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다가 궁금증이 쌓여서 직접 그 궁금증을 풀고자 부산 국제영화제에 두 번,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신명

부산 국제영화제 8회 포스터
처음으로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야외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때였다. 그 때는 한국에 영화제라는 것이 없던 때라 영화제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지만 야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설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러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갔을 때 나를 정말 매료시켰던 것은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었다. 정신 없는 현장에서 웃으면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다음에 반드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자원봉사자로 두 번 참여하면서 혹자의 표현대로 ‘미친 일정’을 온 몸으로 소화해내면서도 밤이면 그냥 집에 갈 수 없었던 것은 우리의 신체적ㆍ정신적 에너지 외에 비축해 왔던 제 3의 에너지를 뿜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자원봉사자도 그러하거니와 영화 관계자들도 수많은 인터뷰와 공식 행사를 소화해내고 나서도 밤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해운대 술집에서 소소히 모임을 가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의 대화를 많이 지켜보았지만 감히 내가 그 흐름을 깰 수가 없어서 사진도 많이 찍지 못하고, 싸인도 받을 수 없었다. 모든 영화인들이 자신의 프로젝트와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다가도 종국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을 알고 영화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아직 기획되지 않은 많은 영화에 대한 영감들은 바로 그런 대화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난장
부산 국제영화제에는 영화감독, 배우, 일반 관객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GV(Guest Visit)라는 장이 있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많은 GV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는 주연 배우 배용준씨가 참석해 그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배용준씨가 GV를 너무나 성실히 참여해 바로 다음 상영 예정이었던 영화가 1시간 넘게 미루어지기도 했다.
올해에는 스타들과 함께 수영만을 걸으면서 다양한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영화 라디엔티어링(Radienteering) 행사도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학용품을 충분히 가질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에게 보낼 필기구 모으기 행사 ‘사랑의 펜모으기’도 함께 마련되었다니 좀더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에 이만큼 적절한 이벤트도 없을 것이다.
영화제 기간중에 김동호 위원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쉴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미팅과 행사, 또 밤이면 매일매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느라 여유가 없어 보였다. PPP는 Pusan Promotion Plan뿐 아니라 Pusan Party People 이라는 말의 줄임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행사기간중 공식ㆍ비공식적 파티와 모임이 많기 때문이다. 김동호 위원장님은 심지어 점심약속이 두번 잡혀 식사도 두 자리에서 나누어 하는 기이한 스케줄마저 강행하고 계셨는데 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은근과 끈기, 저력을 낳다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사이먼 필드씨를 만나게 되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는 부산 국제영화제의 모태가 된 영화제다. 사이먼 필드씨는 아시아 영화를 접하려고 할 때 부산 국제영화제만큼 좋은 곳도 없다면서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것을 성취한 집행위원들의 노력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바쳤다. 부산 국제영화제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는 기자의 요청에 대해 ‘그것에 관해서는 김동호 위원장이 더 잘 알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는 그의 태도는 이제 부산 국제영화제가 세계 영화인들에게도 무게 있는 행사가 되었음을 반증해주는 사례인 것 같았다.
소통
내가 PPP팀의 홍보ㆍ인터뷰 담당으로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부산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안타까웠던 것은 기자의 질문에 적절한 사람이 적절한 답을 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제는 아무래도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친숙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좀더 많은 일반 관객들을 위한 행사나 영화가 있으면 추천해 주기 바란다’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제를 즐기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은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라디엔티어링이나 GV 등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사람이 기자와 미디어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답을 줄 수 있을 때에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 국제영화제에 대해 정확하고 생생한 정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꼭 기자를 마주하지 않아도 영화제 인력으로 투입된 사람이라면 어떤 관객을 만나도 영화제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의 홍보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영화제 상주스텝을 늘이는 것 또한 소통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운영진 외에 상주스텝은 열 명 남짓이라고 알고 있는데 영화제 기간 이외에는 적합할 수도 있겠으나 영화제 개막이 다가올수록 일시적으로 충원된 단기스텝들의 여유롭지 못함은 영화제 전체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스스로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한국 영화계를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는 냉장고 같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부산 국제영화제 스텝에 도전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젊은 관객들의 참여가 가장 많은 영화제, 일반 관객의 참여도가 높은 영화제, 부산 파티 피플 등의 긍정적인 현상을 발판으로 하여 부산 국제영화제가 한국의 새롭고 신선한 면모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축제로 매회 탈바꿈하기를 바란다. [창비 웹매거진/2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