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
「귀여워」는 그 동안의 한국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감수성과 낯선 화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국사회의 주변부 삶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이 특이하고 새롭다. 「귀여워」는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짙게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정이나 연민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균형 잡힌 거리감각, 이것이 그 감수성의 새로움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감수성의 새로움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감수성은 주변부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진심어린 애정의 산물로 보인다. 새로운 감수성은 언제나 새로운 표현수단을 요구한다.「귀여워」의 다소 낯선 화법은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귀여워」는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많은 데뷔작이 흔히 그렇듯「귀여워」의 탄생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93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의 연출부를 시작으로,「영화 백주년 기념 한국편: 씻김」(1995) 「꽃잎」(1996년)「나쁜 영화」(1997)에 이르기까지, 장선우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 중「나쁜 영화」는 김수현의 대학시절 단편영화를 모태로 한 기획이었고, 그는 그 영화의 ’10대 파트’ 조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94,95년 불의의 사고로 잠시 영화판을 떠나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하며 지내야 했는데 그때의 체험이 영화「귀여워」의 시작이 됐다. 그때 그는 ‘길 위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고, 직접 렉커차 면허를 따서 잠시나마 직접 그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다.「귀여워」의 후까시 ‘963’(김석훈)과 ‘개코'(선우)는 그렇게 탄생했다.
‘경계밖인생’
사실 그 출발점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는 1989년 사당동 재개발 때 그곳에서 ‘빈활'(빈민지역 봉사활동)을 하면서 언젠가 영화화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하는데「귀여워」의 철거 깡패 뭐시기(정재영)와 영화의 실제무대인 서울 황학동 재개발 지역은 그때 이미 탄생했기 때문이다. 철거지역 주민, 거리의 아이들, 오토바이 퀵서비스맨, 렉커차 운전수. 그의 관심과 시선은 줄곧 그렇게 주변부 삶(감독의 표현을 따르자면 ‘경계밖인생’)을 향하고 있었다. 영화「귀여워」는 그렇게 감독 자신이 그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발로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겠다.
「귀여워」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 중심’의 영화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사의 전개와 완결을 위해 배치된 어떤 ‘역할들’이 아니다. 영화「귀여워」에서 서사 그 자체는, 감독 자신이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던 다양한 ‘경계밖인생’들을 함께 만나도록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연스럽게 여겨질 것 같은’ 황학동 재개발 지역이라는 공간은, 오랜만에 만난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도록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무대였고, 그런 점에서 그 공간은 영화「귀여워」의 ‘제6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낯선 공간, 낯선 시간에서 만난 그들이 보여주는 이상한 동거와 공존의 영화일 뿐, 결코 한 ‘패륜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서로의 ‘과거를 묻거나 문제 삼지 않는’ 편안함 때문에 함께 살게 된 주변적 삶들일 뿐이다.
열망이 깊을수록 필요한 판타지
새로운 감수성 또는 거리감각은 관습적이지 않은 영화적 화법을 필요로 한다.「귀여워」에 등장하는 ‘판타지들’은 정확히 그 특이한 감수성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꼭 필요했을 수단이기도 하다. ‘판타지’를 통해 현실에 대한 적절한 거리감각을 리얼하게 실현해내는 ‘귀여운’ 마술.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은 영화「귀여워」에서 그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영화「귀여워」가 몇편의 동세대 한국영화들과 공유하고 있는 판타지라는 형식은 주목할 만하다. 「지구를 지켜라!」「효자동 이발사」「귀여워」등은 모두 이 땅의 현실과 정면대결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품고 있고, 그 열망이 깊은 것일수록 어떤 판타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 영화들에서 판타지는 다층적인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된다.
그러나「귀여워」가 실현하고 있는 적절한 거리감각이 결코 냉정한 관찰자의 태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는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싶어하는 진심어린 애정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투적인 대리 충족 써비스와는 다르다. 사실 이「귀여워」는 대리 충족의 영화라기보다는 ‘욕망 선동’의 영화이다. 무엇보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순이'(예지원)의 존재가 그 징후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정확히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 원인으로 기능한다(감독은 그녀의 역할이 욕망의 ‘촉매’라고 말한다). 영화 속 후까시 ‘963’의 한 대사처럼, 그들은 ‘왜 자신이 그녀를 소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녀를 욕망한다.
이제 욕망을 가져라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의도는 감독 자신이 줄곧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던 주변부 삶들에 대해 이제 ‘욕망을 가져라’라고 선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비루해보이는 삶의 외양 밑에 잠재되어 있는 그들의 거대한 삶의 에너지를 느끼기는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솔직하고 귀여운 고백일런지도. [창비 웹매거진/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