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196

수런거리는 뒤란

문태준  시집
출간일: 2000.04.01.
정가: 10,000원
분야: 문학,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處暑」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온 문태준 시인의 첫시집.

 

 

 

 

반문명적인 의식을 나타내는 문태준 시인의 시는 젊은 시인들의 주류와는 다른 이방적 시풍을 보여준다. 시재를 유년 시절이나 아버지 세대들의 것에서 찾으면서도 그것이 현재적이거나 우리 것 같지 않은 낯선 느낌을 주는 문태준 시인은 주류와 아류를 벗어난 자기만의 독특한 시를 써가고 있다. 장석남 시인이 같은 동류 시인들과 비교해 문태준 시인의 시풍이 특이하고 아름답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박형준 시인은 해설에서 그의 시를 `제트기가 지나간 뒤의, 제트기가 남기고 간 구름` 같다고 하였다. 그 `구름`이 문태준 시인의 이미지다. `사실 지금 되돌아보면 제트기의 모습보다, 제트기가 만든 구름만이 생각난다`는 말(해설)은 한 세대가 흐른 뒤의 우리들 과거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태준 시인은 반도시적 시인이다. 대부분의 시가 도시와 무관하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도시(서울) 속에서 살아간다. 문태준 시인을 바라보면 이 점도 아주 재미있는 모순과 흥미를 느끼게 하는데 그 모순이 어쩐 일인지 어색하지가 않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 속에 중심자리를 하는 곳은 역시 추풍령 근처 황학산 자락에 위치한 40여 가구의 작은 마을이다. 맑은 물과 설화가 유명한, 지금은 고령화된 고향은 시인에게 삶의 원형정신이 있는 곳이다. 그뿐 아니라 그곳에서 시인은 한없는 생의 비밀을 두레박질해 퍼올려야 하는 모양이다. 너무나 빨리 돌아가고 변하고 사라지는 폭풍과 같은 세상 속에서 그가 흔들리지 않는 곳을 고향으로 설정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가 태어나 자란 마을에서 그의 모든 시는 태어났다. 마을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저수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 처연한 가슴을 보여준 호두나무, 까마귀가 부적 위를 지나가고 거미가 문설주 저켠으로 금줄을 치는 빈집, 눈매가 하얀 초승달을 닮은 사람과의 첫사랑, 보리타작을 하고 돌아와 담장 너머에 등멱을 하며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던 몽산댁, 딱따구

 

 

 

리 한 마리가 숲에서 목구멍을 치는 태화리 도독골, 그늘을 지나가는 가재, 들고양이와 꽃뱀이 지나가는 마을, 오늘밤 번갯불은 어느 낯의 반쪽을 비춰줄까 의문하면서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살랑살랑 흘러가는 세월이 어디 있느냐고 노래한 구름 등등. 그의 시에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아득한, 회상하기 어려운 그리움의 가지 끝의 감촉이 간신히 느껴진다.

 

 

 

소란한 문명의 잔상 속에서, 불가피한 욕망의 도그마 속에서 그의 시를 한편 한편 읽는 재미는 남다르다. 뒤란이 수런거리는, 그러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직까지 죽지 않고 서늘하게 살아 있는, 시인의 집을 찾아가고 싶은 봄날, 농부처럼 천천히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걸어가는 시인의 이 시집에서 우리는 시인의 꽃나무를 쳐다보게 된다. 그것은 김명인 시인이 말해준 환몽의 간격을 벌리고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세로(細路)를 걸어가는 시인의 간절한 현실이다. 또 그것은 무명(無明)을 살수록 더욱 생생해지는 삶 자체의 향기다.

 

 

 

[새]에서 `새는 내 머리맡을 돌다 깊은 산으로 사라졌다 (…) 누군가 나를 부엉이 눈 속으로 데려가리라` 노래한 시인의 거처를 찾아보는 일이 바로 우리를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목차

제1부

호두나무와의 사랑

돌배나무와 배나무

掌 篇

첫사랑

빈집 1

빈집 2

白 露

겨울 꽃봉

폐광촌 肖像

봉산댁

下里 정미소

개 미

봄비 맞는 두릅나무

지는 꽃

細 雨

태화리 도둑골

그늘 속으로

내 마음이 흉가에

돌들이 팔을 괴고 앉아

 

제2부

너무 빠른 구름

아슬한 피란

새벽 3시

들고양이

오래된 악기

흰나비재

皮 影

곳 간

미친 여자와 소 이야기

꽃뱀을 쫓아서

비 지나가는 저수지

사라진 뱀 이야기

한 주정꾼 이야기

비겁한 상속

 

제3부

處 暑

굴을 지나면서

묵정밭에서

태화리에서 1

사철나무

태화리에서 2

빈집 3

망나니가 건넨 말

그 골방에 대하여

회고적인

흙집의 우울

내 배후로 夕陽, 夕陽

어둠이 둠벙처럼 깊어

熱 病

하짓날

포도나무들

오, 나의 어머니

쥐불을 놓는 사람

구릉지대

 

제4부

유랑극단

상여가 지나가는 마을의 하루

국화 꽃잎이 마르는 사이

툇마루

엽 서

열락의 꽃

염문이라는 것

그믐날, 부고를 걸다

갈라터진 흙집 그 門을 열어 세월에 하얀 燈을 주렁주렁 켜는

枯木의 힘

집착에 관하여

유 혹

동학사 洞口

도래지에서 멈칫거리는 망명가들

황도 포구

섬에서 며칠

수런거리는 뒤란

忍 冬

焚 書

첫 눈

 

해설 | 박형준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