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아동문고 329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

안미란  지음  ,  유시연  그림
출간일: 2023.06.16.
정가: 12,0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그냥 씨, 저 좀 도와주세요!”

짠 내 나지만 당차고 씩씩한 동물들의 도시 생존기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안미란 작가 신작

 

동물권, 장애 인권, 환경 문제 등 중요한 사회 문제에 꾸준히 귀 기울여 온 안미란 작가의 신작 장편동화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가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에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공존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안위를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고양이 그냥 씨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의지하는 동물들의 연대가 빛난다. 기후 위기와 야생 동물의 삶, 인간의 주거 문제, 이주 노동자의 노동권까지 수많은 토론거리를 확인하며, 구석구석 촘촘하게 연결된 사회 생태에 관해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낯선 곳에 닿은 동물을 반갑게 맞아 주는, 예의 바른 고양이니까.”

도시 동물의 편안한 삶을 위해 그냥 씨가 나섰다!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도시를 찾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새끼를 키우기 위해, 천적을 피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도시 생활이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그렇게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한 이방인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친절한 안내자, 그게 바로 주인공 그냥 씨다. 흑곰 쿠마짱이 일터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북극곰 폴라스키가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괴로워하자 병원에 데려가 준다. 새끼를 낳으려는 새들에게는 인간으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 주고, 도시에 정착하려는 너구리 가족에게는 도시 생활의 이모저모를 안내해 준다.

이때 그냥 씨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복잡한 일이 생겨도 그냥 씨라면 문제없다. 앞발을 정성스레 핥으며 생각을 가다듬다 보면 번뜩이는 해결책이 나온다. 그렇게 쌓은 내공으로 도시 생활이라면 도가 텄지만 알아도 모른 척, 능청맞은 모습으로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자랑한다. 도도해 보이는 얼굴 뒤에는 반전 매력이 숨겨져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곳이 어디든 주저 없이 달려갈 뿐 아니라, 그들이 냉혹한 현실에 상처받지 않도록 특별히 마음 쓸 줄 아는 선함을 갖췄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가 마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모두가 기다려 온 새로운 동물 캐릭터인 그냥 씨의 활약이 시작된다.

 

 

“자기들이 먼저 선을 넘어온 건데?”

세상의 선을 넘으려는 동물들의 당찬 선언

 

겨울철 동물들이 민가로 내려와 피해를 준다는 기사가 빈번히 나오고, 환경부에서는 매년 약 700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 벽에 부딪혀 죽는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 현상은 동물들이 야생을 떠나 도시로 와야 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왜 도시일까? 도시 개발로 집을 잃은 비둘기와 황조롱이, 환경 파괴에 의한 생태 교란으로 굶주리는 너구리, 이상 기후로 겨울잠을 못 자는 흑곰과 녹아내린 빙하를 떠난 북극곰까지. 고향을 떠나온 이유는 충분했다.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 속 동물들의 사연은 이야기임을 넘어서 실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너구리 가족과 쿠마짱, 폴라스키가 여기 지구에 함께 살고 있다.

작품 곳곳에는 현 사회의 모습이 녹아 있다. 편히 휴식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 쿠마짱, 자신의 병과 근무 환경의 상관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폴라스키의 상황은 우리 사회 노동자의 권리에 질문을 남긴다. 특히 최저 시급보다 못한 급여를 받아도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며, 몸이 아파도 쉽게 병원에 방문하기 어려운 폴라스키의 모습은 이주 노동자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거처를 찾는 일도 동물들만의 일이 아니다. 도시에는 ‘즉시 입주 가능’하니 “신축 아파트의 행운을 누”려 보라는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광고 문구와 달리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폴라스키는 왜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했을까? 왜 비둘기는 소독약 틈에 알을 낳아야 했을까? 아기 너구리는 왜 엄마를 잃어야만 했을까?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짚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촘촘하게 연결된 사회 생태에 관해 다양한 질문과 토론거리가 생겨난다.

 

 

“너는 정말 나랑 꼭 닮은 아이구나.”

조용하지만 힘 있게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가족

 

녹록하지 않은 삶이지만 동물들은 굳세게 살아 낸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 생태의 면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뜻밖에도 새로운 생명 탄생의 가능성이다. 엄마 잃은 아기 너구리를 품에 안고 울먹이는 쿠마짱의 모습은 독자의 코끝까지 찡하게 만든다. 그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한데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알을 깨고 나와 서툰 날갯짓을 연습한다. 낯설기만 하던 도시에 적응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대견해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동물들이 앞으로 더 멋진 하루를 만날 수 있도록 우리의 응원이 필요하다. 사뭇 진지한 소재임에도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가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모든 삶 속에서 명랑함과 희망을 찾으려는 작가의 시선 덕이다. 굶주린 아기 너구리에게 하나뿐인 사과를 양보하고, 앞발에 남은 사과 향을 맡으며 행복해하는 쿠마짱의 모습은 짠 내 나지만 사랑스럽다. 독자들은 쿠마짱을 보며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떠올릴 수 있다.

‘동물들의 직업 찾기’라는 재미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해 인간 사회의 낡은 문제들을 다룬 안미란 작가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공존을 외친다. 그 장면을 하나하나 다채롭게 표현한 유시연 화가의 그림은 시시각각 변하는 등장인물들의 풍부한 표정과 심리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온 힘으로 세상의 선을 넘으려는 동물들이 이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현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무궁한 날들을 맞이하게 될 어린이 독자에게 닮고 싶은 삶의 태도로 각인되길 기대한다.

 

 

● 작품 줄거리

“직업을 소개해 드립니다! 당신은 무엇을 잘하시나요? 집을 구하고 싶다고요? 저를 따라오세요.”

도시 동물들 사이에서 ‘상담소’라며 입소문이 나 있는 그냥 씨는 도시 생활 베테랑이다.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없다. 그런데…… 그냥 씨에게도 도와주기 난감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흑곰에게 일자리를 구해다 주고, 아픈 북극곰을 치료해 줄 병원을 찾아 주고, 알 품을 새들에게는 집을 찾아 주고, 엄마 잃은 너구리도 보살핀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모든 일이 그냥 씨 뜻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걸핏하면 북극곰에게 김치찌개와 콜라를 먹이고, 새 둥지를 마음대로 부수는 사람들까지 여기저기 방해꾼투성이다. 하지만 먹고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세상에 그어 놓은 선을 뛰어넘기 위한 동물들의 생존기가 펼쳐진다.

목차

1. 이름은 그냥

2. 알이 때까지 버텨

3. 묻지도 따지지도

4. 우리가 남이야?

5. 나랑 닮은 아이

 

작가의 | 작가의 일기

저자의 말

안 작가의 일기

 

 

5월 2일 날씨 맑음, 나뭇잎이 새록새록 푸르러지는 그런 맑음임.

 

그냥 출연하겠다고 대답할 걸 그랬나 싶다.

오늘 낮에 핫도그한테서 연락이 왔다. 유명한 동물 티브이 유튜버 핫도그 말이다. 핫도그는 자기가 새로 찍을 영상에 나를 초대 손님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핫도그의 구독자 수는 엄청 많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어른들도 많이 본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내 동화책을 한 권씩만 사서 어린이 손에 안겨 준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해졌다.

핫도그한테 내 속마음을 들켰다.

“안 작가님, 내 덕분에 유명해지면 좋잖아요?”

핫도그의 말은 달콤했다. 그래서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제가 동물 티브이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지금은 대도시에 있는 아파트에 살아서요.”

“걱정 마세요. 멍청……, 앗 아니 엄청! 엄청난 인간 대표로 한 말씀 하면 됩니다.”

나는 그때 눈치챘다. 핫도그는 나를 앉혀 놓고 놀리거나 창피를 주려는 것이다. 그래야 구독자들이 깔깔대며 웃고 신나서 ‘좋아요’를 마구마구 눌러 줄 테니까.

핫도그가 저 혼자 떠들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안 작가님? 크크크, 작가가 아니라는군요.”

유치했다. 어린 시절에 장난기 많은 친구가 놀리던 거랑 똑같았다. 미란이가 선생님이 되면 ‘안 선생’, 박사가 되면 ‘안 박사’라고 하던 거 말이다.

“그 ‘안’은 ‘아니오’ 할 때 ‘안’이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고 연락을 끊었다. 잘했다.

핫도그는 바른 생각 같은 거에 관심이 없다. 남의 마음이 어떨지도 관심 없다. 그 관심이 진짜 사랑이 아니라, 알고 보면 욕하고 미워하는 거라도 상관 없다. 구독, 좋아요, 알림, 하트 표시만 많으면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니다. 운동 경기를 할 때가 아니라면 네 편, 내 편 괜히 가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들 이야기를 잘 들어 줄 것이다. 나랑 안 친해도, 나랑 달라도 그럴 거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차별하지 않고……. 적고 보니 어렵네.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 왜 이렇게 썼을까.

그렇지만 결심했다. 좀 괜찮은 생명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자고.

 

2023년 푸른 오월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 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