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한국사상선 24

홍명희·정인보

조선적인 것의 재구성

홍명희    ,  정인보  지음  ,  강영주    ,  박석무  편저
출간일: 2026.02.20.
정가: 23,000원
분야: 인문교양, 인문

민족의 난관을 돌파할 사상의 탐색과 창조
조선의 과거·현재·미래를 새롭게 보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24권 『홍명희·정인보: 조선적인 것의 재구성』은 근대 조선의 전통문화와 서구의 신문화의 경계에서 수렴과 융합, 극복과 변혁의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 홍명희와 정인보의 글과 말을 엮은 책이다. 일찌감치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신문물을 체험한 홍명희나 조선 유학의 고질적 병폐를 실심실학으로 극복하고자 한 정인보 모두 1910년 국권침탈의 위기에서 ‘조선적인 것’을 더욱 깊이 탐구하며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민족 전체를 이끌 사상을 정립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이 같은 사상적 고투는 그들의 글과 말에 담겨 현대 한국 사상의 향방을 정하는 데에 굵은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좌우파 대립 속에서 피워낸 진보적 민족주의

1888년 충북 괴산의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홍명희는 20세에 일본으로 유학한 뒤 십여년간 서울과 토오꾜오, 상하이, 싱가포르를 오가며 여러 근대 문물을 접했다. 이 다채로운 여정 속에서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를 거쳐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근대 사상을 공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가 근대 서구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기본 토양이 되었던 것은 어린 시절 명문가의 자손으로 전통 한학을 배우며 갖춘 조선의 선비정신이었다. 홍명희의 다음과 같은 열변이 그의 삶을 간명히 압축해준다.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홍범식의 아들, 애국자이다. 일생 동안 애국자라는 그 명예를 잃을까봐 그 명예에 티끌조차 묻을세라 마음을 쓰며 살아왔다.”(17면)
홍명희가 일본 유학을 떠난 때는 공교롭게도 을사조약부터 경술국치에 이르는 5년간이었다. 유학하는 동안 날카롭게 민족 정체성을 다져온 그는,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아버지 홍범식이 비분하여 자결한 것을 보고 반일 정서를 더욱 투철히 다지게 되었다. 그의 이 같은 반일 애국사상은 상하이에서 동제사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근대 민족주의로 전환되었다. 민족해방을 위해서는 반일을 넘어선 좀더 실천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 그는 1919년 3·1운동 만세시위 주도 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소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자로 활동한다. 그리고 1927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협동전선체인 신간회 창립을 주도하면서 「신간회의 사명」을 발표한다. 당시 발표문에서 홍명희는 사회주의 사상을 각 나라마다 자기 현실에 맞게 수용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신간회의 나갈 길은 민족운동만으로 보면 가장 왼편 길이나, 사회주의운동까지 겸(兼)치어 생각하면 중간 길이 될 것이다.”(49면)
홍명희는 1920년대 『동아일보』에 ‘학창산화’ 등의 제목을 건 칼럼을 써서 전세계의 다채로운 지식을 소개했다. 특히 자연과학·사회과학·역사·철학·언어학 등의 분야에 대한 지식을 항목별로 흥미롭게 소개했다. 이 같은 지적 편력은 홍명희가 민족주의, 사회주의 어느 것에도 편향되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당시의 지정학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과학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당시 횡행하던 여러 미신과 유사 종교의 발흥을 우려한 점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구습을 퇴치함으로써 근대 민주주의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1930년대에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조선학운동’에 공감하고 함께 참여했다. 조선학운동의 선두에 있던 정인보 등과 절친했고 신채호의 이론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던 홍명희는 본인 스스로도 고전문학을 정리하는 데에 앞장서서 김정희와 홍대용, 서유구 등의 저서를 교열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시대 양반계급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양반의 생활이념 중 ‘지조’에 대해서만은 높이 평가했다. 사대부의 지조가 당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의 양심과 통한다고 본 것이다.
8·15해방 후에 홍명희는 다시 정치 현장에 나서서 중간파 정치노선을 자처하면서 좌우합작운동을 벌였다. 당시 그가 “우리의 민족 문제는 세계적 계급 문제의 일부분”(56면)이라고 일갈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홍명희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긴장 속에서 두 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홍명희 편의 엮은이 강영주는 홍명희의 이 같은 노선을 두고 “진보적 민족주의”라고 명명했다.
좌파와 우파의 대립을 지양한 홍명희만의 중도적 문학관은 본인 문학이 추구하는 예술성에 다분히 담겨, 프로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장점을 고루 갖춘 『임꺽정』을 탄생시켰다. 그는 문학을 정치에 예속된 것으로 보는 일부 프로문학가들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하는 한편, 우파 문인들의 순수문학을 더욱 거세게 비판했다. 그의 민족문학, 민중문학에 대한 애정은 1941년 여름에 현상윤과 치른 대담의 한 문장에서 엿볼 수 있다. “문학은 문학을 통해서 도달하는 길이 있을 뿐이지 살림살이를 떠나서야 있을 수 없지.”(29면)


조선학의 부흥을 통해 정립하고자 한 민족의 자아상

서울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정인보(1893~1950)는 어린 시절 한학을 충실히 공부하다가 경술국치의 해인 1910년 당시 강화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이건방의 제자가 되었다.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주자학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실심실학(實心實學)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본질을 탐구하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보는 선진적 학파였고, 이때 이건방에게서 배운 학문은 훗날 정인보가 조선학운동을 펼치는 데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정인보는 1911년부터 중국과 서울을 오가면서 독립운동에 관여했다. 21세이던 1913년에는 상하이에서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운동단체 동제사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 뒤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며 연희전문학교 교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양명학 연론」은 1933년 한해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로, 정인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이 망한 이유 중 하나로 주자학의 도입을 든 정인보는, 주자학을 대체하는 학문으로 양명학을 제안했다. 기존의 학술이 ‘허(虛)와 가(假)’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양명학을 통해 실(實)과 진(眞)으로 돌아와 실심(實心)을 지녀야 한다고 본 것이다.
1934년에는 다산 정약용의 모든 저작을 간행하는 일을 도맡아 5년여 만인 1938년 76책, 권수로는 500권이 넘는 방대한 『여유당전서』로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폭정이 이어지자 서울을 떠나 전북 익산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전조선문필가협회장을 맡는 등 새 정부 수립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적 사업에 헌신했다. 이 시기 그가 만든 노랫말들은 개천절, 제헌절의 노래 등으로 지금도 여전히 여러 경축일에서 불리고 있다. 이렇게 왕성히 활동하던 때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는 평양으로 끌려가던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비운의 죽음을 맞았다. 조선학의 부흥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새로운 공동체의 윤리를 제시하고자 했던 그의 꿈 또한 좌절하고 말았다. 21세기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갈수록 개인화되어가는 때에, 실심실학의 지식인으로서 일제강점기 내내 민족의 자아상을 만들고 이를 독립 한국의 민주주의에 접목하고자 한 정인보의 뜻을 다시금 새겨보길 권한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홍명희】
서문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행로

핵심저작
1장 반일애국사상
2장 진보적 민족주의
3장 과학과 계몽
4장 차별 비판과 평등사상
5장 조선학운동과 진보적 역사관
6장 리얼리즘과 중도적 문학관


【정인보】
서문
길을 잃은 시대의 윤리와 실심실학

핵심저작
1장 현실 돌파의 윤리
2장 윤리적 철학의 기반
3장 윤리적 학술의 전통
4장 식민지 지식인의 학술윤리
5장 윤리적 문학의 전통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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