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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커뮤니티

무거운 듯 가벼운 영화 「21 그램」 / 변성찬

2004.10.01커뮤니티 > 창비웹진 > 씨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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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뚜 감독

 

무거운 듯 가벼운 영화「21 그램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뚜(Alejandro Gonzalez Inarritu)라는 다소 낮설고 긴 이름을 가진 멕시코인이다.「21 그램」」(21 Grams 2003)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짧지만 화려한 그의 경력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는 데뷔작 「아모레스 뻬로스」(Amores Perros 2000)로 흥행과 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행운아이고, 2002년에는 숀 펜(Sean Penn)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켄 로치(Ken Loach ) 등의 ‘세계적인 거장들’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2001년 9월 11일」(11’09”01-September 11)에 참여하기도 한, 주목받는 신예이다.

 

「아모레스 뻬로스」는 그해 멕시코 영화아카데미 13개 부문을 휩쓸고, 깐느영화제 비평가 주간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것은 그 영화와 감독 이나리뚜에 대한 미국-할리우드의 뜨거운 반응이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골든 글로브 및 뉴욕비평가 협회 감독상 수상…… 「아모레스 뻬로스」는 몇가지 두드러진 스타일적 특성 때문에 쉽사리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 세기의 첫번째 고전’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나리뚜의 두번째 장편이자 할리우드 입성작인「21 그램」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평가(또는 ‘오해’)가 더 적절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나리뚜의 두 편의 영화가 과연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감지하게 할 만큼 ‘문제적’이라거나 시간의 시련을 견뎌내고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할리우드의 주류적 감성 안에 무리없이 안착할 만큼의 ‘고전적’인 무엇인가를 품고 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죄와 구원의 영화「21 그램」

 

「21 그램」에서 이나리뚜는 전작「아모레스 뻬로스」와 공유하는 몇가지 스타일적 특징들을 보여준다. ‘타란티노적’이라는 오해를 낳았던「아모레스 뻬로스」의 그 특징들은, ‘3개의 에피소드가 꼬리를 무는 서사형식, 폭력적 성향, MTV 스타일의 빠른 화면’ 등이었다. 그러나 그 특징들은 타란티노식의 키치적인 ‘유희의 미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영화에는 ‘혁명의 이념’이 사라진 자리를 메우고 있는 자본의 논리와, 생존의 논리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후일담의 형식을 빌려 전개되는 간절한 ‘구원’에의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폭력적 성향’만을 제거한 채(피가 흥건한 ‘투견장면’이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달리해 반복해서 보여지던 문제의 그 교통사고는 오로지 외화면(外畵面)을 통해서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 스타일을 반복하고 있는「21 그램」은 순수하고 원형적인 ‘죄와 구원의 영화’가 된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정교하고 복잡하게 설계된 미로나 퍼즐 맞추기의 지적 긴장을 기대한다면, 쉽게 실망할 수도 있다. 시간의 구조를 비틀어 다소 복잡한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현란한 스타일의 과시라기보다는 극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동원된 몇번의 플래시-포워드(flash-forward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장면)일 뿐이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해서 다소 밋밋해질 수도 있는 이 종교드라마에 뿌려진 일종의 향신료이다. 감독 이나리뚜는 현란한 스타일리스트이기 이전에 매우 고전적인 종교적 감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세 가지 테마, 세 가지 색조

 

「21 그램」은 ‘사랑, 복수, 죄의 퍼즐드라마’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영화는 그 세 가지 테마를 각각 세 인물과 색조에 대응시키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폴 리버스(숀 펜)와 푸른색조, 크리스티나 펙(나오미 와츠Naomi Watts)과 붉은색-황금색의 중간색조, 잭 조단(베네치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과 주황색조. 숀 펜이 이 영화로 200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숀 펜이 연기한 폴 리버스라기보다는 베네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잭 조단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잭 조던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죄와 구원’의 이야기이고, 새로운 화법으로 반복되고 있는 종교(기독교) 영화이다. 어느날 한 남자와 그의 두 딸을 차로 치고 뺑소니를 쳤던 잭, 그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은 크리스티나, 뇌사상태에 빠진 크리스티나의 심장을 이식받아 생명을 연장하게 된 폴. 크리스티나의 ‘복수’가 잭의 죄와 구원의 서사를 추동하기 위한 대립항이라면, 폴의 ‘사랑’은 그 갈등의 드라마를 전개하기 위한 매개항이다. 어떤 의미에서 폴은 크리스티나의 상실을 ‘위로’하고 잭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지상에 파견된 ‘천사’이다.

 

무거운 듯 가벼운 영화「21 그램

 

‘거리의 고행자’ 잭과 치보

 

우연한 사고로 마주치기 이전, 잭과 크리스티나가 살아온 삶의 과정은 운명적일 정도로 닮아 있다. 전과자였던 잭은 종교 속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자 애쓰고 있고, 한때 마약중독자였던 크리스티나는 가정 속에서 ‘새로운 삶’을 얻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 운명적인 교통사고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사고로 잭은 신에 대한 믿음을, 크리스티나는 가정을 통한 마음의 평화를 빼앗긴다. ‘머리카락 한 올의 움직임도 알아보는’ 전능한 신은 잔인하게도 잭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잭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었고, 그의 거짓 믿음에 대한 응징이었다. 신의 말씀-법에 대해 ‘끔직한 순종’으로 신을 기만하고 조롱하는 잭에 대한 시험이자 응징. 잭은 ‘자수’를 통해 지상의 법으로 처벌받지만, 그것만으로 구원받지는 못한다.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는 단순한 ‘자수’가 아니라 ‘자백’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해성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죄의식 속에서 ‘거리의 고행자’가 되었던 잭은 희생자인 크리스티나에게 행하는 고백과 그녀의 용서 그리고 천사 폴의 대속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거리의 고행자’로서의 잭의 이미지는 쉽사리「아모레스 뻬로스」의 ‘치보’의 이미지와 겹친다. 차이점이 있다면, 잭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치보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아모레스 뻬로스」와 「21 그램」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치보는 전직 교수이자 혁명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사빠띠스따에 참여했던 혁명가이다.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석방된 후, 그는 자신의 전력을 살려 살인청부로 딸 ‘마치’를 위해 돈을 모으고, 버려진 거리의 개들을 돌본다. 그가 결국 자신의 거울 이미지임을 깨닫게 되는 투견 ‘코피’와 함께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마지막 장면. 그것은 빔 벤더스(Wim Wenders)의 「빠리, 텍사스」(Paris, Texas 1984)의 그 장면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끝내 궁금해진다. 그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현실을 떠나 신화의 세계로

 

「아모레스 뻬로스」의 치보는 결국 ‘이념’과 ‘이상’을 잃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논리만 남아 있는 막막한 멕시코(제3세계)의 ‘현실’을 떠나서 할리우드라는 ‘신화의 공간’으로 가버린 듯하다. 원형적인 ‘죄와 구원의 서사’로 꾸며지는 종교적인 신화의 공간. 할리우드는 「아모레스 뻬로스」의 후일담에서 그 신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나리뚜는 「21 그램」으로 화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유럽(제1세계)은 그의 ‘성숙’을 옹호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사라진다고 하는 무게, 그래서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무거운 영혼의 무게’라는 ’21 그램’만큼이나, 영화 「21 그램」의 무게는 한없이 무거운 듯하면서도 가벼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비상하는 ‘벌새’들은 무거운 현실을 벗어나 떼지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하늘은 구름낀 석양의 암청색 하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그 하늘은 차라리 주홍빛 가벼운 하늘이어야 했다. 아마도 타란티노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에게는 벗어나야 할 무거운 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매혹되었던 ‘영화의 세계’만이 있는 까닭이다. 때로는 이나리뚜 식의 현실도피로서의 ‘신화’보다는 타란티노 식의 ‘순수 유희’가 더 재미있고 의미 있어 보인다. [창비 웹매거진/2004/10]

 

 

변성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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