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사랑으로 일군 언어의 숲
자연과 나란히 걷는 명랑한 발걸음
소박하고 정직한 언어로 자연과 동심을 노래하는 박철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첫 번째 동시집 『설라므네 할아버지의 그래설라므네』(2018)에 이어 이번 동시집 역시 자연과 어린이가 도탑게 어울리는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면서도, 어린이의 내밀한 마음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본다. 널따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처럼 다정하고 곧은 시심이 어린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총 57편 수록.
자연, 동심을 비추는 거울이 되다
투명하고 맑은 서정으로 자연과 교감해 온 박철 시인의 동시집 『아무도 모르지』가 출간되었다. 크고 작은 존재들의 역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핀 첫 동시집 『설라므네 할아버지의 그래설라므네』(문학동네 2018) 이후 6년 만이다. 달뜬 마음으로 어린이에게 첫인사를 건넸던 시인은, 더욱 깊어진 사랑과 함께 어린이 독자에게 돌아왔다.
자연은 언제나 어린이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 자연과 어린이는 서로의 품 안에서 참된 의미를 찾아, 비로소 “정말 봄”을 맞을 수 있다. 시인은 어린이가 자연과 한 몸, 한 마음으로 어우러지는 순간에 주목한다.
봄이 오면/개울물이 녹는다//개울물 녹아야/봄이 오는데//봄이 오면/진달래 핀다//진달래 피어야/봄이 오는데//서아야 오늘도/같이 놀자//그러면/정말 봄이다 ―「봄」 전문
앞산은 앞에 있고/뒷산은 뒤에 있네/그걸 누가 모르나//아침엔 해가 뜨고/저녁엔 달이 뜨네/그걸 누가 모르나//나는 너를 좋아하고/너는 나를 좋아하네/그건 아무도 모르지 ―「아무도 모르지」 전문
시인은 “내가 자는 동안/꽃은 나팔을 준비”한 것을 보고 “꽃이 자는 동안/나는 무얼 해 줄까” 애틋한 고민을 내보이는 어린이(「나팔꽃」), 자신의 마음을 따라 생동하는 자연에 “내 맘대로/나는 내가 좋다” 하는 긍정을 얻는 아이를 발견한다(「내 맘대로」). 자연은 동심으로 향하는 시적 통로이자, 어린이의 내밀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소박한 애정에서 머금은 시인의 시선은 읽는 이에게 큰 울림을 준다.
함께 손잡을 때 성장하는 어린이
『아무도 모르지』의 전반에는 손을 꼭 붙잡고 길을 나서는 아이들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그것은 어린이 독자에게 “풍성한 미래가 펼쳐지면 좋겠다”(「시인의 말」)는 시인의 바람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꼬불꼬불 사잇길을/맨발로 걸어 보자/맨발로 가 보자/올망졸망 언덕길을/손잡고 넘어 보자/손잡고 가 보자//(…)//맨발로 가 보자/맨질맨질 시냇물을/맨발로 뛰어 보자/하늘 더욱 맑은 날은/들판 끝까지 가 보자/맨발로 가 보자 ―「맨발」 부분
“꼬불꼬불 사잇길”도, “올망졸망 언덕길”도 함께 “손잡고 넘”는다면 그 일은 어렵지 않다. 또 집으로 홀로 돌아가는 길이면 “바람”이, “노란 민들레”가, “삽사리”와 “산새”가 함께하기에 외롭지 않다(「길」). 설사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길일지라도 서로를 살피는 마음과 함께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인도 펀자브 사막에서는」). 아동문학평론가 이충일은 해설 「마르지 않는 곳간에서 길어 올린 동심의 풍경」에서 이렇듯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고 있기에 어린이가 흥겹게, 저 먼 곳까지 갈 수 있음을 짚는다. 험하고 낯선 그 길, 즉 성장이라는 여정 한가운데서 어린이가 그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내내 뭉클하게 다가온다.
세대를 뛰어넘어 공명하는 감각
박철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 동시집에 “내 어린 날의 기억을 우리 어린이의 마음에 보태”고자 했음을 밝힌다. 그 다정한 마음 때문인지, 『아무도 모르지』에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특히 「엄마가 태어나던 날」은 섬세하고 푸근한 시심(詩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옛날옛날에/엄마가 오던 동지섣달/마당 건너 외양간에서/쇠방울 소리 울렸단다/사랑방엔 여물 끓는 냄새/은은하게 울려 퍼지고/문밖에선 함박눈이 종일/나풀나풀 울렸단다/할머니 명탯국 타령에/장에 갔던 할아버지/명태 들고 돌아오는 오릿길/쇠걸음에 비행장 불빛도/한참은 울렸단다/할아버지 잠시 숨 고르는 동안/엄마 태어나 세상 향해/함박울음도 피웠단다 ―「엄마가 태어나던 날」 전문
시인은 “엄마가 오던 동지섣달”의 풍경을 옛이야기 들려주듯 어린이 독자에게 전한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쇠방울 소리”와 “여물 끓는 냄새”, 반짝이는 “비행장 불빛”까지 다채로운 감각 속에서 그 “옛날옛날”의 시절에 따뜻하게 가닿게 된다. 오래되고 정겨운 그 시간이 어린이의 감각과 공명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시인이 넉넉한 품으로 써 내려간 이 동시집이 언제까지고 어린이 곁에서 든든한 나무처럼 함께하길 바란다.
제1부 봄비가 사부작사부작
비와 나 | 뜸부기 | 장마 | 여름이 왔다 | 소풍 | 밤하늘 | 아침 | 꿈 | 친구가 많다 | 서로서로 | 나팔꽃 | 간지럼 | 춤 | 칭찬 | 솔개
제2부 정말 봄이다
봄 | 빈 배 | 내 맘대로 | 비행장 마을 | 나무 한 그루 | 수림이네 비밀 | 아무도 모르지 | 신호등 | 소나기 | 방울의 힘 | 제부도 | 혹시 그런 건 아닐까 | 협상 | 씨
제3부 큰 배
큰 배 | 내가 채송화를 내려다보듯 | 똑같아 | 이사 | 우리처럼 | 안경을 닦으면 | 공부 | 김미희 선생님은 하루가 동화랍니다 | 친구 | 너무해 | 강가에서 | 참새가 있어요 | 길 | 밤톨
제4부 맨발로 가 보자
맨발 | 인도 펀자브 사막에서는 |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동시 | 어버이날 | 파김치와 장아찌 | 가을 | 내가 보면 | 가족 여행 | 동생 보기 | 우리 집 골목 안 | 손 | 겁 없는 아이들 | 함박눈 | 엄마가 태어나던 날
해설 | 마르지 않는 곳간에서 길어 올린 동심의 풍경_이충일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