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불안, 신비로움으로 채색된
밀렌느 파메르(Mylène Farmer)라는 이름이 뿜어내는 매력에는 동시대의 어떤 가수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색채와 향기가 어려 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 초점을 잃은 몽롱한 눈빛과 묘한 불안감을 주는 무표정한 얼굴, 붉게 물들인(그녀의 머리는 원래 검은 색이다) 머리칼, 그리고 지극히 신비롭고 어둡고 은밀하며 때로 달콤하게 속삭이는, 깨질 듯 높은 톤의 목소리는 분명 기존의 샹송이 가지고 있던 요소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녀의 노래에 포함된 미적인 요소들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나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식의 탐미적인 아름다움이며, 그녀의 상상력이 가닿는 곳에는 포우(Edgar Allan Poe)의 그로테스크함과 음울함이 배어 있다. 여기에서 고전주의적 감성이나 낭만주의적인 서정성에 기원을 두는 전형적인 샹송의 스타일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모든 법칙들에서 벗어난 채 어지럽게 나열된 상징적인 어휘들, 구체화된 이미지 대신 등장하는, 도무지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환상 또는 무의식의 단편들, 다양한 문화적 아이콘들을 이용한 밑도 끝도 없는 은유들은, 격한 댄스 비트의 역동적인 리듬에 실려오는 무겁고 짙은 씬서싸이저의 음색과 더불어 밀렌느 파메르라는 이 탁월한 뮤지션의 중요한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일체의 상식과 도덕, 죽음의 공포, 그리고 억눌린 욕망과 성(性)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빼어난 영상미로 표출해낸 뮤직비디오의 미학적 완성도가 그녀의 이미지 메이킹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어둡고 우울한 판타지, 잔혹함과 공포, 에로틱한 영상으로 채워지는 밀렌느 파메르의 여러 뮤직비디오들은 그녀의 음악에 담긴 시각적인 요소들을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그 강렬한 색채와 이미지들의 홍수는 탐미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데, 그 이미지들은 공연무대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기도 한다. 사실 그녀가 매력적인 외모와 늘씬하게 잘 가꾸어진 몸매를 통해 드러내는 ‘섹시함’은 ‘육체의 상품가치’와 결부되기보다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절묘하게 위치하는 ‘미(美)의 양식’의 하나쯤으로 생각된다. 밀렌느 파메르와 그녀의 음악에 바쳐지는 평가들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혁신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여러 작품들과 그의 영향을 받은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일련의 소녀 누드화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흡사하다.
그녀는 프랑스와 유럽 내에서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둬오긴 했지만, 골수팬들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사랑과 존경을 얻어냄과 동시에 보수적인 이들에게는 냉소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밀렌느 파메르는 1984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 20년의 활동기간 동안 5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과 3장의 라이브 앨범, 그리고 2장의 리믹스 앨범과 베스트 앨범까지 총 11장의 앨범, 그리고 39장의 싱글, 12장의 비디오와 4장의 DVD를 발표했다. 그녀가 거둔 상업적 성과는 놀랍기만 하다. 5장의 정규 앨범들은 각 앨범당 평균 13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라이브 앨범들 역시 모두 더블 앨범이라는 약점을 가졌음에도 5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일차원적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감흥
데뷔 당시부터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해온 그녀의 음악이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항상 동시대의 감성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유행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밀렌느 파메르의 음악이 주는 자극에 반응하는 건 우리 무의식의 심연 어딘가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감각이다. 댄스음악 또는 록음악의 친숙한 비트에 실리는 낯선 아방가르드의 향취와 다채로운 효과음들, 날카로운 긴장의 끝에 선 듯 묘한,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은 멜로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안개와 같이 감싸안으며 몽환적인 분위기로 채색하는 밀렌느의 관능적이고 가녀린 목소리는 일차원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감흥을 전해주는 것이다.[창비 웹매거진/2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