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화성(畫聖) 겸재 정선이 부활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의 출발
‘한국미술사 전도사’이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로 돌아왔다. 2001년에 출간된 초판 『화인열전』(1, 2권)을 전면 개정하고 새로운 내용과 도판을 대폭 추가하여 첫권 『겸재 정선: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으로 그 출발을 알린다. “인문학의 줄기는 문화사이고, 문화사의 꽃은 미술사학이며, 미술사학의 열매는 예술가의 전기”(초판 「책을 펴내며」)라는 신념을 고백한 저자는 우리 미술사를 빛낸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하는 작업을 학자이자 작가로서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다. 『추사 김정희』(창비 2018)에 이어 ‘화인열전’ 시리즈까지 전면 개정을 시작하며 그 목표에 성큼 다가선 셈이다.
특히 2026년은 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이 되는 해로, 작년(2025년)부터 올해까지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겸재정선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등에서 겸재를 다룬 대형 전시가 이뤄졌거나 이어질 예정이라 많은 시민들이 겸재 작품을 직접 살펴보며 그 가치를 알아가고 있다. 당대에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성을 바탕으로 우리 산천을 그려내 조선 진경산수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은 요즈음의 ‘K컬처 붐’에 누구보다 적합한 예술가이자, 우리 미술사에서 가장 먼저 다뤄야 할 화인(畫人)임이 분명하다. K컬처의 기원과 정신을 알아가길 원하는 독자에게 겸재의 예술이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임은 물론이다.
중년에 재능을 꽃피운 문인화가 정선
당대의 예술을 품고 진경산수로 나아가다
저자는 겸재 예술의 여정을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진경산수를 개척해가는 모색기(60세 이전), 둘째는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하는 확립기(60대), 그리고 셋째는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원숙기(70대 이후)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겸재의 예술은 오히려 노년에 빛을 발했다. 84세라는 오늘날로 쳐도 초고령의 나이까지 붓을 놓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다 별세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모색기가 60세 이전이라는 사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60세라는 요즘으로 쳐도 은퇴할 연령에 겸재 예술은 오히려 청년의 활력을 지니고 정점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바로 이 모색기를 다룬다. 겸재는 20대는 물론 30대 전반까지도 특별한 이력이나 화력을 보이지 않았다. 제작시기가 알려진 첫 작품은 36세 때인 1711년(신묘년)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712년(임진년)에 다시 금강산을 유람한 뒤 《해악전신첩》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그 전까지는 한 동네에서 교유했던 장동 김씨 김창흡으로부터 학문을, 그의 형제 김창업 등으로부터 회화의 기본기를 배우고, 장동 김씨 가옥과 사천 이병연 등 동학들의 수장품들을 보면서 회화세계를 넓혔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의 유명 화본을 교과서로 삼아 열심히 보고 베끼면서 연마한 것은 물론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이렇게 평가한다.
겸재가 섣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이처럼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그것은 기초가 되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국제적(보편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고전을 통과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 그 점에서 겸재는 대기만성형의 대가였다.(51~52면)
원백(정선)의 이 화첩은 먹을 사용함에는 흔적이 없으면서 번지기에는 법도가 있다. 깊고 울창하며 윤택하고 빼어나 거의 송나라 미불과 명나라 동기창 같은 대가들의 울타리 안에 들어갈 만하니, 조선 300년 역사 속에서 대개 이와 같은 사람은 볼 수 없었다.
〈금강전도〉는 이처럼 수직과 수평, 선과 점, 흰색과 검은색, 밝음과 어둠, 큰 것과 작은 것 등이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상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변형과 과장, 필법(筆法)의 강약, 광선의 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화면을 창출해냈다. (…) 비록 자연의 입장에서는 ‘틀린’ 것이지만 그림의 입장에서는 ‘맞는’ 것이고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감동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25면)
책을 펴내며
『화인열전』 초판(2001) 책을 펴내며
1부 출생~45세: 겸재 예술의 출발
조선 후기 회화의 대가, 겸재 정선 / 겸재의 대표작 〈금강전도〉 / 겸재의 출신과 출생 / 장동 김씨와의 인연 / 스승, 삼연 김창흡 /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 / 그림의 벗, 관아재 조영석 / 겸재의 『주역』 연구 / 겸재의 회화 견문 / 겸재의 초년 시절 이력과 화력 / 중국 화본의 수련 / 중년의 남종산수화 《사계산수화첩》 / 《사계산수화첩》의 의의 / 겸재 중년의 득의산수
2부 36세~45세: 진경산수로의 길
신묘년 제1차 금강행 / 초년작의 생리와 특징 / 《신묘년 풍악도첩》의 특징 1. 부감법 / 특징 2. 수지법과 점경인물 / 특징 3. 유머와 서사성 / 임진년 제2차 금강행 / 조유수와 신정하의 겸재 평 / 당대의 안목, 이하곤의 겸재 평 / 사생산수와 진경산수 / 겸재의 〈망천12경도〉 / 청나라 마유병의 겸재 그림 평 / 〈회방연도〉 /〈회방연도〉의 확장, 〈북원수회도〉 / 겸재 정선의 벼슬살이 / 40대 전반: 서울에서의 관직 생활
3부 45세~60세: 하양현감·의금부도사·청하현감
하양현감, 겸재 정선 / 신임사화와 장동 김씨의 수난 / 〈선면 누각산수도〉 / 조유수를 위한 《금강산 4첩소병》 / 김광수를 위한 〈망천도〉 / 《영남첩》 / 《구학첩》 / 〈쌍도정도〉 /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 〈의금부계회도〉 / ‘잡기로 발신’한 겸재 / 인곡정사로 이사하며 / 55세의 〈백운동도〉 / 56세의 〈서교전의도〉 / 겸재에게 쏟아지는 그림 주문 / 『학산한언』의 증언 / 겸재의 다작 / 겸재의 편지 / 청하현감, 겸재 / 영조에게 칭찬받는 겸재 / 〈월송정〉 / 〈내연산 삼용추〉 / 〈무송관폭도〉 /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겸재
4부 60세~70세: 인곡정사와 양천현령 시절
겸재 예술의 편년과 기준작 / 인곡정사에서 / 관아재를 위한 〈절강추도도〉 / 《관동명승첩》 / 〈청풍계도〉 / 〈서원소정도〉 / 〈장안연우도〉 / 〈세검정도〉 / 〈육상묘도〉와 〈황려호도〉 / 〈고사관폭도〉와 〈송음납량도〉 / 겸재의 화훼화 / 양천현령 /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는 벗 / 《경교명승첩》 / 《경교명승첩》의 양천10경도 / 《경교명승첩》의 한강유람도 / 《경교명승첩》의 시의도 / 《연강임술첩》 / 지방 수령으로서의 겸재
5부 70세~80세: 대기만성
겸재 노년의 화력과 이력 / 다시 벗들과 함께 / 〈사천 이병연 초상화〉 / 《칠선생시화첩》 / 〈취성도〉 / 〈장주묘암도〉 / 〈여산초당도〉와 〈여산폭포도〉 / 겸재의 부채 그림 / 71세, 〈계상정거도〉 / 《퇴우이선생진적첩》 / 《장동8경첩》 / 72세, 《정묘년 해악전신첩》 / 금강산 명화들 / 두 폭의 비로봉도 / 선묘의 추상성 / 관아재의 겸재에 대한 증언과 존경 / 국보 〈금강전도〉 / 겸재 금강전도들의 편년 /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정선화첩》 / 74세, 《사공도시품첩》 / 《사공도시품첩》 중 〈호방도〉와 〈자연도〉 / 천취와 활필 / 음양의 산수화 두 폭 / 76세, 〈인왕제색도〉 / 〈인왕제색도〉, 그 이후 / 최후의 명작 〈박연폭도〉 / 말년의 관운 / 77세, 〈괴단야화도〉 / 〈한아군상도〉 / 79세, 사도시 첨정
6부 80세~84세: 만년의 명예
겸재 80대 / 80대 노화가의 건필 / 겸재 80세, 〈노송영지도〉 / 〈사직노송도〉와 〈노백도〉 / 〈함흥본궁송〉 / 다시 장동8경을 그리며 / 말년의 명작 〈강진고사도〉 / 84세, 겸재 애사 / 겸재 예찬 / 정2품 한성판윤 추증 / 겸재 묘소 / ‘화성’ 겸재 정선
부록
조영석의 「《구학첩》 발문」
조영석의 「겸재 정동추 애사」
박사해의 「정겸재선 수직동추 서」
김광국의 《석농화원》 해제
겸재 정선 연보
참고문헌 / 도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