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524

식당 칸은 없다

장철문  시집
출간일: 2025.10.24.
정가: 12,000원
분야: 문학,

“통로에서 내딛는 걸음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다”
세속의 풍경을 수행처럼 건너며 길어 올린 구도적 서정
소멸과 생성이 맞닿는 자리, 순환하는 삶과 언어

 

슬프고 기쁜 세상사의 단면을 응시하며 이면에 놓인 삶의 질서와 인연의 흐름을 탐구해온 장철문 시인의 신작 시집 『식당 칸은 없다』가 창비시선 524번으로 출간되었다. “근래 한국시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심사평)는 상찬을 받은 백석문학상 수상작 『비유의 바깥』(문학동네 2016)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책에서 시인은 오래 벼린 단단한 시선으로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상실과 부재의 자리를 사유의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또한 평범한 삶의 장면과 마주하여 “만남과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구축하는 고통과 열락의 동시적 향연”(최현식, 해설)을 펼치는 시편들을 매개로 독자들에게 끊이지 않는 생의 허기와 결핍을 달래는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광목처럼 풀리는 새벽 강에 나가서
주낙을 걷어 오는 사내가 되고 싶은 날이 있었다”
묵묵한 시선과 쓰기로 이어지는 내면의 순례

 

장철문의 시는 격정적이지 않음에도 울림이 깊다. 그 울림은 일상의 미세한 틈을 묵묵히 들여다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는 언제나 거창한 사건보다는 “페달을 밟아서 우동을 먹으러”(「우동과 자전거」) 가거나 “휴게소 뒷길이나 서성이”(「옥천사 가는 길」)는 소박한 여정 위에서 사색에 잠긴다. 본래 허름한 세속의 순간들이 곧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궁핍과 피로 속”에서의 오랜 생활 끝에 뭇 존재들이 새기는 “어떤 형태와 색”(「작은 미술관을 나오며」)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시인의 고유한 수행이자 쓰기의 방식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성(聖)과 속(俗)의 경계는 필연적으로 맞닿는다. 시인은 이제 안다. 깨달음과 욕망은 결국 한 몸의 그림자라는 것을. 붓다의 다비장을 찾은 순례길에서 “청년 둘이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야동을 돌려보”(「성지순례」)는 풍경을 담담히 적어두는 시선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른 휴게소의 뒷길에서 빛바랜 동백을 망연히 바라보던 자신을 회고하는 일과 닮았다. 거룩함은 세속에 깃든다. 시인은 이제 수행자의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흰 치아를 드러낸 미소와
말소리만은
아직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햇살은 거기 있으나 등짝의 따스움은/벌써 가고없는” 세계를 그리면서도 시인은 “아무려나/좋다!”(「불확실성 시대,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하면서 사라짐을 슬퍼하기보다 사라지는 순간의 온기를 붙잡는다. “땅에 붙박인 나무”들이 “필사적으로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넓”(「숲은 고요하지 않다」)혀가는 생명의 안간힘을 목도하면서 상실과 이별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임을 새로이 직감하기도 한다. 그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에 천착하지 않는다. 다만 이생을 함께한 이의 “보리똥나무 가지를 흔들던/자디잔 웃음소리”를 “아껴 먹는 생의 식량”(「그 생에도 보리똥나무가 있을까?」)으로 삼을 뿐이다. 상실과 결핍의 고통을 견디며 삶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이 과정을 시인은 ‘슬픔’과 ‘사랑’이 하나로 엮이고 섞이는 “떨림의 파문”(「방울벌레 울음소리를 물었다」)이라 이른다. 결핍 속에서 충만을, 소멸 속에서 생성을 길어 올리며 그가 기록하는 것은 탄생하고 사라지는 존재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생의 숨결이다.
시인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추듯 아득한 기억 속 정경을 ‘지금-여기’의 풍경으로 되살려내기도 한다. 평생을 “허기가 시켜서” 떠돌던 시인의 삶 위로, “출가하겠다는 아들을 뒤세워/삼겹살을 끊어다 구”(「우동과 자전거」)워 주던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와 “임종도 없이”(「늦은 임종」) 보내야 했던 할머니의 쓸쓸한 얼굴이 포개진다. 이제 어머니도 할머니도 세상에 없고, 시인은 “어머니의 본관과 이름이 박힌/섬돌”에 “꾸지뽕 쓰레빠나 두어켤레 던져두”(「꾸지뽕 쓰레빠」)는 것으로 그리움을 대신하고, “콧물에 눈물을 섞어서” 할머니의 “늦은 임종”(「늦은 임종」)을 지켜본다. 장철문에게 시란 이렇듯 부재의 자리를 비워둔 채 그 안에 남은 온기를 더듬는 일이자 사라진 이들의 숨결을 다시 불러내는 언어의 형식이다.

 

“소실된 길 끝에 길을 놓아서”
새로이 내딛는 걸음

 

“늘 길에서 비껴”(「옥천사 가는 길」)나던 고단한 삶 속에서 “두려운 도시의 거리와/여러 직장과/해안과 오래된 골목”(「능선 너머」)을 오가는 동안 시인은 막다른 곳에 다다르거나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은 이제 비로소 “소실점을 향해 가”(「작은 미술관을 나오며」)던 길 위에서 “순간의 생과 지나간 생과 다가올 생”이 서로를 향해 자유롭게 “유영하고 뒤척이는”(「용이 알을 품을 때」) 새로운 길을 독자들 앞에 열어두었다. 그 길을 묵묵히 걸으며 시인은 “가만가만 숨결에 오는 말”(「말」)을 받아 안아 “써야 할 시”(「숲은 고요하지 않다」)를 오래오래 써나갈 것이다. “아직 시인이라는 것”(시인의 말)에 감사하며.

 

목차

제1부
악의에게

식당 칸은 없다
소를 보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공양
우안거
한파주의보
네 얼굴과 그것에 대하여
물풍수 이야기
발을 닦으며
성지순례

제2부
임종
능선 너머
그 오뉴월 한나절
꾸지뽕 쓰레빠
석다
우동과 자전거
방울벌레 울음소리를 물었다
늦은 임종
통증에 대하여
그 생에도 보리똥나무가 있을까?
왜 많은 가지와 잎을 가졌을까?
발자국

제3부

잠긴 돌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
낙화 동백
봄 내
거기 지금
동백
서어나무에게 간다
곁에 없고
불어라, 바람
수련
연두 생각

제4부
놀다
용의 자취를 기록함
용이 알을 품을 때
불확실성 시대,라는 말을 들었다
나의 어여쁜 루어
산도라지밭에서
작은 미술관을 나오며

시는 구도인가, 시는 윤회인가, 시는 아무것도 아닌가. ‘슬픔을 가진 몸’으로 앉아 ‘슬픔을 가진 마음’으로 물었다. 시인은 길 없이도 갔다 길 없이도 왔다. 부처가 열반에 들었다는 성지 쿠시나가르가 “친구끼리 야동을 돌려보고” “가족이 둘러앉아 수건돌리기를 하는” 근린공원임을 발견하고 왔다. 성(聖)과 속(俗)이 한통속임을 보고 왔다. “출가하겠다는 아들”에게 “삼겹살을 끊어다” 구워주며 “이거 묵고 그냥 살자”고 하시던 어머니에게로 돌아오듯 그냥 왔다. 누군가에게는 성지인 곳이 누군가에는 근린공원이 되기도 하는 ‘엔가레 세로’ 같은 시간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전북여객을 타고 나와서” 속세를 떠돌면서도 시인이 알처럼 품고 다니던 할머니 같고 어머니 같은 순하고 정하고 순정한 시를 들고 왔다. 참 좋다! 시는 알인가, 시는 허기인가, 시는 “검은 잎을 붙들고 새잎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서어나무의 죽음까지도 품은 채 빗소리를 발행하고 있는 숲인가. 시인에게 물어도 답은 하나도 없거나 아주 많거나 하겠으나 누군가 내게 부처의 미소를 본 적 있느냐 묻는다면,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시인의 미소와 시인의 시가 그와 같다고 하겠다.
안현미 시인

저자의 말

아직 시인이라는 것이 고맙다.

2025년 10월
장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