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만나는 올 여름 최고의 영화
이달 말(7월 30일)에 개봉될 예정인 이란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Zamani barayé masti asbha」(2000)은 여러분이 올 여름 극장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영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리에겐 낯선 이란 감독이 만든 이 미지의 영화는 사실 수입된 지는 꽤 되었지만 여태 창고에 방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던 불운의 영화이다. 쿠르드족 출신 감독 바흐만 고바디(Bahman Ghobadi)는 이 장편 데뷔작으로 2000년 깐느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돌이켜보면 2000년 깐느영화제는 무엇보다 이란의 신인감독들을 대거 발굴한 것으로 평가될 만한데, 핫싼 옉타파나(Hassan Yektapanah)는 「조메Djomeh」(2000)로 고바디와 신인감독상을 공동수상했고, 이미 데뷔작「사과Sib」(1998)로 주목받았던 사미라 마흐말바프(Samira Makhmalbaf)는 두번째 장편「칠판Takhte Siah」(2000)으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가장 잔혹한 이란 영화
먼저 그간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자파 파나히(Jafar Panahi), 그리고 마지드 마지디(Majid Majidi) 등의 이란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참으로 낯설고도 놀라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란영화 하면 얼른 떠올리게 되는 몇몇 상투적인 것들, 예컨대 맑은 눈동자를 지닌 순박한 아이들,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풍경들,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담긴 우화 등은, 물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도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이란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화에 비하면 쿠르드족의 삶을 다룬 또 다른 영화인 사미라 마흐말바프의「칠판」-고바디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은 초현실적인 동화처럼 여겨질 정도이니 말이다.
쿠르드족의 실제 삶을 그린
바흐만 고바디는 이란영화를 대표하는 두 명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밑에서 연출수업을 쌓았다. 그런데 고바디는 마흐말바프에게서 영화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지만 이상하게도 키아로스타미로부터는 일말의 영향도 받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은 단 한 쇼트도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쿠르드족 출신인 고바디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Bad Ma Ra Khahad Bord」(1999)-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시어 다레’란 이름의 마을은 쿠르드족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고바디는 이 영화에서도 작은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를 만들고 있는 키아로스타미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상당한 불만을 품었으리란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키아로스타미를 제외하고는 동시대 그 어떤 이란 감독도 만들어내지 못할 진정 위대한 걸작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고바디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몸소 체험했던 쿠르드족의 실제 삶과는 아주 동떨어진 ‘추상적인’ 영화일 뿐이었다. 결국 고바디는 키아로스타미보다는 훨씬 더 ‘정치적인’ 마흐말바프를 택했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이란-이라크 접경지대에 거주하는 아유브(Ayoub)란 이름의 한 쿠르드족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아유브에게는 누나 하나와 여동생 둘, 그리고 정신지체자인 남동생이 하나 있다. 밀수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국경지대에 설치된 지뢰를 잘못 밟아서 세상을 뜨고 말았는데, 이런 일은 아유브의 동네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아유브는 병을 앓고 있는 남동생 마디(Madi)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밀수꾼 행렬에 가담한다. 하지만 여간해서 돈은 모이지 않고 결국 누나 로진(Rojin)이 마디의 수술을 책임져주겠다는 조건을 내건 가족에게 시집을 가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시댁 쪽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아유브에게 노새 한 마리를 주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려 든다. 이제 아유브는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가 노새를 팔아 마디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할 처지가 된다. 그는 다시 한번 밀수꾼 행렬에 가담하게 된다. 일행과 함께 눈 덮인 산을 넘는 도중에 감시병을 만난 아유브는 서둘러 도망치려 하지만 추위를 잊도록 하기 위해 먹인 술에 잔뜩 취한 노새는 눈 위에 쓰러져 일어날 줄을 모른다.
이 참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고바디는 끝까지 밀고 나간다. 관객의 울분과 슬픔이 거의 극에 달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영화는 갑작스레 끝이 난다. 따라서 절제를 모르는 감정적 과잉은「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의 미덕이자 가장 큰 약점이 된다.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 나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십대 소년의 이야기란 사실 그 얼마나 상투적인가. 소년 밀수꾼들을 모집하는 인력시장에서 어떻게든 일당을 벌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소년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첫 씨퀀스에서부터 이미 영화의 전체적인 전략은 분명해진다. 거기에 정신지체아,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소녀까지 등장시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정을 나누는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로 모든 것을 감싸고나면 제 아무리 차디찬 심장을 지닌 이라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이 점에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그간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그 어떤 이란영화들보다 멜로드라마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술적 시정을 건져올리는 성난 몽상가들
사실 고바디의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란영화들의 계보 속에서라기보다는 그 바깥의 계보 속에서, 즉 일마즈 귀니(Yilmaz Guney)의 「욜Yol」(1982),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의 「집시의 시간Dom za vesanje」(1988), 그리고 루시앙 핀틸리에(Lucian Pintilie)의 「떡갈나무Balanta」(1992) 같은 영화들과 관련지었을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삶 속에 깃든 마술적이고 초현실적인 순간들과 리얼리즘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한 편만을 가지고 이런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보다 성숙한 관점에서 쿠르드족의 삶을 묘사한 고바디의 두번째 장편영화 「고향의 노래Marooned in Iraq」(2002)-이 영화는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를 함께 고려했을 때 더욱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참혹한 삶의 한가운데서 마술적인 시정(詩情)을 건져올리는 성난 몽상가들의 계보를, 이 젊은 감독은 과연 성공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창비 웹매거진/2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