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137

늪지의 렌

최상희  장편소설
출간일: 2025.07.11.
정가: 15,000원
분야: 청소년, 문학

“갑자기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세상에 숨을 곳은 없었다.”

잔혹한 밤을 이겨 낼 다정하고 아름다운 연대의 힘

 

작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다정한 시선과 균열을 비트는 상상력으로 한국 청소년문학의 독보적인 감수성을 선보여 온 작가 최상희의 신작 장편소설 『늪지의 렌』(창비청소년문학 137)이 출간되었다. 유전자 조작 시술이 상용화된 미래, 발작을 일으킨 청소년들이 시민들을 해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소집령이 내려지고, 시설에 끌려간 열다섯 살 렌과 아이들은 믿을 수 없는 폭력을 마주한다.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장이 생생한 감각을 전하며 폭력의 잔인하고도 섬뜩한 본질을 짚어 내는 한편, 렌과 아이들의 우정이 만들어 내는 다정하고 단단한 연대의 힘은 더없이 특별하다. 지난겨울 우리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권력을 눈앞에서 목도했고, 그 잔혹하고 어두운 밤을 이겨 낸 것은 두려움을 넘어 연대하는 용기 덕분이었다. 엄혹한 밤을 지나 한 줌의 빛으로 나아갈 모든 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하는 소설이다.

 

소집령이 떨어졌다.

이 세상에 우릴 위한 안전한 곳이 있을까?

 

어느 날 유튜브에 뜬 한 동영상. 얼핏 영화 촬영 현장인 듯 보이는 그 영상은 평범한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마치 좀비물처럼 한 남학생이 시민들을 해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 뒤 전국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갑자기 괴력이 생긴 채 돌변하여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윽고 정부는 13세에서 19세까지의 청소년들에 소집령을 내린다. 사고를 예방하고 청소년들을 ‘치료’하겠다는 명목으로, 무장 군인들이 지키는 외딴 시설에 모이게 된 아이들.

열다섯 살 렌도 소집령을 피해 가지 못했다.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소지품을 뺏기고 아이들에게 주어진 건 짙푸른 셔츠와 바지, 그리고 칫솔과 수건, 담요뿐. 아이들은 한 방에 수십 명이 배정되어 식사 시간도, 이동도 제한된 생활을 하게 된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이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며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훈련을 거듭하는 사이 낙오된 아이들은 어디로 끌려갔는지 모르게 사라지고, 같은 방의 누가, 언제 발작을 일으켜 서로를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 렌은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폭력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작지만 다정한 손길

 

끔찍하고도 잔혹한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다름 아닌 특별한 친구의 존재다. 시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만난 위령은 두렵고 긴장된 속에서도 순식간에 분위기를 말랑하게 풀어 버리는 매력의 소유자다. 또래보다 큰 키와 덩치를 타고난 탓에 밖에서는 따돌림을 받았다는 위령은 남들과 다른 눈동자를 한 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렌은 위령의 눈을 들여다본다. 위령은 피하지 않는다. 이상하다는 표정도, 궁금해 죽겠다는 기색도, 꺼리는 눈치도 없다. 그런 식으로 렌의 눈을 바라보는 사람은 엄마 말고는 없었다. 어쩌면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89면

 

서로에게 의지해 불안을 견디던 중 렌과 위령은 뜻밖의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조별로 경쟁을 붙이며 땅을 파라는 대령의 명령에 아비규환이 된 운동장, 렌을 향해 달려드는 삽을 피하도록 누군가 도와준다. 빠르게 사라진 그 아이의 눈은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갈색인, 렌과 같은 오드 아이다. 이후 만나게 된 그 아이는 나기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늪지’에서 왔다고 말한다. 평균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으로 렌과 위령, 나기는 금세 가까워진다. 나기의 고향에 대해 듣게 된 렌과 위령은 도시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남다른 능력이 있는 듯한 늪지의 사람들 이야기에 놀라워한다. 자신과 같은 눈을 가진 아이를 처음 만난 렌은 혼란스러워하는데……. 렌과 늪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직 한 줌 빛이 있어

세상은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한편 아이들 사이에서는 발작을 일으키게 된 원인이 유전자 조합 시술인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소문이 돌며 동요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12면)이라는 모토로 ‘더 좋은’ 유전자를 배합하고자 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프로젝트, 소설은 이에 대해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아이”(82면)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를 정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질문을 던진다.

늪지 출신인 나기와 그와 닮은 눈을 가진 렌, 남다른 덩치를 가진 위령은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술을 받지 않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따돌림당하던 아이들이었다. 주류로부터 차별받던 아이들, 작고 연약해서 괴롭힘당하던 아이들은 하나둘 렌과 위령의 무리에 모여들며 서로를 다독이고 탈출을 꿈꾸기 시작한다.

질서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잔인한 폭력을 정상화하는 사회는 소설 속뿐만 아니라 지난겨울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잔혹하고 어두운 밤을 이겨 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한 줌의 빛을 향한 믿음이었다. 렌과 위령, 나기의 맞잡은 손이 파헤쳐 가는 이 이야기는 연대와 우정으로 어둠을 밝히는 간절한 희망을 담았다. 기나긴 밤을 지나온 모두에게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와 의지를 전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목차

늪지의 렌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제목을 ‘늪지에서 온 렌’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읽고 나서 ‘늪지로 떠나는 렌’임을 깨닫게 되었다. 타고난 정체성을 단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찾아가는 렌에게 어른들이 쥐여 주는 낡은 지도는 소용없을 것이다. 성장이란 하나의 답에 최단 경로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아름다운 경로를 발견해 나가는 데 가깝다.
옆 사람을 제쳐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나란히 달리는 선택은 어른들이 준비해 둔 “더 나은 미래”와는 다른 목적지로 향한다. 아이들은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 “다른 애들”과 “같은 마음”으로 손을 잡고 미래에 도착한다.
최상희는 우리가 낯선 타자를 서로의 과거와 미래를 모르는 채로 믿는다는 기적이 어떻게 가능한지 소설을 통해 밝혀낸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 남들과 조금 다른 “눈동자”를 지닌 렌과 친구들에겐 두려움을 넘어 연대하는 용기, 우정을 섣불리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있다. 초능력(超能力)이 무언가를 초과하여 넘어서는 힘을 의미한다면, 최상희의 인물들은 ‘연대’와 ‘우정’이라는 초능력의 소유자다. 이하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저자의 말

원고를 고쳐 쓰고 있던 어느 추운 겨울밤,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 밤 우리는 총을 든 군인들과 군인이 겨눈 총부리와 거리로 진격하는 장갑차를 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을 보았다. 그 밤 잠들지 못하고 떨면서 보았다. 똑똑히 보았다.

그 밤 이후 지금도 나는 늦은 밤 이유 없이 가슴 두근거리며 뒤척이고 종종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그 밤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기에, 그 밤의 일이 다시 일어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내 고양이들이 자는 숨소리에 안도하며 나는 눈물을 닦고 잠을 청한다.

오랫동안 묻어 둔 원고를 다시 꺼내든 이유를 나는 알게 되었다. 폭력의 실체를 말하고 싶다거나 내게 폭력에 맞설 힘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흉포하고 잔인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며 살아남고자 연대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였다.

무섭고 슬플 때마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응원봉의 불빛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 렌과 위령, 나기도 함께 노래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고 보았고 들었다. (…)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고 쓰고 싶고 그치지 않고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