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도 우습지만 현실에서 벗어나 공상과 생각 사이로 노니는 그 시간이 저에겐 휴식이에요. 특히 과거로 빨려들어 갈 때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기억 속에서 좋은 것만 꺼내볼 때면 픽픽 웃음이 나기도 하고요, 마음이 편안해져요. 때론 슬프도록 아쉽기도 하지만요.
많은 것이 변했어요. 고등학교 때 친해서 죽겠는 친구들과 이제는 함께 할 이야깃거리가 줄어들기만 하고요. 어린 시절 뛰놀았던 마을은 모텔들이 다 차지했어요. 놀러가고 싶다가도 겁이 나요. 더 많이 변해서 이제는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일까 봐서요. 흙놀이, 물놀이를 하며 무지개를 쫓아 뛰어다니던 예전의 그 마을이 참 아쉽고 그립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토닥여 준 책이 있어요. 『강물이 흘러가도록』이라는 그림책입니다. 화가 바버러 쿠니의 섬세하고 따스한 그림에 매력을 느껴 그의 작품을 찾아보던 중에 알게 되었어요.
‘스위프트 강 마을’이 있었대요. 그곳에서 주인공 소녀 샐리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오래된 방앗간과 교회를 지나 친구들을 만나고요. 여름이면 갈색 송어 낚시를 하고 단풍나무 아래에서 잠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개똥벌레를 잡아 유리병에 가두다 놔주기도 하고요. 가을이 되면 단풍나무에서 달콤한 즙을 얻으며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멀리 떨어진 도시인 보스턴에서 물을 필요로 했어요. 스위프트 마을은 골짜기에 물이 쉬지 않고 흐르던 풍요로운 곳이었고요. 보스턴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스위프트 마을을 물 속에 가라앉히고 댐을 건설하기로 합니다. 실제로 7년에 걸쳐 스위프트 마을을 비롯한 작은 마을 여러 곳에 물이 차오르게 되지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네요.
세월이 흘러 샐리는 저수지로 변한 마을을 배를 타고 지나가며 추억을 되살려보려 합니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 없었지요. 어둑해지자 물 위로 별빛이 반짝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개똥벌레처럼요. 그 순간 샐리 제인은 사라진 모든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지요. 그리고 조그맣게 웃음 짓습니다.
현실에서는 모텔이 보일지라도, 여전히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의 마을’을 그려 보게 하는 소중한 책이에요.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마을 전경과 어둑해질 무렵의 고요한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한 장면들이 감동을 더해줍니다.
그리운 시절이 문득 떠오르는 어떤 날, 생각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건 어떨까요. 잠깐 ‘멍 때리고’ 있어도 괜찮겠지요. 스스로에게 위로와 설렘을 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요. _어린이출판부 디자이너 이재희
창비어린이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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