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중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장 한 권,
81년 전 그날을 기록하다
1945년 8월 16일,
겨레의 해방 다음 날부터 써내려간
역사학자 김성칠의 미공개 일기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의 시기를 한 사람의 일기를 통해서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면? 역사학자 고(故) 김성칠의 일기 『역사 앞에서 상: 한 역사학자의 8·15 일기』는 이를 가능케 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1993년 초판 발행 이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은 김성칠의 한국전쟁 당시 일기이자 기존 저작인 『역사 앞에서』보다도 시기가 한층 앞서는 것이어서 더욱 귀하다. 한국전쟁기의 비극과 인간 군상을 깊이 있게 기록한 바 있던 저자는, 이번 일기에서는 해방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혼란, 기쁨과 불안이 교차하는 순간을 특유의 냉철한 시선과 섬세한 문장으로 담아낸다.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이 한 개인의 일상과 감정 속에서 어떻게 체험되었는지를 보여 주며, 해방이라는 사건을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읽게 하는 귀중한 증언이다.
추가로 발견된 김성칠의 일기는 1945년 8월 16일부터 그해 11월 29일까지로, 기존에 출간된 일기가 한국전쟁 시기를 다룬 데 비해, 새 일기는 해방 직후를 담고 있어 의의가 깊다. “한국전쟁기 김성칠 일기가 서울대 사학과 교수라는 학문적 지위, 불편부당한 중립적 입장, 정릉동에서 가족 구성원을 이끄는 가장이라는 지위에서 비롯된 전쟁체험담이자 당대에 대한 시대비평이었다면, 해방 직후의 김성칠 일기는 충북 제천군 봉양면이라는 면 단위 지방사회에서 벌어진 생생한 해방직후사를 보여주고 있다.”(「해제」)
이렇듯 이 책의 가치는 개인의 체험을 넘어 역사 사료로서의 무게에 있다. 해방 직후의 정치·사회적 급변, 지식인으로서의 문제의식, 당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꾸밈없는 기록으로 남아 있어, 공식 문헌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시대의 결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요사이 제반 물가의 폭등은 말할 것도 없고 쌀 한말에 90원이니 직원 중에 일곱 사람 가족 있는 사람으로 한달에 쌀값만이 9백원, 그의 급료는 제 수당까지 합쳐서 150원을 넘지 못한다. (…) 정치의 무능이 사람들을 모두 환장하게 만들어놓는다. 그래도 이 민족이 착실하지 못하다고 질책하는 자 있느냐. 이 모순 밑에서 이만치 질서를 지켜가는 것이 기적이다.”(1945년 11월 17일의 일기)
후대의 해석이 덧입혀지기 이전, 역사가 만들어지는 바로 그 현장에서 쓰인 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해방 공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1차 사료인 동시에, 역사학자의 관찰력과 성찰이 빚어낸 뛰어난 기록문학으로도 읽힌다. 『역사 앞에서』의 출발점이자 해방기의 공백을 메우는 이번 발굴은 한국 현대사 연구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특히 이화여대 사학과 정병준 교수의 해제가 수록되어 있어, 새롭게 공개되는 일기의 역사적 맥락과 사료적 의미를 입체적으로 짚어 준다.
한편, 1993년 출간 이후 한국 현대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김성칠의 기존 저작 『역사 앞에서』(양장보급판 2018)는 2026년 말 『역사 앞에서 하: 한 역사학자의 6·25 일기』로 개정하여 출간될 예정이다. 해방 시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아우르는 역사학자의 일기로서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갈 것이다.
1945년 8월 16일 개고 덥다.
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싱글벙글하고 전엔 별로 인사도 없던 사람들까지 기쁜 인사를 함에는 당황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 병중의 아내가 너무 기뻐서 떡과 술 준비를 하느라고 밤늦게까지 애쓰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불안스럽기도 하다. 밤에는 자리에 들어도 한동안 잠들지 않았다. 내 마음 흥분했음일까. (15면)
1945년 11월 17일 개다.
요사이 제반 물가의 폭등은 말할 것도 없고 쌀 한말에 90원이니 직원 중에 일곱 사람 가족 있는 사람으로 한달에 쌀값만이 9백원, 그의 급료는 제 수당까지 합쳐서 150원을 넘지 못한다. 그는 고유재산도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 이러한 기적이 있다. 그리고 이 기적이 끝날 줄을 모른다.
정치의 무능이 사람들을 모두 환장하게 만들어놓는다. 그래도 이 민족이 착실하지 못하다고 질책하는 자 있느냐. 이 모순 밑에서 이만치 질서를 지켜가는 것이 기적이다. (183~84면)
1945년 11월 26일 개다.
앞으로는 간판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요 오직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할지니 오늘날 우리가 다만 얼마라도 더 공부해서 실력을 기르는 것은 타일 활동할 소지를 배양함이 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매에 염원하던 광복이 이루어지려는 오늘날 우리들은 모두 다 부지런히 우리 힘을 닦고 길러서 타일 조국을 위해서 일할 준비를 쌓을 의무가 있다. 그러함에도 모두들 기분이 들뜨고 허영과 안일과 모리에만 정신이 팔려서 착실한 생각으로 자기연마에 잠심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으니 이러고서야 10년 후, 20년 후의 조선을 누가 떠메고 갈 것인가. (…)
그러나 당장 아쉬운 걸로 영어 자나 깨치고 오케이나 하고 헬로를 배우는 것이 공부가 아닐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제일 급선무는 자기를 알아서 잃어버린 자기를 다시 찾는 것이다. 나라(國)는 국제정세의 전변(轉變) 통에 불러올 수도 있지만 잃어버린 자기는, 마음의 조국은 결코 타력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참된 마음으로 공부함으로써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양장보급판 책머리에
2026년판 책머리에
1945년 8월
1945년 9월
1945년 10월
1945년 11월
1945년 12월
1946년 1~4월
해제: 정병준
주
김성칠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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