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칠레 출신 망명작가 도르프만(Ariel Dorfman)의 대표작들이 국내에 초역되어 잇달아 출간되었다. 지난 2월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를 간행된 데 이어 이번에 그의 내한 시기(5월 1일)에 맞추어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를 펴냈다. 시, 소설, 희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고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칠레의 상처받은 삶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 삶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온 도르프만은 빠블로 네루다의 지위를 계승한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미국 듀크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앞서 출간된 소설집과 마찬가지로 망명지에서 씌어졌다. 삐노체뜨의 군사정권 아래 칠레가 겪는 아픔을 세계에 전하고 죽음과 침묵의 세계로 유배된 `행방불명자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줌으로써 그들을 부재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쓴 `증언시`들이다. 도르프만은 민중을 무턱대고 찬양하거나 악착같은 생명력을 지닌 잡초로 단순화하지도 않으며 민중애의 거창한 구호도 외치지 않는다. 그의 `유배와 증발의 시편`은 7,80년대 암울했던 우리의 정치적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의 증언시들은 80년대 한국의 민중시와는 달리 자신의 느낌이나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며 목소리도 그리 높지 않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잦아드는 흐느낌처럼 조용하고 그래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만큼 울림도 더 크다. 증언의 실감을 더해주기 위해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고 있는 그의 시들은 자신을 향한 독백 같기도 하고, 호소 같기도 하며, 폭로 같기도 하고, 기록 같기도 하며, 편지 같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인 것 같기도 하다. 참여시와 서정시가 도르프만의 증언시에서 하나로 결합하고 이 시들이 모여 칠레의 운명을 노래하는 서사시를 만드는 것이다. 도르프만의 시편에서 삶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명의 성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로 통역되고 죽음과 고통의 어둠은 사랑과 희망의 빛에 닿아 있다. 따뜻한 인간애와 시끄럽지 않은 도덕적 감수성, 쉽고 간결하면서 힘있는 언어,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치열함은 저항시나 정치시의 차원을 뛰어넘어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어판에 부치는 말
한국어판에 부치는 말
제1부 없어지고, 안 보이고, 사라진 사람들
첫번째 서시: 동시통역
레드 테이프
그앤 이제 젖니를 거의 다 갈았어요
희망
옥수수빵
그의 눈은 참새를 지켜본다
둘 곱하기 둘
유언장
기념일
신원
방금 버스를 놓쳐서 회사엔 좀 늦겠습니다
먼저 의자를 가지런히 놓고...
감방의 다른 동지들은 잠들었다
나는 그이가 어디 사는지 몰라요
심증
혼례식
가끔 나는 그 시트로엥차를 본다...
생활비
서신왕래
쇠사슬
일장석(日長石)
제2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던 시들
서시: 낙하산
거지
꽃들을 달래줄 바람이 없다
성 죠지
전구 이상의 어떤 것
인신보호영장
제3부 역류
서시: 귀청을 찢는 듯한 저 소리는 쓰레기차 소리다
점령군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자아비판
내 안테나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전화. 시외전화. 나쁜 소식이오...
전화. 시외전화. 나쁜소식
기동연습
어휘
에필로그
문 유감(有感)
해설 | 망명과 통역의 시 _ 이종숙
[영어판에 부치는 말]
시를 번역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모음집에서는 낱말 두 개가 그에 상당하는 영어로 번역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 중 하나는 공포의 낱말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의 낱말이다. 공포와 희망은 현대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풀 수 없이 서로 뒤얽혀 연결된 두 가지 경험이다. 그 두 단어는 빠우 다라라(pau d`arara)와 꼼빠녜로(companero)다. 나는 빠우 다라라에 관해서는 1960년대에 처음 들었다. 그건 브라질에서 사용된 고문방법이었는데, 나중에 그에 못지않게 불운한 다른 나라들로 수출되었다. 피고문자는 손발이 한 데 묶이고 발가벗겨진 채로 수평으로 고정된 막대에 높이 매달리게 된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려면 나로서는 입밖에 내지 않고 그냥 두고 싶은 단어들이 필요할 것이다.
남성인 경우 꼼빠녜로라 하고, 여성일 때는 꼼빠녜라(companera)라고 하는 이 낱말은 `mate 동료, 한패`, `friend 친구, 동무`, `comrade 동지`, `companion 동료, 동반자`로 번역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어떤 것도 원래의 스페인어 낱말이 갖는 그 독특한 울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낱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꼼빠녜로란 빵을 함께 나누는 자다. 너무 자주, 결국 빠우 다라라를 당하게 되는 사람들은, 세상을 우리 모두가 `꼼빠녜로`들이 될 수 있는 장소로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 미래에 대해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아리엘 도르프만
1987년 6월
[한국어판에 부치는 말]
커다란 감동을 느끼며 내 시들의 한국어 출판을 자축한다. 이 시들은 나의 조국 칠레가 한국 독자들도 겪은바 있는 그런 흉폭한 독재정권을 경험하던 당시, 망명생활 중에 태어났다. 이것들은 고국에서 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슬프고 희망에 찬 목소리들을 모아 담을 다른 도구가 나에게 없었기 때문에 씌어졌다. 이것들은 침묵에 반대하여, 증발에 반대하여, 죽음에 반대하여 씌어졌다. 이것들은 절망에서, 강간되고 파괴되지 않을 미래의 공동체를 위한 기반을 찾아내려 애쓰면서 씌어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그게 당국자나 또는 나와 함께 고투하는 동료들에게 아무리 불편한 것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시들이 여러 다른 언어로 옮겨져 유포되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들이 칠레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지구와 우리 시대의 여러 다른 고통받는 나라들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나라들 중에는 물론 한국이 있었다. 나의 조국을 억압하는 세력과 같은 세력들에 대한 한국의 감탄할 만하고 용감한 저항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들은 우리 두 나라 국민이 함께 나누는 인간애를 위해, 그리고 공통적 기반을 찾는 방법으로서 씌어진 것이기도 하다. 나는 싼띠아고의 무덤들에서 밝게 빛나는 그 목소리들이, 나의 형제자매들이기도 한 한국의 독자들의 눈과 가슴에 이 책이 다다를 때 그것을 에워쌀 공기 중에 또한 살아있을 것을 확신한다.
아리엘 도르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