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501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도종환  시집
출간일: 2024.05.10.
정가: 11,000원
분야: 문학,

깊은 흑요석 같은 시간을 만나게 하여주소서

내 안의 어두운 나를 차분히 응시하게 하여주소서

 

격랑의 복판에서 오롯이 고결한 영혼, 한국 서정시의 거목 도종환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시력 40년의 역작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서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도종환의 열두번째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이 창비시선 501번으로 출간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보듬는 “격렬한 희망”(박성우, 추천사)의 시로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 『사월 바다』(창비 2016)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뜻깊은 시집이다. 시인은 3선 국회의원이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현실정치에 투신하는 동안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온 “고뇌의 흔적들”(시인의 말)을 진솔한 언어로 토로한다. 동시에 자연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순환하는 계절의 흐름에 실어 섬세하고 정갈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오랜 시간 맑고 투명한 시심을 잃지 않은 시인의 견결한 마음이 뭉클하게 와닿는다. 특히 연륜과 내공이 엿보이는 단형시의 아포리즘은 서정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편 시집의 품격을 높인다.

나와 다른 것을 혐오하는 세태, 거친 분노의 언어가 들끓는 어둠의 시대 정중앙에서 시인은 알베르 까뮈가 말한 ‘정오의 사상’을 소환한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추구함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조화, 즉 정오에 다다르게 된다는 사상이다. 정치와 시, 도시와 자연. 절대 맞닿지 않을 듯 보이는 양극에 동시에 발 디딘 채 자신을 혹독하게 다그치며 마음을 정순하게 가다듬어온 시인의 귀한 깨우침이 적확하고 미려한 시편들로 화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부조리한 세상을 꾸짖는 그의 노성이 장엄하다. 자연 앞에서 자신을 겸허히 낮추며 깨우침을 희구하는 기도는 감미롭다. 정신적 내전 상태에 다다른 현대인에게 “순결한 정신주의자의 고뇌”로 읽힐 이 시집은 “마음의 쓴 약”과 “회초리”(안도현, 추천사)가 되어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으로 가슴 깊이 퍼질 것이다.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되새기는 역사의 가르침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집에도 시인과 정치인이라는 두가지 정체성과, 거기서 비롯되는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시 쓰다 말고 정치는 왜 했노?”라는 물음에 시인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심고(心告)」)다고 순정한 마음을 고백한다. 또한 역사를 통찰하는 격조 높은 비유로 우리가 곱씹어볼 고민거리들을 던진다. 조선시대 사림(士林)의 정계 진출을 돌이켜보자. 큰 뜻을 품은 성리학자들이 선조 치하에서 정권을 잡았지만 이내 붕당 간의 소모적인 반목이 심화되고, 외세의 침략까지 맞이한 조선은 심대한 위기에 처한다. 급기야 처절한 징비(懲毖)의 기록을 후세에 남겨야 했던 사림의 실패를 시인은 작금의 현실에 대입한다. “꿈꾸던 세상이 오리라던 믿음”은 무너지고 “수백년 적폐를 단 몇해에 바로잡는 게/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어째서 “나라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사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묻는다.

이때 “오해의 화살”에 맞고 “비난의 칼날에 베여 비통해”(「새해」)할지언정 “적개심으로 무장한 유령들”(「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을 탓하지 않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눈길을 끈다. 그는 깊이 절망하면서도 “성정이 남루해지는 건 오히려 제가 아닌가”(「속유(俗儒)」) 자문하며 반성한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내 안의 어두운 나를 차분히 응시”(「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하는 장면에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신령한 기운마저 서려 있다. 이 가없는 참회의 어둠 속에서 길 잃은 ‘나’를 이끌어주는 것은 이치를 탐구하고 백성의 안위를 염려하며 ‘기본’에 충실했던 옛 성현의 가르침이다. ‘나’는 다산 정약용, 퇴계 이황 등 위대한 스승들을 떠올리며 격물치지(格物致知), 이용후생(利用厚生), 경세치용(經世致用)과 같은 유학의 정신을 읊조리고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 번뇌와 좌절을 딛고 역사의 교훈과 초심을 치열하게 좇음으로써 간곡하고 간절하게, 정오의 도래를 주문하는 것이다.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시

이번 시집 곳곳에 담긴 아름다운 자연물은 감상의 대상보다 반성의 매개체이자 삶의 지향에 가깝다. 시인은 온갖 모욕과 증오가 난무하는 도시에서 부대끼느라 피폐해진 심신을 자연에 의탁하여 “죽음과 영원한 삶의 이치 밝게 꿰뚫어보는/깊은 지혜”(「이단」)를 얻는다. 예컨대 “나무 가득 꽃 피워놓고/교만하지 않는 백매화”(「꽃나무」)를 보며 절제와 겸허의 미덕을 배우고, “자신에게 오는 모든 순간순간을/받아들일 줄”(「가을 나무」) 아는 나무의 미덕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삶의 경건함을 깨닫는다. 시적 화자가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숭고함에 가깝다. 그에 비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한없이 초라하지만, 그 초라함마저 숨기지 않고 털어놓음으로써 시인은 독자들에게 공감의 자리를 내어놓는다. “혼탁한 물”과 “퀴퀴한 냄새에 휩싸인” 가로수를 바라보며 자신 또한 “도시로 불려 나와 산 지 오래되었”(「도시 장미」)다고 말하는 담담한 문장이 씁쓸하게 읽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흙먼지 덮어쓴 가로수라 한들 나무가 아닐 수는 없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세속의 때가 자욱한 곳에 거한들 가슴에 자연을 품은 이상 시인은 시인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 무겁고 “사나운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사의재(四宜齋)」) 다짐한다. 거센 태풍과 노도에 맞서는 이 인생이라는 항해가 “치열하고 절박한 생의 시간으로 축적”(「출항」)되리라 믿고 몇번이고 다시 출항을 결심한다. 역경 앞에서 삶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묵묵한 자세에서 우리는 도종환 시의 심원한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불의의 시대를 함께 건너는 따스한 동행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도 시인은 “세속의 길과/구도의 길이 크게 다르지 않다”(「풀잎의 기도」)는 믿음을 간직하며 온유함을 잃지 않는다. ‘부드러운 직선’처럼 섬세한 감성과 올곧은 선비정신을 동시에 가꾼다. “제비꽃 애기똥풀 같은 꽃만 보아도 마음이 순해지고”,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고/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걸” 명심하며, 늘 몸을 숙여 세상의 낮은 곳에 온기를 나눈다. 고달프고 외로운 이들에게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이/가장 큰 복수”(「숲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다」)라고 진정어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이 그늘진 인생의 골목길에 밝힌 “사랑과 연민의 초”(「대림(待臨)」) 옆에 나란히 서보자. 사계절이 무상하듯 자정의 암흑도 언젠가 걷히기 마련이다. 가녀린 촛불 하나도 언젠가 “칠흑 같은 세상”(「전야」)을 밝힐 무수한 촛불이 되고 끝끝내 정오의 햇살로 세상을 비출 것이다.

목차

제1부

깊은 밤

쉬는 날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흐린 날

바깥

쌍무지개

노을

낙조(落照) 1

낙조 2

동행

고요

사의재(四宜齋)

소금

사흘 뒤

그의 시

풀잎의 기도

초저녁별

 

제2부

예감

구월 태풍

공소(公所)

늦게 핀 꽃도 아름답다

가을 산길

가을 강

가을 나무

고마운 일 2

숲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다

결실

매화나무

촛불 네개

대림(待臨)

법고

백색 감옥

이단

가난한 절

밤바람

사랑

 

제3부

새해

콩떡

로잔

속유(俗儒)

심고(心告)

오후

폭설

입동

겨울나무

철쭉꽃

이른 봄

초봄

편지

고마운 일 1

어떤 꽃나무

꽃나무

라일락

좋은 나무

 

제4부

사림(士林)

출항

도시 장미

충돌

무너진 신전

그때

연꽃

뜨거운 고독

칠월

성탄의 밤

겨울 산

새집

차를 기다리는 시간

처서

전세

적요

전야

 

해설|진은영

시인의 말

잘게 연을 나누어 이미지의 밑밥을 툭툭 던져놓는 시가 있는가 하면 아예 연을 나누지 않고 기어이, 끝까지 연을 통째로 끌고 가는 시가 있다. 도종환은 후자의 고집스러운 기법을 택함으로써 이 고전적인 형식이 진정성에 다다르는 통로라는 걸 보여준다.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단 한번도 생각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듯, 처음부터 믿어온 사람과 자연에 대한 신뢰가 죽고 나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듯 그 형식은 매우 단호하다. 형식으로 내용을 다잡아 메시지를 끓어넘치게 하지 않는 이 방식은 근래 십수년 “도시로 불려 나와 산” 시인의 내적인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시인은 ‘속유(俗儒)’에 서 벗어나고자 ‘심고(心告)’의 태도를 견지하는 게 “무너진 신전”을 내면 안에 복원하는 길이라 확신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시집의 문장들이 간절한 기도의 양식을 띠게 된 것은 운명적인 결과라고 봐야 한다. 교만하지 않아야 하고, 겉넘지 않아야 하고, 건조한 날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무엇보다 ‘천명(天命)’을 알아야 한다니! 점점 더 성스러운 곳을 향해 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 같은 세속의 독자는 주저앉아서 프란츠 카프카의 묘비명을 중얼거린다. “내면을 사랑한 이 사람에게 고뇌는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 순결한 정신주의자의 고뇌가 마음의 쓴 약이 되고 또 마음의 회초리가 되겠다.
안도현 시인

저자의 말

“너는 왜 거기 있는가?”

사월의 꽃들이 묻습니다.

대답을 준비하는 동안 모여든 생각들이 꽃잎처럼 흩날리며 떨어져 쌓입니다.

 

지금 우리는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에 와 있습니다.

정오는 밝고 환한 시간입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가장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사람과 자연이 푸르고 따뜻하게 공생하는 시간입니다. 알베르 까뮈는 정오를 균형 잡힌 시간이라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내면은 균형이 깨진 채 극단으로 가 있습니다. 세상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이 외화된 게 세상이라고 한다면 어둡고, 거칠고, 사나운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성찰 없는 용기, 절제 없는 언어, 영혼 없는 정치는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가게 합니다.

 

“가을 물같이 차고 맑은 문장은 흙먼지에 물들지 않는다(秋水文章不染塵)”라는 말이 있습니다. 흙먼지 몰아치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티끌과 먼지에 물들지 않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世)나 다름없고 내면은 갈수록 황폐해지는데 시의 정신, 시대정신을 견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시와 만나는 시간은 영성을 회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간절해지는 시간, 고요와 균형을 회복하는 시간, 거진이진(居塵離塵)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의 위의(威儀)를 지키며 품격을 잃지 않는 시, 가슴에 따뜻하게 다가가는 시, 가을 물같이 차고 맑아 정갈하게 마음을 씻어주는 문장,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작은 힘이 되어주는 언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너는 왜 거기 있는가?”

오월의 나무들도 묻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쌓인 고뇌의 흔적들을 우선 시로 먼저 내어놓습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데가 많은 저를 데리고 이 순간까지 함께 와주신 분, 여기까지 동행해주신 고마운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절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4월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