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기적의 도서관 개관

제천 기적의 도서관
지난 해 12월 15일 제천시 고암동에서 기적의 도서관 2호관의 개관식이 열렸다.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문화방송의 프로그램 “느낌표”와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의 공동 주관으로 2003년 한 해 동안 진행되었다. 총 11개 선정 지역 중에서 현재까지 순천, 제천, 진해 도서관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 글은 두번째 기적의 도서관인 제천 기적의 도서관 개관식을 참관하고 쓴 후기이다.
전세버스가 제천시에 들어섰다. 임시주차장으로 쓰인 제천여중 운동장에 차가 멈췄다. 행사장인 생활체육공원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같은 서울내기들이 큰길을 따라 둘러 가는 동안 저 멀리 아이들이 동산 밑으로 난 오솔길로 질러가는 것이 보였다.
기적의 도서관은 나직한 동산으로 병풍을 두른 고암동 체육공원 안에 들어서 있었는데 건물 외관은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인 듯 형형색색의 메시지들을 이어 붙인 거대한 천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로 꾸며지게 될 공간에 개관식장이 차려졌다.
인연들 위에 지어진 기적의 도서관
제천에서 밭을 일구며 도서관 건립위원회를 이끌어 온 판화가 이철수씨가 제일 먼저 도서관 자랑을 시작했다. 축구선수 김도훈씨는 명예관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개관을 축하했다. 그에게는 제천 사는 양아버지의 뒷바라지 덕에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개인사가 있다. 마침 제천에 어린이 공공도서관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지난 케이리그 시즌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50만원어치씩 책을 사서 모두 1900여 권을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방송사에서 시골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지어주고 다니는 것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제천이라는 장소에 얽힌 인연과 이야기들이 이곳에 기적의 도서관을 끌어왔던 것이다. 도서관을 여는 데 역할을 한 단체의 대표들이 연단에서 한마디씩 이어가는 동안 청중석을 모두 채우고 넘쳐 언덕진 데마다 메우고 선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댔다. 그 아이들은 간간이 계속된 사회자의 제재에도 아랑곳 않고 법석이었다.
눈으로 읽을 뿐 아니라 귀로 듣기도 하는 것
포장이 걷히며 드러난 도서관은 주변의 겨울숲과 흙의 색깔을 닮은 나무와 벽돌 자재로 꾸며져 있었다. 이야기 탑이 솟아 있는 도서관 본관 뒤편으로 작은 노천극장이 숨어 있고 오른쪽엔 다목적 소극장이 반달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통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열람실은 해가 잘 들어 밝은 곳이었다. 한쪽에 마련된 컴퓨터실을 지나면 이불 깔린 방이 나오는데 한살짜리 아기들도 도서관에서 놀다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었다. 이야기방도 있었다. 전문사서나 고학년 언니들이 이 방에서 책을 읽어준다고 하니 아이들은 책이란 게 눈으로 읽을 뿐 아니라 귀로 듣기도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제지선도 없다
텔레비전 방송 촬영을 한다기에 자리를 비켜주고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서울 가는 전세 버스가 출발한다고 어서 나오라는 호출이 왔다. 신발을 갈아 신고 나오다가 바깥에서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동태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촬영 스텝들이 그은 제지선 밖에 서 있는 이 아이들은 연예인의 싸인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순서를 기다려 새 도서관 구경을 하려는 것일까? 혹시라도 제천 아이들이 오늘 유명한 어른들과 방송에 밀려 자기들이 홀대받는다고 느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국에서 책을 사서 읽은 모든 사람들과 세금을 내고 성금을 모은 제천 사람들이 함께 마련한 이 선물이 제천시 고암동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과정에 끼여든 단 하루에 불과하다.
누가 이 도서관과 제일 친해질 것인지 밝혀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오늘이 가고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면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도서관의 책과 사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텔레비전 쇼에 나온 적 없는 책 속 이야기 세상으로 거침없이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엔 어떤 제지선도 없다. 이런 종류의 만남은 일단 시작되면 아무도 못 막는다. 이것이 바로 도서관의 첫번째 기적이다. [창비 웹매거진/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