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냥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럽고 진부하고 낡고 오염되어 있는 세속의 그 어떤 진창들을 참혹하게 뿌리침으로써 시인의 시는 순결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쁨을 준다. 병든 우리들의 영혼을 단번에 절벽에서 무너뜨리는 세속 파괴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절벽에 당도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껴안아야 하는 허공 같은 사랑의 신성함도 가지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어린이가 읽어도 이해가 될 듯 쉬워 보이지만 어른들이 읽으면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는 묘한 명암을 가지고 있다. 시 편편이 쉬워 보이지만 색다른 세계를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시인이 일년간 시에 전념하면서 우리 시의 어떤 범상을 뛰어넘으려는 각고의 고투를 엿볼 수 있다. 난해하고 뒤틀리고 평이해진 현대 우리 시의 언어에 새롭고 발랄하고 힘찬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눈물과 모래알과 길과 사랑이 수많은 자아 속에서 순환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정호승 시인은 첫시집『슬픔이 기쁨에게』를 펴낸 지 20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동안 한움큼 움켜쥐고 살아왔던 모래가 꼭 쥔다고 쥐었으나 이제는 손아귀 밖으로 슬슬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손바닥에 오직 한 알 남아 있는 모래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모래일뿐이다. 그 모래는 언제나 눈물에 젖어 있었다."
제1부
하늘의 그물
새점을 치며
햇살에게
쌀 한톨
겨울날
고요하다
겨울강
청령포
꽃
그림자
북극성
종이학
도둑놈풀
들 녘
여 름
소나무
낙 화
서대문공원
벼락에 대하여
밥그릇
옥수수죽 한 그릇
타락천사
덕적도
아버지의 나이
그 사람
꿈
제2부
나그네
술 한잔
자살바위
모 래
거미줄
만경평야
초파일
설사하다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선암사
숟가락에게
梟 首
홀로 차를 마신다
새 벽
청량리역
경주 남산
뿌리의 길
낙락장송
감사하다
나무에 대하여
고로쇠나무
자살나무에게
金洙暎 사진
시인들이 술 마시는 영안실
파고다공원
제3부
소년 부처
소년 부처
햇살 속으로
운주사에서
연 꽃
기뻐하라
바위꽃
꽃을 보려면
여수역
보길도에서
동박새
산 새
그 날
봄 밤
가릉빈가에게
소매물도에서 쓴 엽서
마라도
사 랑
반 달
장작을 패다가
소금물을 마시며
개똥에 대하여
길
해설 | 김정환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