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망가진 마음을 수선해.”
아픈 마음을 고장 난 사물에 비유하여 이야기하는 그림책 『마음 수선』(최은영 글, 모예진 그림)이 출간되었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시계, 전등, 침대, 텔레비전, 우산 등 일상의 물건이 망가져서 벌어지는 일을 기묘하게 펼친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연출과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흐름으로 우리 각자에게 내재한 힘과 연대의 가치를 조명한다. 우울, 트라우마, 불안 등 마음의 문제를 내밀하게 다루어 어린이, 청소년, 성인 모두가 읽기 좋은 그림책이다.
마음도 수선이 되나요?
고장 난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책 『마음 수선』
망가진 마음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는 그림책 『마음 수선』이 출간되었다. 새 유치원 등원을 앞둔 아이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세밀하게 포착(『한숨 구멍』)하고, 반딧불이를 통해 찬란한 내면의 힘(『빛나는 외출』)을 노래해 온 최은영 작가가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돌파하는 이야기를 섬세한 시각으로 썼다. 우울, 불안, 트라우마 등 현대인의 아픈 마음을 고장 난 물건에 빗대어 묘사한 글은 그 자체로 독특하고 흥미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두 차례 선정되며 개성 있는 화풍으로 주목받아 온 모예진 작가가 마음결을 다채로운 파스텔화로 표현하고, 독창적인 상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는 순간을 해방감 있게 그렸다. 누구에게나 있는 망가진 마음을 향해 두 작가는 진심을 담아 희망을 전한다. “때가 되면 흩어진 별들이 반짝이고 우리는 망가진 마음을 수선”할 것이라고 말이다.
마음속 불빛을 함께 찾아요
또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는 환상적인 이야기
어느 퇴근길, 무표정한 인물이 ‘마음 수선’ 가게 앞에 놓인 고장 난 시계를 가져간다.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시계 속 뻐꾸기는 ‘울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고, 인물은 정리되지 않은 캄캄한 집 안으로 들어선다. 그다음에는 도무지 잠들지 못할 만큼 삐걱거리는 침대,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바뀌지 않는 텔레비전, 물이 끝없이 쏟아져 욕실을 물바다로 만드는 수도꼭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이상한 연필처럼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고장 난 사물이 일으키는 흥미롭고 기묘한 수수께끼로도 읽을 수 있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나 트라우마에 갇힌 사람처럼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을 대입해 감상할 수도 있다.
잊고 있었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_책 속에서
어두웠던 전반부의 끝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다. 우산이 망가져 온몸으로 비를 맞은 인물은 ‘행복하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질문을 품는다. 마치 그 질문에 화답하듯 가방이 비현실적으로 커져 비를 잠시 피할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준다. 시들어 버린 식물만 가득했던 베란다는 풍요로운 초록빛 정원으로 변하고,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길을 달리던 기차는 오히려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멋진 여행을 이어 간다. 이야기는 슬픔이 만든 자유로운 수영장, 폭신한 인형이 마련한 편안한 침대처럼 좁은 공간에서 드넓은 환상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신비롭게 나아가면서 해방감을 선사한다. 『마음 수선』은 마음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부드러운 자리를 내어 주는 그림책이다.
‘나’에서 ‘우리’로
내면의 힘과 연대의 가치를 북돋는 연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출은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불안, 우울, 슬픔, 무기력 등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했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는 희망과 연대를 상징하는 노랑이 힘차게 반짝인다. 어떤 걱정은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슬픔에 온몸을 맡기고 감정을 표출해도 괜찮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채근하지 않고 가만가만 알려 준다. 면지 연출을 통해 작가는 고장 난 물건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뒷면지에서 “괜찮습니다.”라는 글귀만 남겨진 안내문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의 힘은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상황에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줄 이가 있다는 다정한 진실을 보여 준다.
『마음 수선』은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인지하고, 타인과 공감하며, 우리가 함께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수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문제는 한순간에 해결될 수 없음을 알기에 무책임한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밤이 오면 언제나 찾아오는 달처럼 독자의 마음 곁에서 은은한 빛으로 멈추지 않는 지지를 보내 주는 그림책이다. 어둠 속에서도 곁을 지켜 주는 든든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물론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환해지는 마음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줄거리
노래하지 않는 뻐꾸기시계,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켜지지 않는 전등, 잠그려 애를 써도 물이 쏟아지는 수도꼭지……. 고장이 난 물건은 아픈 마음을 닮았습니다. 마음도 수선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