노무현정부는 진보개혁세력의 대대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독단적으로 한미FTA를 밀어붙여 타결해냈고, 다른 한편 진보개혁세력은 침체와 분열에 허덕이는 가운데 그 누구도 여론지지에서 보수세력의 대선 예비주자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간 힘겹게 가꾸어온 민주주의가 퇴보하지 않을까, 또 97년 이래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가 한층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87년 6월과 그후의 민주화과정이 이룬 그간의 성과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폭압적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6월항쟁은 전쟁을 겪은 분단체제하에서 억압구조가 유독 강고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현대 세계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성취였다. 한국현대사에서 극적인 전환점을 이룬 87년 민주화는 그뒤로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결정적 후퇴 없이 꾸준히 지속되어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 물론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이 지체되었다는 지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절차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사회 전반에 두루 미친 민주주의의 발랄한 기운을 간과할 수는 없다. 사실 참여정부의 탄생 자체가 그런 과정의 소중한 결실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과거 체제에서 형성된 낡은 틀을 갱신하지 못한 채 모종의 교착상태에 있는 불안정한 체제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새로운 전환을 이루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거의 발전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적 모델을 창출하지 못해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봄 내내 뜨거웠던 소위 ‘진보논쟁’도 이런 상황 인식과 무관치 않으며, 본지도 ‘87년체제’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하에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87년체제의 다른 체제로의 전환은 입장에 따라 그 전망을 달리하겠지만, 대선을 앞둔 현실에서는 침체와 분열에 시달리는 진보개혁세력의 재결집 또한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노무현정부의 한미FTA 타결이 진보개혁세력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역설적이다. 심지어 FTA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집단을 개방 반대의 쇄국주의로 몰아붙이는 정치는 구태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그간 한미FTA의 졸속타결을 비판해온 세력에는 협상과정과 내용을 문제삼는 신중론과 좀더 근본적인 반대론이 공존하나, 이들 모두 개방 반대의 쇄국론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협상타결이 이루어진 현재, 졸속타결 저지를 위한 양자의 연대는 졸속비준을 저지하는 연대로 이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진보개혁세력의 재결집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미FTA의 의사결정과정과 협상과정 모두 비민주적 독단과 비밀주의 등 갖가지 문제점이 있는 만큼, 협상문의 완전공개 이후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분석과 독소조항을 따져보는 작업은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세력간의 최소한의 합의점을 졸속비준을 저지하는 데서 찾는 광범위한 연대는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지금처럼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진보세력의 합리적 대안제시가 필요한 시점에서, 신중론과 반대론 양자는 대중의 욕구와 상식에도 부응하는 진보적 개방전략을 논쟁을 통해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한미FTA 찬성과 반대를 12월 대통령선거의 주 전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대두하고 있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