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환경의 국제성 인정
프랑스 안씨(Annecy) 페스티벌은 영화계의 깐느 영화제 정도의 위상을 가진 권위 있는 국제 애니메이션 축제다. 본질적으로 계량화가 불가능하여 1등 2등이 따로 없는 예술작품에 상을 주는 것은, 특히 대중예술에 있어서 작업자의 탁월한 노고를 치하하거나 그를 둘러싼 제작환경의 국제성을 인정해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오세암」(창비에서 간행한 정채봉 동화 『 오세암』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편집자)이 올해 안씨 페스티벌 대상을 수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다. 다른 나라 ‘선수’들을 ‘제압’하고 감동적인 금메달을 딴 게 아니다. 감독의 역량과 가능성을 치하하고 프로듀서, 제작자 등 우리 업계가 구축한 애니메이션 환경의 수준이 ‘국제적’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2004년 「오세암」 안씨 페스티벌 대상수상’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우리 애니메이션계의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추려보기로 하자.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대국,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작량으로 봤을 때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대국’이다. 대부분이 OEM 하청이다. 동양방송(TBC)이 최초로 하청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업체들이 이 일에 참여했다. 프레임마다 그림을 그려넣는 ‘프로덕션’ 과정이 하청업체가 맡게 되는 공정으로, 단순작업량으로 봤을 때 전 공정의 60∼70%를 우리 업체들이 한 셈이 된다. 우리 작업자들이 손재주가 좋은데다 성실한 납품으로 믿음을 주었기에 미국, 일본, 유럽을 망라한 전세계 하청물량의 상당부분이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OEM은 한계가 있다. ‘나이키’ 스포츠 용품은 대부분 중국과 동남아에서 생산되지만 그 브랜드는 미국 것이어서 그 제품도 미국 것인 ‘셈’이 된다. 마찬가지로, 저작권을 경제적 권리 이상 중시하는 대중예술계의 풍토까지 더해져, 주요 작업자인 우리 업체들은 그 작품들에 대한 일말의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다.
우리도 자체 기획의 창작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발표했고 한때 꽃을 피우기도 했다. 「홍길동」 「로버트 태권브이」로 대표되는 우리 애니메이션이 그것이다. 그 명맥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경제적 원인을 주요골자로 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인식문제라고 본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전혀 다른 매체지만, 파고들수록 공통점이 많고 역사적 맥락도 맞닿은 영역이 넓어서 뭉뚱그려 취급하기도 한다.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어린이날이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모여 만화 불태우기 운동을 벌이는 게 별로 희한한 일이 아니었다. 악역으로 등장한 북한군의 옷이 깨끗하다는 이유로 모처로 불려가 혼구멍이 난 만화가 아무개씨의 웃지 못할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회적 편견과 검열은 만화가들을 하향평준화 지향적인 자기검열에 익숙하도록 만들었다. 애니메이션도 사정이 비슷하다. 방학을 즈음해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과거 신문기사 스크랩을 보면 ‘저질 만화영화가 아이들의 정서를 해친다’는 기사투성이이다. 입지도 넓지 않았고, 열심히 일해 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들었으며, 표현의 자유도 그 폭이 너무 좁았다. 발전과 창작에 대한 의욕은 지속적으로 꺾여갔다.
금방 되는 일이 아니다
시절이 크게 바뀌었다. OEM은 이제 사양산업이 되었다. 전체적인 애니메이션 OEM 물량도 줄어든데다 노동자 임금이 우리보다 훨씬 낮은 중국, 동남아 등에 일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으로의 전환을 생각할 시기가 온 것이다. 때맞춰 ‘「쥬라기공원」 한편의 수입금이 우리 자동차 150만대를 판매하는 것과 맞먹는다’ ‘굴뚝 없는 그린산업’ ‘미래 기간산업’ 류의 ‘황송한’ 문구로 치장된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정치권에서 터져나왔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새삼스런 관심에 관계자들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특화산업으로 육성할 목적으로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앞 다투어 개최하기도 했다.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대한 환상이었다. 그게 한 10년 조금 더 된 일이다.
금방 되는 일이 아니다. 무대접, 푸대접으로 일관하다 돈이 된다니 갑자기 놀라 뛰어다닌다고 ‘쥬라기 공원’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연하다. 씨를 뿌려야 수확을 하지 열매부터 먹겠다면 그게 어디 될 말인가. 작품을 만들려면 숙련된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을 숙련시키려면 교육기관과 창작작업이 필요하다. 창작을 하려면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사회적 인식도 어지간히 받쳐줘야 한다. 작품을 만들면 극장이나 TV 등 유통매체가 필요하고, 부가적인 상품이 개발돼야 투자비 회수를 넘어선 수익이 가능하다. 수출을 하려면 외국의 배급망을 알아야 하고, 관련 국제행사에 꾸준히 참석해 명함을 돌리며 인사도 해야 한다. 지난 10년 조금 넘게, 우리 만화 애니메이션계는 이런 일을 꾸준히 수행했다.
‘창작애니메이션 주류국가’로 인정
2002년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와 2004년의 「오세암」이 안씨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은 그런 맥락이 낳은 결과의 일부다. 작품의 수준도 높아졌다. 제작된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는 일도 익숙하게 되었다. 창작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앞서가던 나라의 관계자들도 우리나라를 ‘창작애니메이션 주류국가’로 인정해주었다. 이제 조금씩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부족했던 많은 부분들을 노력 끝에 메운 우리 애니메이션계의 상징’이 「오세암」의 수상이 갖는 의미다. 그것은 우리 애니메이션계에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대중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그것은 비단 흥행성공에 의한 자본의 대량획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유통업계와 관객들의 선입견을 돌려세울 매력을 갖추는 일이다. ‘산업’이나 ‘1등상 수상’을 초월해 애니메이션을 뿌리 깊은 대중 ‘문화’로 자리매김하려는 큰 과업이다.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숙제를 풀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재작년 「마리이야기」와 묶어 「오세암」의 안씨 페스티벌 수상은 ‘2등도 아니고 1등을 했다’가 아니라 이런 변화와 발전을 견인할 대중문화 역사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점이 훨씬 중요한 의미다. 우리 애니메이션의 건투를 빈다. [창비 웹매거진/2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