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통의 물

나희덕  산문집
출간일: 1999.11.15.
정가: 13,000원
분야: 문학, 에세이
이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꿈 가운데 하나가, 일본 홋까이도오의 늠름한 산록 어디쯤에 있을 낡은 여관에 달포가량 묵으면서 눈냄새처럼 시린 산문 몇편을 써보는 것이다. 그러나 저 꿈도, 서른살을 넘으며 버렸던 그 많던 꿈들처럼 이루지 못하게 생겼다. 나는, 여기 묶인 나희덕 시인의 산문을 뛰어넘을 엄두가 나자 않는 것이다. 산문의 관건은 온몸을 드러내는 솔직함과 그 솔직함이 추진하는 사유의 부피에 있다. 나희덕의 글들은 산문이 요구하는 품격과 글쓰기의 위력을 내장하고 있다. 문학이 삶을 끌어안지 못하는 욕망의 시대에, 삶 또한 문학을 참조하지 않는 이 어지러운 속도의 시대에 나희덕의 빼어난 산문은 섬세함과 정갈함으로, 단정함과 따스함으로 우리 삶의 안쪽을 깊숙하게 파고든다. 시인의 마음이 손에 만져져 내가 더워진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순간들

일몰 무렵

반 통의 물

존재의 테이블

점자들 속으로

북향 언덕의 토끼

실수

이름이라는 것

나는 지금 골목에 있다

 

제2부 나무들

내가 잃어버린 나무들

내 유년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새장 속의 동백꽃

어떤 우주

솔잎혹파리처럼

그는 새벽 다섯시에 온다

나와 루쉰과 고양이

모세상(像)의 흠집

속도, 그 수레바퀴 밑에서

 

제3부 사람들

가자미와 신호등과 칫솔과 유릿조각

오래된 내복처럼, 우리는

그곳에 무등이 있었다

그 불켜진 창으로

햇빛과 비

산골 아이 영미

연표화할 수 없는 향기

 

제4부 질문들

누가 저 배를 데려올 것인가

이 때늦은 질문

두 마리 새에 대한 단상

니체에 관한 오해

책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자유

얼음과 물의 경계

꾸벅거리며 밤길을 가는 자

문밖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