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필립K.딕상 수상작 ●
세계 3대 SF문학상 석권!
드디어 한국에서 만나는 압도적 이름
경쾌한 상상력, 정교한 서사, 우아한 문장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이야기들
‘1년 동안 미국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SF 출판물’에 수여되는 필립K.딕상을 2020년에 수상한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정서현 옮김)가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번에 창비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저자 세라 핀스커는 세계 3대 SF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석권한 뒤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스타작가로 급부상했다. 이 가운데 휴고상은 두 차례, 네뷸러상은 무려 네 차례나 수상하며 마르지 않는 상상력과 작품성을 증명해왔다. “읽을수록 즐겁고 놀라울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동시에 애절하다”(『퍼블리셔스 위클리』), “사려 깊고 매우 감동적이다”(『로커스 매거진』), “아름답고 씁쓸한 이야기. 그야말로 완벽하다”(『SF 레뷰』) 같은 찬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저자의 첫 소설집임에도 한 차원 높은 상상력과 밀도 높은 서사로 SF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중편 분량의 작품부터 네다섯 페이지가량의 엽편에 해당하는 작품까지 총13편 이야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권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경쾌한 상상력이 자아내는 따뜻하고도 매혹적인 핀스커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휴머니즘으로 창조된 개성적인 인물
예측 불허의 전개 끝에 찾아오는 감동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가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투하는 개성적 인물들”(「옮긴이의 말」) 덕분이다. 우주여행, 멀티버스, 디스토피아 등 이제 대중문화 전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SF 요소가 곳곳에 주저음으로 깔려 있지만, 세라 핀스커 특유의 휴머니즘을 통해 입체화된 등장인물은 여태껏 본 적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이는 첫 작품 「이차선 너비의 고속도로 한 구간」부터 바로 느껴진다. 주인공 ‘앤디’는 여자친구 ‘로리’를 사랑하는 마음에 팔에 “로리와 앤디 끝까지 영원히”라는 문신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둘은 이별했고, 문신을 새긴 팔마저 사고로 잘려 나갔다.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앤디는 뇌-컴퓨터가 탑재된 로봇팔을 이식받고 깨어난다. 새로운 신체 부위에 적응하기란 여러모로 힘들지만 가장 힘든 것은 “팔이 고속도로가 되는 꿈”(15면)을 꾼 이후 자꾸 머릿속에 등장하는 콜로라도주 동부의 이차선 고속도로다. 앤디는 그 원인이 이식받은 팔 때문이라 생각하게 된다. 앤디가 모르는 어떤 과거가 기계를 통해 이식된 것일까?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단순한 전개를 허락하지 않는데, 이윽고 마주하는 기억의 진실에서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표제작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의 배경은 거대한 해양 재난이 일어난 이후 멸망한 세계다. 배 같은 해상 탈출수단이 사라진 상황, ‘베이’는 해변에서 떠내려오는 것 가운데 ‘데브’가 있지 않을지 걱정하며 바다를 바라본다. 많은 이들이 널브러진 물건과 함께 해변에서 발견되지만 온전한 신체로 당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록스타인 ‘개비’를 구하게 되고 베이와 개비는 생존 경험, 파괴된 사회에 대한 회상,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듭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음 날 개비는 베이의 기타를 훔쳐서 도망가는데, 기타에 숨겨진 비밀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정서적 유대가 생겨난다. 이제 두 사람은 희박한 생존 확률을 안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도시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 불안을 털어내려는 듯 개비는 연주를 하고, 베이는 거기에 가사를 붙인다. 띄엄띄엄 이어지는 노래 끝에 제목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밖에도 오래전 떠나왔지만, 고향인 지구의 음악을 이어가기 위해 우주선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엔지니어(「바람은 방랑하리」), 분해된 채 가방에 담긴 로봇 할머니를 끌어안고 박해를 피해 떠나는 유대인 손녀(「그녀의 낮은 울림」),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을 일년에 하루만 돌아오게 하는 기술이 가능한 세계의 모녀(「기억살이 날」)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애틋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애틋함이 어느 순간 독자 개개인의 기억과 맞물려 몰아치며 서사적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SF로 드러내는 폭력의 기억과 역사
그리고 능숙한 연주처럼 이어지는 현란한 서사
개인과 사회에 가해진 폭력의 역사를 직시한다는 점도 여타 SF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깊이다. 「뒤에 놓인 심연을 알면서도 기쁘게」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작품에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국가 폭력에 부역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조지’의 고뇌가 드러난다. 조지는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된 상태이지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한 손으로 무언가를 그린다. 그것은 창문도 문도 없고 중앙에 감시탑이 솟아 있는 감옥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이야기는 훌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1년, 군인이던 조지는 뉴멕시코에 파병을 갔다 왔는데 그 이후 다정했던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민하고 냉랭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어느 밤 조지는 울면서 무언가 끔찍한 건물을 지었음을 암시한다. 다시 현재, 조지를 괴롭힌 건물의 설계도가 발견된다. 아내인 ‘밀리’는 그 설계도에서 어떤 실수를 찾아내는데, 감시탑이 절대 볼 수 없는 맹점이 존재했던 것이다. 실제 건물도 그렇게 지어졌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개와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찾아오는 울림이 개인과 역사의 문제에 이른다.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도 있다. 서정적인 톤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우리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리고 (N-1)명이 있었다」같이 스릴러처럼 박진감 넘치는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N-1)명이 있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는 제목부터 영국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의 패러디다. ‘아무도 없다’와 ‘한명이 적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멀티버스의 원리를 발견한 주인공인 양자학자 ‘세라 핀스커’는 여러 우주의 세라를 한자리에 모으는 ‘세라콘’을 개최하는데, 이야기는 그 현장에서 한 세라가 살해당하면서 이어진다. 살해자와 탐정 모두 ‘세라’인 혼란스러운 상황, 피해자가 된 자신을 마주한 보험수사관 ‘세라’는 이윽고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로 결정한다. 흥미진진한 전개 중에도 작품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각각의 세라가 어떤 “분기점”(426면) 때문에 달라졌는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능숙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양극화나 기후위기의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음악적 요소를 폭넓게 차용했다는 점도 이 책의 특별한 점이다. 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을 네장이나 발매한 저자의 이력과도 관련이 깊은데, 앞서 언급한 표제작은 물론이고 「고독한 뱃사람은 없다」 「바람은 방랑하리」 등에서도 음악이 서사의 주된 재료로 사용된다. 특히 네뷸러상을 수상한 또다른 대표작 「열린 길의 성모」는 밴드문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데이지’라는 밴을 타고 순회를 하는 록밴드의 멤버 ‘나’는 소설 밖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인디밴드의 멤버 같다. 그러나 소설 속 세상은 ‘스테이지홀로’라는 기술이 개발되어 사람들은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무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밴을 타고 돌아다니며 실황 공연을 하는 이 밴드는 시대에 한참 뒤처진 것이다. 스테이지홀로는 계속 계약을 독촉하지만 멤버들은 거절하고, 그럴수록 가난해진다. 어느 날 운 좋게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그들은 누군가의 호의 덕분에 숙소까지 제공받지만, 다음 날 밴은 물론 거기에 실린 악기까지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진지하게 스테이지홀로와의 계약을 논의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느 순간 이 이야기가 가상의 시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이들의 고민에 푹 빠져든다. 신념과 타협 사이의 고민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음악을 단순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서정적이고 차분한 구간과 반항적이고 경쾌한 구긴이 교차하는 능숙한 연주처럼”(「옮긴이의 말」) 글 스타일에도 적용한다. 이러한 리듬감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또다른 이유가 된다.
출간 당시 미국의 유명 서평 매체 『커커스 리뷰』는 “이 소설집은 앞으로 거칠게 질주할 세라 핀스커의 문학적 여정의 상서로운 출발점”이라는 평을 남겼다. 실제로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는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여전히 인기를 구가 중이다. 정교한 서사와 우아한 문장으로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 이야기들이 이제 한국의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이차선 너비의 고속도로 한 구간
그리고 우리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기억살이 날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그녀의 낮은 울림
죽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간적 실향민을 위한 슈얼 쉼터
뒤에 놓인 심연을 알면서도 기쁘게
고독한 뱃사람은 없다
바람은 방랑하리
열린 길의 성모
일각고래
그리고 (N-1)명이 있었다
옮긴이의 말
저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