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527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백무산  시집
출간일: 2025.12.05.
정가: 13,000원
분야: 문학,

“아무도 울지 않으면
광야는 열리지 않는다”
자성 없는 세계에 드넓게 울리는 경종
생의 근원에 닿는 가장 깊고 넓은 사유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노동시의 거목으로 우뚝 선 백무산 시인이 열한번째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창비시선으로 펴냈다. 인생 70년의 연륜과 시력 40여년의 경륜을 고스란히 녹여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증언과 선언의 직설적 화법, 반어와 역설의 수사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자본주의 문명의 실상을 비판하는 공동체적 사유의 세계를 펼친다. 황폐한 자본주의 사회의 폐쇄회로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치열한 시 정신,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돌올하다. “자기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자기 논리”(도종환, 추천사)로 부조리한 현실의 정곡을 찌르며 “자본주의 사회의 출구 없음에 대한 냉철한 해부”이자 “기어코 출구를 찾아내려는 집념”(김명환, 해설)을 응축한 시편들은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우리는 내릴 수 없는 기차를 타고 있다”
질주하는 문명을 기필코 막아서는 올곧은 정신

 

폭주하는 인류 문명을 날 선 감각으로 직시하는 이번 시집의 백미는 ‘멈춤의 미학’이다. 속도가 생존의 조건이 된 현대사회를 “멈추지 않아 아무나 탈 수 없”고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도 없는 기차”에 비유하며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몸을 던져 연료가 되는” 삶의 비참을 폭로한다. “기차의 목적지는 기차 안에 있기 때문”(「기차에 대하여」)에 아무리 달려도 기차를 멈춰 세울 수 없다고 냉혹한 자본주의 문명의 논리를 꼬집는 대목은 통렬하기 그지없다. 시인은 외친다. 이제 그만 멈추자고. “사람이 무엇을 하면 할수록” 세계는 “무엇을 할 수 없는 땅이 되어가는” 모순 앞에서 “멈추어서 부지런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설득한다. “하지 말아야 찾아오는 새가 있어/멈추어야 자신을 보여주는 꽃이 있어”(「멈추어서 할 일들」)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멈춤을 단순한 포기나 중단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멈춰야 비로소 모든 것을 짓밟고 달려온 문명의 세월을 돌아보고, 스러져간 자연을 되돌리고, 훼손된 인간성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에게 멈춤이란 새롭게 살아가기 위한 전환과 회복의 순간이다.

기술 문명의 폭주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소외되고 소모되는지를 탐색하는 시인의 시선 또한 예리하다. AI가 발호하는 현재를 차분하게 응시하며 “기계가 인간의 일을 빼앗았다”기보다 “인간이 기계를 닮아가고 있다”고 진단하는 동시에 “인간 닮은 기계는 없지 기계 닮은 인간투성이지”라고 일갈한다. “인간이 선망하고 닮고 싶어 안달한 것이 사람이었어?”(「곁에 있어주는 능력」)라는 물음은 우리가 탐욕에 취해 무엇을 잃은 채 살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시인은 “몸은 길들여진 도구가 되어/목숨 파먹고 사는”(「먹기 위해 살기로」) 것이 과연 ‘사는 일’인지 회의하며 “세상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지만은 않는다는 뻔한 사실”(「그들도 지금 이곳에」)을 직시한다. 기계에 잠식된 세상 속 지리멸렬한 삶 끝에 선 시인의 성찰은 결국 인간이고, ‘나’를 향한다. “내부 수리가 급한 건 나”였음을 인식하고 “내가 나에게 좀 다정할 수는 없겠는가”(「내부 수리」)라며 온 세상을 향해 다시 묻는다. “우리는 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시인의 말)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은 이렇듯 근본적인 질문을 발판 삼아 도약해 ‘인간은 서로를 살아주는 존재’임을 믿는 따뜻한 생태적 존재론으로 나아간다. 시인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조금씩 살아주기도 한다는 걸” 깨닫고 “어디선가 조금씩 나를 불러주고 대신 살아주어/간신히 내가 나로 살아 있는” 것이라는 통찰에 다다른다. 때로는 “비열한 자들”이 “조소와 냉소와 악담으로 나를 살아버리기도”(「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한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병행하며 깨달음은 더욱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 결국 시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능력”과 “멈춘다는 걸 이해하는 능력”이 곧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능력”(「곁에 있어주는 능력」)임을 확인하며 “나의 몸을 대주어 너를 지피”(「아궁이」)는 연대의 윤리를 모색해나간다.

 

“다 떠나고 저문 뒤에도
피어날 꿈 그것 하나만 남아”

 

어둠의 시대 한복판에서 ‘노동해방’의 기치를 내걸고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며 기성 문단을 뒤흔들었던 젊은 시인은 어느덧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렀다. 등단 이후 40여년의 세월 동안 줄곧 초심의 견결한 시심을 견지하며 “우리 현대사의 곡절 가득한 현실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직시해온 시인”(해설)으로서 시적 구도(求道)의 길을 올곧이 걸어온 세월이다. “허허벌판은 나의 이력서”(「바람 앞에 서기 위해」)라고 말하는 생애와 시적 여정을 경유한 끝에 백무산의 시는 더이상 ‘노동시’의 범주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번 시집이 증명하듯 그의 시세계는 노동에서 인간, 문명에서 만물로 지평을 넓혀 한국 현대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시편에 생의 진리를 각인하기까지 기나긴 투쟁의 세월, 격변과 파란의 시대를 건너왔지만 시인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시인은 여전히 “우리가 얼마나 안으로 망가진 세상을 살아왔는지”(「사람의 한 자리」) 되돌아보며 가뭇없이 스러져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고 동시대의 “슬픔을 노래할 의무”(「뭔가를 한다는 것은」)를 다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신한다. 폐허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백무산의 뜨거운 생명의 노래는 끝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목차

제1부
기원에 대하여
먹기 위해 살기로
기차에 대하여
가면무도회
아궁이
통과의례
문턱
새로 출시된 선악과
부르면 그 이름으로 온다
악의 우월성
고기 사이
내부 수리
후회
달력

제2부
인류세의 아침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갈 수도 있었던 길
파이프라인
형식의 배후에
집을 버리고
대치 중인 자들
존중 사회를 위하여
싱크홀
잔치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도 지금 이곳에
겨울꽃
닭 모가지를 비틀면
쌀의 인류

제3부
감염
곁에 있어주는 능력
강변은 어디에
바람의 집
이빨
사람의 한 자리
대리모
저들에게도 손이 있어
신라의 달밤
너를 부를 수 없어
그렇게 말한다면
기원의 역사
사랑은 사랑을 모르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제4부
헛꽃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은 폭염이
멈추어서 할 일들
누가 나를 깨운 걸까
한국 방문을 마치고
주인 잃은 저들이 비바람 속에서
버스를 타고 가듯이
길을 정지시키고
너를 입고
독도에게 묻는다
열광을 주입하지 마라
뭔가를 한다는 것은
노인은 모두 전사가 된다
바람 앞에 서기 위해

해설|김명환
시인의 말

백무산은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볼 줄 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도, 사람도, 말도, 세상도, 역사도 자기 방식으로 읽어낸다. 자기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자기 논리가 있다. 생각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무산은 탁월하다. “우리가 저 말 없는 바깥 것들과 싸우면 싸울수록/왜 우리들과 싸우는 일이 되는지”(「멈추어서 할 일들」)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한 자리」처럼 백무산의 ‘뒤집어 생각하기’는 늘 절묘하다.
그렇지만 나는 “부축해본 적 없는” “나의 불구에게” “말을 걸어보”는 「신라의 달밤」 같은 시가 좋다. 사람 냄새 물씬 배어나는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은 폭염이」 같은 시가 좋다. 애틋한 온기를 지닌 「주인 잃은 저들이 비바람 속에서」 같은 시가 좋다. “허허벌판은 나의 이력서”라고 말하는 「바람 앞에 서기 위해」 같은 시가 좋다. “다만 나를 바람 앞에 세우기 위해서” 그 가파른 시대, 가혹한 날들을 헤치며 백무산은 여기까지 왔다. 운명이 되어버린 그의 시도 그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도종환 시인

저자의 말

우리는 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흔히 역사에 그 질문을 던지지만 역사는 현실에 알리바이를 조작해주는 공범자이기도 해서 현실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머나먼 시선’으로 자주 눈을 돌려보게 되었다. 그 시선은 시간은 시와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시간은 인간의 감각적 경험이고, 시는 그때 그 시간을 담아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미래가 현재를 먹어치우고, 살아 있는 ‘어제’는 죽은 사물이 되어 오늘은 덧없이 얇아져 부서지기 쉬운 그릇이 되고 만 것 같다. 현재는 눈앞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생애의 시간 전체의 두께에서 일어나고, 지질학적 시간도 우리 생애에 깊이 개입하게 되었다. 나의 기억은 자신의 내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라는 공유지에 우리 모두 섞여 있었고, 그것은 과거도 아니고 시간도 아닌 오늘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장소일 것이다. 시에는 어떤 통로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저 어떤 입구에서 난감해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