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519

눈물이 움직인다

손택수  시집
출간일: 2025.05.28.
정가: 13,000원
분야: 문학,

“슬픔도 아픔도 들판의 황금 밀밭을 불어가는

숨결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까”

 

지극하고도 순정한 서정의 언어로

삶의 한가운데서 길어올리는 슬픔이라는 가능성

 

 

전통 서정의 맥을 이어가면서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수려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손택수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눈물이 움직인다』가 창비시선 519번으로 출간되었다. “개인적 삶이 품은 고통의 이력과 현 사회 욕망의 시스템을 시인 특유의 시적 성찰과 발견의 세계로 이끌어 승화한 놀라운 성채”라는 평을 받으며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한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문학동네 2022)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담백하고 감성적인 언어와 세심한 관찰력으로 일상의 정경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동시에 우리 생의 진실을 파고드는 순정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고통과 슬픔의 흔적들을 더듬어가며 삶의 희로애락과 그 아름다움을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투명한 수채화처럼 단아한”(이찬, 해설) 이 시집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성찰하며 찬찬히 되돌아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촉석루에 다녀와야겠어

가는 길이 우주여행 같을 거야”

평범한 풍경에서 건져올리는 삶의 본질

 

시력 27년이라는 세월 동안 여섯권의 시집을 펴내며 매번 시세계를 새로이 갱신해온 시인 손택수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한층 농익은 언어 감각과 완숙한 은유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서정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는 “해저 같은 고요 속으로/하얗게 지워진 것들의 목록을 작성”(「자정 가까이 폭설」)하며 아득한 그리움의 시간 속으로 잠겨들어 지나온 삶의 곡절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뜬 듯 만 듯 깨어 있던/가난한 나의 창”(「눈곱재기창」)과 “사물에 영혼을 입히는 당신들”(「의자」)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새 “가슴팍에 귀를 대고 당신의 멈춰버린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귀」) 애틋한 감응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름도 집도 잊어버린 요양원”(「담양 참빗」)과 “침상에 종일 붙어 있던 노인”을 지켜보며 “사지를 움직일 수 없으니/눈물이 움직인다”(「밥풀로 붙인 편지」)고 말할 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사유의 폭이 더할 바 없이 깊고 넓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을 슬픔으로 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매일같이 연습해”(「저녁을 짓다」)보며 그것이 더할 수 없는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우리의 가능성”(「빵과 노동과 신」)이기도 함을 통찰해낸다. “반복되는 이 지루한 날들이 다시는 올 수 없는/천체의 일”(「운석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인은 일상의 평범한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해 우리 앞에 그려 보인다.

한편 시인은 개인의 회한을 넘어 보편적 고독에까지 시선을 옮겨다 놓는다. 강변에 아파트가 들어선 탓에 “강을 잃어버린 강”의 “뻣뻣한”(「한강」) 흐름과 “폐지처럼 구겨진 노인들이/폐지 더미 수레를 끌고 가는 광장”(「북광장의 명상」)에서 문명사회의 이면을 직시하는가 하면, “진을 친 차벽 너머”로 “동지 밤에 사발통문이 폭발”(「리듬의 역사」)하던 가까운 어느 밤의 풍경을 소환하며 현실에 대한 통렬한 감각을 드러내기도 하는 대목에서는 시인의 실천적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돌을 쥔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온기가 있다

나의 체온이 건너간 것이다”

 

이처럼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빛나는 손택수의 시에는 낮은 존재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이 따뜻하게 배어 있다. “누구나 한번은 고아일 때가 있”음을, 그렇기에 “고아끼리 손을 잡고 견뎌야”(「바닷가에 두고 온 아이」) 함을 아는 시인은 “현실의 생활세계와 가치의 이상세계 사이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을 무수한 어긋남”(해설) 속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고 삶의 그늘진 곳에서 웅성거리는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간곡한 마음으로 품어 안는다.

“떠나는 거 서운치 않게”(「이별하는 돌」)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저녁을 짓다」)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무수한 기억 속 풍경들을 슬픔이라는 가능성으로 되살려낸다. 그 태도에는 굴곡진 삶의 비애를 노래하면서도 결코 감상에 함몰되지 않는 단단한 시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꾸밈없는 꾸밈”(해설)의 미감이자, “텅 빈 백지의 아름다움”(「마라톤 타자기」)으로 반짝이는 단정한 서정의 한 경지라 말할 수 있으리라.

목차

제1부

미륵사지에서

이별하는 돌

운석 찾는 사람

눈곱재기창

첼로

담양 참빗

밥풀로 붙인 편지

바닷가에 두고 온 아이

태양의 아이

의자

보물쪽지

구두에 창을 내다

모래성

모래별

만어사에서

수국

저녁을 짓다

후렴부만 기억나는 저녁

 

제2부

빵과 노동과 신

한강

유리벽을 향해 날아가다

노인벼

리듬의 역사

베트남 난민 수용소의 추억

주제가 있는 숲

선납숲의 고양이 눈을 빌려

풀과 구름과 나의 촌수를 헤아리다

등나무 꼬투리 속의 폭풍

설해목

무덤가에 눈사람을 세워놓고

공생염전

소금의 결정

입파도에서

 

제3부

심심하다는 말

눈물 폭포

물향기수목원

신파처럼, 한번쯤은

자정 가까이 폭설

겨울밤에 바람이

오래 미워한 자를 위한 문상

흰옷의 느낌

결혼기념일

고래의 도시

빵 나오는 시간

오래된 골목 끝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콩나물국밥

산에 걸린 잠수함

망원동을 떠나며

잠의 빈민

거리에 나의 얼굴이 생겨날 때

하이힐 블루스

북광장의 명상

사물의 탄생

 

제4부

젖은 새

죽간본

윤필암

눈물의 왕

쌀과 콩의 서예

전혁림의 목욕 의자

강요배의 한라산에 취하다

술잔의 레퀴엠 그리고 송기원

마라톤 타자기

모과의 문장

숲의 귀

종이 유령

녹슨 피

목조집의 도둑

소혹성

 

해설|이찬

시인의 말

이 시집에는 내가 잘 모르는 아름다움이 있다. 꼬마 의자, 담양 참빗, 명창 이화중선, 입파도와 만어사, 그리고 오래 미워한 사람을 위해 문상 간 이의 마음…… 나는 이들을 본 적은 있으나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진 못했다.
이 시집에는 내가 아직 잘 모르는 슬픔이 있다. 숲과 모과와 유리컵에 자기 귀를 붙여준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슬픔, 늙고 병들어 점점 사물이 되어가는 이의 눈물과 혼자 남는 것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 있다.
시인은 “누구나 한번은 고아일 때가 있지/고아끼리 손을 잡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오지”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시간이 오면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듯이 그의 시집을 펼쳐야지. “그게 슬픔이고 아픔이지만/그런데 알아/그게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거”. 그래, 그의 말을 믿고 그 가능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메리 올리버의 말을 떠올린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손택수의 시집은 사랑과 질문의 리듬을 따라 뛰는 심장박동들로 가득하다. 시인의 말대로 “말을 접는다 잘 접으면 종이에/심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

진은영 시인

저자의 말

노래에 자신이 없으면 우는 아기라도 안아보자. 아기를 달래거나 재우기 위해 어릴 적 동요 몇 소절이라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될 테니까.

아기가 울면 하던 일 멈추고 달려와 노래를 불러주던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아기가 그리 깨어날지도 모르지.

인형을 재우며 어른들을 기다리다 잠이 든 아이야, 이제는 내가 나를 안고 노래를 부른다.

다 큰 내가 아기가 되어 듣는 노래, 나 같은 음치도 가객으로 만들어주는 노래.

세상에 아무도 없으면 자장가라도 불러보자. 먼 어미도 오고 이웃집 누나도 오고 무서운 동냥치도 오고 지금은 없는 사람들도 노래를 따라오는구나. 그들을 재우는 노래를 내가 따라 부르는구나.

자장가 속에 있으면 동가식 서가숙 뒹구는 돌멩이의 설움도 마냥 서럽지만은 않아서, 아야 때리고 차고 함부로 깨부수던 소리들까지 다 나의 노래가 되었는가 한다.

 

2025년 봄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손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