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 씨 인터뷰

이대일  동시집  ,  다나  그림
출간일: 2025.02.07.
정가: 13,0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향한 오롯한 마음

발 딛고 선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동시집

 

2021년 제13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대일 시인의 첫 동시집 『범고래 씨 인터뷰』가 출간되었다. 삶과 죽음을 직시하는 묵직한 시선이 느껴지는 한편 유머와 긍정의 힘으로 성장하는 어린이 화자들이 밝고 활기차다. 숨 쉬는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이 동시집 전반에 흐르는바, 이 온기는 가족과 친구, 범고래와 길고양이, 우주로까지 뻗었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며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독창적인 시선으로 환경과 생명, 어린이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조화롭게 풀어놓은 동시들이 어린이의 세계를 확장해 줄 것이다. 총 56편 수록.

 

“지구에는 무슨 볼일로 왔니?”

모든 생명에게 안녕을 묻는 상냥하고 믿음직한 동시 세계

 

『범고래 씨 인터뷰』는 이대일 시인이 어린이 곁에서 오랫동안 벼려 온 시 세계를 엮은 첫 동시집이다. 등단작 중 ”어느 한 편도 독창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지 않은 작품이 없다.”라는 평을 받으며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강렬하고 밀도 높은 언어로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시적 공간을 탄생시켰다. 단짝 친구의 부재를 “네모난 빈칸 같은 자리”라고 표현한 「빈칸」, 선생님에게 혼날까 봐 조마조마한 어린이의 마음을 긴장감 있게 그린 「바이러스」, 여름 방학을 앞둔 시점의 설렘을 달콤한 간식에 비유한 「여름 방학 만들기」 등 어린이의 입말과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들이 유쾌한 웃음을 주는 가운데,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한 동시들 또한 눈에 띈다. 인류가 최초로 촬영에 성공한 블랙홀로 알려진 ‘M87 블랙홀’에게 ‘우리 은하’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지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M87 블랙홀에게」가 대표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순환을 넌지시 가르쳐 주며 독자의 시야를 넓힌다. 텅 빈 집에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안기면” 집의 “심장이/쿵쾅쿵쾅”(「심장 소리」) 뛰는 것처럼, 고된 일과를 보낸 아빠의 “작동 버튼을 오프(off)로”(「아빠 충전」) 맞추면 아빠의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 좋은 충격으로 마음이 두근거릴 시 세계가 열린다.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타자의 고통을 우리 곁으로 불러오는 목소리

 

이대일 시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어린이의 마음을 노래하다가도 인간의 욕심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에게 눈길을 돌릴 때면 단호하고 냉철해진다. “철창 속에 갇혀/매일매일/커피콩만”(「사향고양이」) 먹는 사향고양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복제” 동물로 태어나 평생 “마약을 탐지”(「비글 메이」)하며 사는 개를 비추는 작품은 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통찰력과 더불어 탐사 다큐멘터리 영상의 카메라 같은 예리한 시선이 돋보인다.

 

―어디에 사시나요?//저는 좁은 수조에서 살아요/여기서 일도 하고요/잠은 물탱크 속에서 자요//―네? 수조에 사신다고요? 일을 하신다고요?//네,/매일 오전 아홉 시에 시작해서/한 시간씩 여덟 번/늘 정해진 일을 똑같이 반복해요//(…)//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글쎄요/아 참! 어느 날 한 꼬마가 저를 보고는/“와! 범고래다.” 하더라고요.//범고래?/그게 뭐죠? ― 「범고래 씨 인터뷰」 부분

 

표제작에서 범고래는 인간의 여가 공간인 수족관에 갇혀 노동하는 존재다. 이 범고래는 물살을 느낄 수 있는 넓은 바다와 싱싱한 먹이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이 시는 주인공으로 주목받는 듯 보이는 범고래가 사실은 고유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인간에게 이용만 당하는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발 딛고 선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인의 시선은 도시에 사는 야생 동물들에게도 두루 미친다. 흔히 ‘교통안전 교육’이라고 하면 인간이 받는 교육이라는 인식이 높지만, 시인은 도시의 야생 동물들을 안전 교육의 수강생으로 불러온다. 그들에게는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 아스팔트나 “이빨 같은 자동차” 모두 안전한 일상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간의 입장에서 무심코 말하는 ‘안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안전인지를 숙고하게 한다. 다른 존재와의 상생을 고려하지 않고 제 편리함만 좇는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생명체에게는 생사의 문제가 되는 점을 정확하게 비판하는 시인의 시선이 미덥다.

 

“엄마는, 곧 나비가 된대요.”

슬픔과 외로움을 껴안으며 단단하게 자라는 어린이

 

이대일 시의 특장 중 하나는 슬픔을 다스리는 방식이다. 등단작 중 한 편인 「책」에서 손자인 화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자취를 담담한 태도로 좇는다. 할머니에게 농사일이 마치 책을 읽는 일처럼 늘 새로운 기쁨과 감동을 주었듯, 화자에게 할머니 역시 한 권의 책, 미지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슬픔을 삼키고 할머니의 흔적들을 꼼꼼히 읽어 나가는 화자만의 추모 방식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인간의 죽음을 나비의 우화 과정에 빗대는 「나비」에서 화자는 엄마가 “고치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하늘나라로 날아”갔다고 말한다.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서 주저앉기보다는 외려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다시 매일을 살아가려는 차분한 태도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인은 또한 누구나 살아가며 겪게 마련인 크고 작은 아픔도 보드라운 유머로 승화한다. 무릎이 까져 상처가 난 어린이 화자는 “까진 무릎에/‘공사 중’/팻말이” 붙었다며 “안에서 뭘 하는지/들여다보고”(「상처 딱지」) 싶다고 호기심을 내비치며 엉뚱한 상상을 뽐낸다. 하굣길, 외로운 마음을 운동장 한 편에 덩그러니 놓인 축구공에 투영한 화자는 축구공에게 “내일 만나자며/이제 그만/집으로 돌아가서 쉬라고” 말하며 가뿐해진 마음으로 공을 “골대 안으로 밀어 넣어”(「안녕, 축구공」) 준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뿌리 내리고 살아남는 강인함//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순서 지키며 꽃 피우는 예의//꿀벌 꽃등에 배추흰나비 꽃무지/가리지 않고 베푸는 자비//(…)//어디든 망설이지 않고/멀리까지 날아가 보는 모험심//이 모든 걸 갖춰야/민 씨 가문의 자손이다 ― 「민들레 가문」 부분

 

시인은 민들레가 어떤 고난에도 살아남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굳센 용기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졌기에 귀하고 미쁘다고 본다. 추위 속에서도 강인하게 뿌리 내리는 민들레의 생명력은 어린이의 무궁한 잠재성과 연결되며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너그러운 포용력이 엿보이는 이대일의 동시들이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재미와 세심한 위로를 전하는 한 권의 ‘책’, 즐거운 미지의 세계로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목차

제1부 까진 무릎은 공사 중

심장 소리 | 별 | 아빠 충전 | 중력 | 상처 딱지 | 점심시간과 나 | 민들레 가문 | 점자 | 수학 괴물 | 1학년 | 바이러스 | 슬리퍼는 슬퍼 | 문장 부호 | 파이(π)

 

제2부 여름 방학이 바닥으로 툭

빈칸 | 매미 소리 | 요가 | 여름 방학 만들기 | 책 | 볼펜 | 밥 | 마지막 먼지 | 안녕! 외계인 | 전기공 아저씨 | 우리 집 감나무 | 자동차 | 사춘기 방정식 | 작심삼일

 

제3부 기다리고 있던 딸기

딸기 생크림 케이크 교향곡 | 배추흰나비 애벌레 | 피사의 사탑 |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수 | 모기 | 박쥐 아저씨께 | 뱃멀미 | 사향고양이 | 안녕, 축구공 | 비글 메이 | 바지락 | 범고래 씨 인터뷰 | 강아지 | 젓가락

 

제4부 늦가을 정류장

음반 | 가을 자동차 | 버스 | 나비 | 안마 | 정글 | 교통안전 교육 | 열여덟 어른 | 자동 풀 | M87 블랙홀에게 | 친구 | 자벌레 | 눈사람 | 길

 

해설|교향곡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소리_남호섭

시인의 말 | 어린이와 어린이였던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