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534

차원 이동 가능

김중일  시집
출간일: 2026.04.10.
정가: 13,000원
분야: 문학,

“그러므로 유일하게 기억해야 하는 건
슬픔의 감정이다”
언제고 어디서고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눈물에 적은 무수한 가능성과 사랑의 기록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풍부한 감수성과 감각적인 비유로 가득한 몽환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김중일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차원 이동 가능』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죽음이 삶을 뒤덮는 참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사라진 존재들의 시간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복원하고자 한다. 현실의 폭력과 부조리에서 오는 슬픔을 차분히 길어 올리며 “고통스럽고 슬픈 언어들”(하재연, 추천사)로 써내려간 애도의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비애에 침몰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북돋는 원숙한 사유 또한 힘있게 들려온다. 특히 “어린이에 대한 아픈 시편들”이 중심을 이루는 이 시집은 “시는 무엇인가에 대한 오랜 물음”(「‘시’로 갔다」)에 답하는 시인의 결론이기도 하다. 부를 나누지 않고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58편의 시들은 교차되듯 이어지며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하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사라진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을 통과해 다시 이어지는 ‘우리’


세월호 참사 이후 창작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으면서 줄곧 슬픔의 기억들을 기록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특히 ‘어린이’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태어나자마자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지”(「아이는 우리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백주에 만취한 운전자의 차량”(「새벽 폭우」)이 덮치고, “미사일이 다트 핀처럼 학교에 꽂히는”(「진짜 밤」) 비극적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사라진다. 시인은 전쟁과 재난, 학대,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시간 밖의 아이’ ‘잠을 도난당한 아이들’ ‘잠이 된 아이들’로 호명하며 그들의 영혼을 지상으로 불러낸다. 슬픔에 잠긴 기억을 더듬어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이고 “혼자 우는 멍투성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게”(「가을의 러너」) 위로의 언어를 건넨다. 이때 시는 아이들이 고통 없는 차원으로 건너가도록 돕는 기도가 된다. 이처럼 한 존재의 비극을 끝까지 응시하는 시선은 곧 세계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현실 인식은 어둡고 절박하다. 세상은 “꿈 없는 잠”(「진짜 밤」)처럼 캄캄하고, “미래 없는 여기”(「미래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의 현실은 너무도 비참하여 비현실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연년세세 전쟁 중인 세계”(「아이들의 원심분리기」)에서 과연 우리는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다’는 의심스러운 느낌에 대해 항상 고민”해온 시인은 급기야 “점점 가슴이 막히고 숨 쉬기 어려워지는 여기가 우주의 땅속 매장지가 아닐까?”(「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라는 극단의 생각에 이른다. “집단 최면처럼 우리가 살아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이 조롱 같은 지구 공간”(「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에 깊은 회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곳만 아니라면 어느 곳에든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마음 이사」)라는 희미한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이 세계 바깥’을 사유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이번 시집에서 ‘시’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 또는 ‘차원’으로 확장된다. “시는 말이나 문자가 아니라 하나의 장소다 (…) 특히 이별의 장소”(「‘시’로 갔다」)라는 선언은 시가 존재들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임을 분명히 한다. 나아가 “우리들의 유일무이한 ‘차원 이동’ 방식은 뉴스 보며 온종일 울기다”(「차원 이동 가능」)라는 구절은 타인의 죽음을 감각하는 것이 곧 차원을 넘나드는 행위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원 이동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죽게 되면 비로소 다른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차원 이동 가능」) 된다는 인식을 통해 존재의 영원성을 확보하려는 분투이다. “이 세상에서 죽는 순간 저세상에 태어나고, 저세상에서 죽는 순간 이 세상에 태어난다”(「너와 눈사람과 나」)라는 문장은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차원 이동’으로 이해하려는 시인의 철학적 사유를 응축한다.

“사랑의 끝에서 시작한
사랑의 끝까지의 이야기들”


지금 이 순간에도, 먼 과거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지구 어딘가의 초등학교에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아이들의 순수가 스러져간다. 바로 그곳, 포연이 자욱하고 폭음이 빗발치는 곳을 맴도는 시인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린’이가 있는 모든 곳에 차원 이동해 ‘어리’기를 반복한다. 수없이 많은 비참, 덧없이 사라지고 힘없이 좌절하는 세계의 슬픔 앞에서 끝없이 흘린 시인의 눈물 위에서 사라진 존재는 다시 세상에 ‘어리’게 된다. 슬픔을 수집해 삶의 숨결을 불어넣는 이 시집은 가장 느리고도 확실한 차원 이동의 기록인 동시에 우리를 다시 서로에게 도달하게 하는 사랑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목차

‘시’로 갔다
가을의 러너
간빙기의 우리는
계약 창문
공기의 기억

그러데이션
그림자를 스친 사이
깊은 모서리
나란히 걷는 일
나무는
나뭇잎을 감긴 눈꺼풀처럼 무겁게 무수히 매달고 있는 화분을 기어이 끌어안고 가는 바람
날아가네
너와 눈사람과 나
눈물 따라가보기
눈사람의 그림자
눈사람의 행방
대부분의 너
마음 이사
매일 내 마음을 낳아주는 새가
매일 네가 야위어가는 지구과학적 이유
미래 그림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밤에 걸린 달력
별의 수
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오해
새벽 폭우
새에서 울음까지
생일
소년이라는 파편
시간 밖의 아이
시한부를 사는 여섯살 먹은 아이가 그 귀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푹 빠져 있는 잃어버린 장난감 생각
쌓이는 마음
아이는 우리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이들의 원심분리기
아이의 물음
아이의 집
아픈 아이가 오늘은 네가 되어
어리고 어른대는
여름 생활 계획표
오늘은 처음 보는 개가
오래된 ‘시’ 속에서의 신작시 마감
욕조와 향로 1
욕조와 향로 2
워킹 버드
인형의 집
잠든 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꿈속의 공기
잠을 도난당한 아이들
잠이 된 아이들
진짜 밤
진짜 시간
진짜 아침
차원 여행
차원 이동 가능
커다란 풍선은 생각보다 멀리 있고 커다란 풍선은 생각보다 더 커다랗고
포플러
하얀 저녁
후략

산문│세상에 어리고 어른대는
시인의 말

참혹이 세계에 만연하다. 죽음이 삶을 뒤덮는다. 미사일이 학교를 폭격하고, 죽어간 아이들의 수많은 눈동자를 신문 지면에서 목격해야 하는 세계. 지구가 캄캄하다. “꿈 없는 잠”처럼. 크리스마스의 공습 속에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부모에게 맞은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음주 운전자의 차가 덮친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빌딩의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친 어린 새가 날개를 꺾고 죽어가듯이. 아이가 만든 작고 차가운 눈사람이 아침의 햇볕에녹아 “빨간 카디건”만 남겨두고 사라지듯이.
이 참혹을 어떻게 멈추어야 할까. 이 죽음을 어떻게 건너갈 수있을까. 김중일의 시는 답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들에 진심으로 지극하게 응답하고자 한다. 이 세상과 저세상을 뒤바꾸고, 사라진 삶과 남아 있는 삶을 연결하고, 어린이의 영원과 어른의 영혼을 잇대면서. 어른들의 “전쟁 세상”에서 사라져간, 어리고 여리고 아리고 그리운 어린이들의 몇해밖에 되지 않는 삶의 시간을 온몸으로 기억해낸다. 『차원 이동가능』은 “투명 망토 같은 유령 시인”의 시를 그들에게 입혀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도록, 시간의 바깥으로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도록 기도하는 말이다. 차원을 이동시키고, 지구를 넘어서는 시간을 상상하며, 사라진 어린이들의 미래를 되살리려 하는 불가능한 마법과 같은 언어다. 어떤 슬픔이 이다지 깊고 간곡할 수 있을까. 지금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당신에
게 이 고통스럽고 슬픈 언어들을 건넨다. 애도를 넘어 우리가 함께 꿈꾸어야 할 어린 사랑의 손을 잡고 나아가기 위하여.

하재연 시인

저자의 말

사랑의 끝에서 시작한
사랑의 끝까지의 이야기들을
‘시’ 속에서 만나온 생면부지의 ‘너’와
아이와 어른이 아닌 모든 것과
은유와 선유
서해에게

너의 다음 계절에서
김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