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123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박영란  장편소설
출간일: 2023.10.20.
정가: 13,000원
분야: 청소년, 문학

“집은 잘 있어?”

 

낯선 곳에서 만난 비밀스러운 가족

이들과 함께한 날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나의 다정이 되었다

 

박영란 장편소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이 창비청소년문학 123번으로 출간되었다. 오래된 단독주택 2층으로 이사 간 ‘나’와 가족들이 1층에 숨어 사는 또 다른 가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청소년기의 그늘진 마음을 어루만지며 따스한 감동을 전한다. 무성한 식물로 둘러싸인 집의 오묘한 분위기와 1층 가족들의 알 수 없는 비밀이 어우러져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더하는 가운데, 소설은 읽는 이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방점을 찍는다. 박영란 작가는 『편의점 가는 기분』 『게스트하우스 Q』 『안의 가방』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하며 혼란스러운 성장의 단면을 깊이 있게 조망하는가 하면, 청소년문학의 아름다움을 갱신해 왔다. 각자의 외로운 한때를 소중히 어루만지는 이번 작품은 여러 사연이 담담히 얽혀 커다란 감동으로 발전하는 박영란 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모든 이의 마음속 다정으로 남아 언제든 되돌아볼 수 있는 안식처가 될 소설이다.

 

인물들은 그 시공간에서 몸과 마음이 자라고 또 다른 시공간으로 갈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과 함께. 김중미(소설가)

 

이 소설을 읽는 여러분이 믿음과 용기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시공간에 끝내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조인혜(교사)

 

“아래층에 사람 사는 거 우리만 아는 거다.”

무성한 초록에 감싸인 집

그곳에서 우리가 숨겨 줄 사람들을 만났다

 

소설은 고등학생 주인공 ‘나’가 가족과 함께 이사한 집으로 처음 들어가던 날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세한 입자들이 마주치는 소리” “이른 아침 알싸한 공기 속에서 안개와 꽃향기가 서로 부딪는 소리”(본문 7면)가 들려오는 듯한 단독주택 2층에서, ‘나’와 엄마, 동생 ‘준’은 1층으로부터 들려오는 미스터리한 소리에 집중한다. 이사 전 부동산 중개인이 1층을 보며 지었던 애매한 표정, 누군가 관리한 티가 나는 마당, 마당에서 잠시 보이다 사라진 어린아이들과 같은 이상한 사건들에 서서히 신경 쓰일 무렵, 동생 준은 비밀스러운 누군가 집에 있다고 주장하고 그 존재가 다른 차원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오늘 드디어 확인했어.”

“뭘.”

“키 큰 할머니가 집 안에 있어.”

“뭐?”

“백발이야.”

―본문 18면

 

사실 1층에 사는 ‘서백자’ 할머니, 할머니의 쌍둥이 손주 ‘자작’과 ‘종려’는 1층에 숨어든 가족이었다. 비밀을 가득 품은 이들은 엄마에게 자신들이 이 집의 진짜 주인이라 말하고, 엄마는 담담한 태도로 ‘나’와 준에게 그들을 숨겨 주자고 당부한다. 서백자 할머니와 손주들은 어떤 사정으로 이 집에 몰래 살게 된 것일까?

 

무수히 중첩된 시공간처럼

수많은 각자의 이야기

시절을 넘으려 애쓰는 마음

 

남다른 사연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와 손주들처럼, 2층의 가족들 역시 평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생이 실패했다고 여겨 갑작스레 고향으로 내려간 아버지를 뒤로하고 서울에 남은 엄마와 두 남매는 바뀐 삶에 적응해야만 한다. 대학 입시가 끝나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갈지, 아니면 서울에 남을지 끝없이 고민하느라 머리가 복잡한 ‘나’와는 다르게 동생 준은 시종일관 발랄한 모습으로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를 전한다.

 

“그 말이 아니야.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이곳에도 살고, 동시에 저기서도 살고.”

“가능한 일을 바라야지.”

“동시에 두 개의 길을 갈 수도 있다고 했잖아! 입자들은 그렇게 한다고 누나가 말했던 거 있잖아. 그거 뭐랬지?”

“중첩 말하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

―본문 51-52면

 

하지만 과학적 진실과 소망이 섞인 준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스스로의 현실에 빗댄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동생 역시 가족이 흩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며 어디에서 살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된다. 준이 계속해서 주변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까닭은 자기 나름대로 세상과 현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었다.

 

누군가 무너졌던 자리에서

상처를 털고 일어나는 누군가

아픈 순간에 보내는 다정한 안부

 

나의 가족들, 그리고 서백자 할머니 가족들의 이야기는 서로 기대어 자라는 넝쿨처럼 무성해진다. 한집에 살게 된 두 가족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며 큰 소리로 울분을 토하지 않는다. 누가 더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는지 견주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상대의 손을 가만히 맞잡고 곁에 있어 준다.

 

“나는, 평생 동안 형하고 자작하고 종려를 사랑할 거야.”

준한테서 흘러나온 말이 창을 통해 고요한 시공간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본문 110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예전과 달라진 환경에 겁을 먹었을”(109면) 준, “아무렇지 않은 듯 놀고 있지만 겁을 먹었을”(120면) 종려와 자작같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변화에는 어느 누구라도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픈 순간을 견뎌야 한 뼘 자라는 성장통처럼, 혼란스러운 시기를 넘어 단단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박영란 작가는 마치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온기 어린 손길로 전한다. 또한 이 아픔이 모든 이의 청소년기에 드리우는 어둠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한다. 누구나 성장하며 겪는 그늘을 따스히 보듬고, 그곳으로 안부를 전할 용기를 북돋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목차

아스라한 종소리

입자들의 조우

숨거나, 죽거나

서로를 알아본다면

시간의 메아리

사건의 지평선에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 초록빛 무성한 낡은 집으로 초대되고, 주인공들과 함께 낯선 소리와 냄새에 이끌려 그 집에 깃든 비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래된 이곳은 누군가가 살던 자리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는 다시 시작한다.”
이 소설은 얼핏 ‘나’와 동생 혹은 ‘자작’과 ‘종려’의 가족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그들에게 머물 곳을 제공해 준 시공간이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인물들은 그 시공간에서 몸과 마음이 자라고 또 다른 시공간으로 갈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과 함께. 김중미(소설가)
위기를 맞은 어느 가족이 갑작스럽게 머물게 된 집에서 또 다른 가족을 만난다. 이 낯선 조우를 통해 인물들은 저마다 혼란했던 시기와 사건을 넘어 새로운 성장을 향해 나아간다. 마음속에 품었던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건의 지평선’을 넘도록 이끄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다. 삶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도 우리는 무언가 선택할 수 있음을, 무너진 곳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는 여러분이 믿음과 용기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시공간에 끝내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조인혜(교사)

저자의 말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서백자 할머니 가족과 이제 막 이사한 주인공 가족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시공간이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방식으로,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요. 우리가 주변의 풍경이나 소리, 향기, 건축물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위로받는 걸 보면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