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꿈의 바다

리처드 플래너건  장편소설  ,  김승욱  옮김
출간일: 2023.11.15.
정가: 17,000원
분야: 문학, 외국문학

“마침내 그가 말했다.

주변에서 온통 사랑이 사라지는 것 같아 겁이 난다고.”

 

부커상·영연방작가상 수상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이 선사하는 강렬한 서사, 경이로운 감각 체험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리처드 플래너건의 신작 장편소설 『들끓는 꿈의 바다』(The Living Sea of Waking Dreams, 김승욱 옮김)가 출간되었다.

2002년 영연방작가상을 받으면서 영미소설계의 총아로 떠오른 리처드 플래너건은 2014년 부커상,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함으로써 호주 최고의 작가로 손꼽힌다. 또한 『굴드의 물고기 책』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문학동네 2018)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이미 호평받은 바 있다.

『들끓는 꿈의 바다』는 2019년 전세계가 실제로 목도한 호주의 최악의 산불 사태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호주를 초토화시킨 한편 기후위기의 전율적인 징후로 맞닥뜨려진 그 엄청난 재난을 전경으로 두고,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한 가족의 갈등과 고뇌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이 작품은, 철저히 파편화된 개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계층 분화, SNS로 대변되는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문화 흐름 등 현실문제에 직핍하는가 하면 인물들이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환상성을 동반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적이면서 동시에 놀랍도록 감각적인 서사와 문체가 자유자재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강렬한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미증유의 기후위기, 그 속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초대형 산불이 호주 전역을 덮친 때, 4남매의 장녀이자 성공한 건축가 애나는 어머니 프랜시가 위중하다는 연락에 태즈메이니아 섬의 고향 호바트로 돌아온다. 고향에 머물며 어머니를 보살피던 둘째 토미는 무명 화가이자 말더듬이로, 늘 주눅 들어 있고 형제들에게 무시 당하지만 어머니에게 누구보다 헌신적인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막내 터조는 벤처사업가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인물이며, 어머니를 놓아드리자고 소심하게 주장하는 토미와 갈피를 못 잡는 애나를 설득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밀어붙인다.

프랜시는 자신의 의사를 묵살당한 채 하루하루 생명을 유지하는 치료를 받으면서 병실 창밖에 펼쳐지는 백일몽, 외눈박이 CIA 요원과 마녀가 아른거리는 환상에 빠져든다. 한편 애나에게도 괴이한 일이 연달아 벌어진다. 신체 일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가 사라지고 차례로 무릎, 가슴 한쪽이 차례로 사라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현상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의 방에서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들 거스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 애나는 경악하지만 이 모든 불안과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며 SNS에만 집착한다.

대멸종을 예감케 하는 자연 현상, 그리고 그와 정반대로 평온한 일상 사이의 불균형 위에 위태로이 서 있는 애나에게는 SNS 밖 세상에서 실감할 수 있는 희망이 간절하다. 애나는 멸종 직전에 처한 호주의 토종새 노랑배도라지앵무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다. 그러면서 노랑배도라지앵무가 태즈메이니아에 몇마리나 돌아왔는지 살피는 일에 자원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머니 프랜시의 생과 애나 자신의 삶은 이제 점입가경의 국면으로 치닫는다.

 

소설은 생과 사를 오가면서 지속적으로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어머니 프랜시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그러한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애나 또한 고뇌한다. “어머님이 무엇을 바라시는지 아시나요?”라고 묻는 의료진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그들은 전혀 몰랐다”(48면). 그러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어머니를 연명시키자는 토미의 주장에 편승해 애나는 근본적인 고민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이런 감정들이 도망치고자 하는 욕망과 혼란스럽게 뒤섞였을 때, 애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사실은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175면) 이것이야말로 애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직면한 지점이기도 할 터인데, 연명에 대한 섬뜩하기까지 한 토미의 집착과 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남매들의 의식 기저에는 과거 비극적인 일을 겪고 세상을 등진 또다른 형제 로니의 죽음이 자리해 있다. 첨단 의료기술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심지어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못한 채로 생명이 유지되는 것을 과연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어머니가 먹는 약을 생각해보면, 여섯알을 먹는 편이 열일곱알보다 낫고, 열일곱알이 스물한알보다 나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물한알이라 해도 여전히 죽음보다는 낫다는 점이었다”(227면)라는 절박한 마음은 어떠한가. 이처럼 막중한 질문에 대해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수많은 걸작들을 우리말로 옮긴 김승욱의 섬세한 번역으로 더욱 빛이 발하기도 한 이 작품은 기후위기, 파편화된 인간관계, 말초적인 자기전시 등 지금 시대에 대한 중대한 문제의식들을 한 가족의 서사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끝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중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 앞에 당도한 이 작품을 읽는 모두에게 보편적인 울림을 가져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극을 모르는 이 시대의 비극. 읽는 자에게 구원 있으리라.”(정용준 추천사) 한편의 소설은 때로 잊기 힘든 잔상을 남긴다..

목차

제1부 / 제2부 / 제3부 / 제4부 / 제5부 /제6부 / 제7부 / 제8부 / 제9부 / 제10부 / 제11부 / 감사의 말

우리는 모른다. 휴대폰 작은 창으로 세계의 몰락을 보고, 내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 사고를 눈앞에 두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또 봐도, 모른다. 지구가 흔들리는데 왜 나는 고요한가. 사랑하는 이에게 생긴 작은 사건은 왜 막을 수 없나. 몸은 분열하고 마음은 무거워지는데 왜 나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는 걸까. 이것이 비극인 줄 모르고 희극적으로 웃는 동안 인간이 아닌 인간이 되는 우리. 창문엔 심연이 없고 거울엔 너머가 없다는 비정한 현실. 소설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것을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되살아났다. 끊어진 신경은 이어졌고 공허한 마음은 채워졌다. 비극을 모르는 이 시대의 비극. 읽는 자에게 구원 있으리라. 정용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