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동시집 67

날아라, 고등어!

임미성  동시집  ,  김규아  그림
출간일: 2023.05.19.
정가: 12,0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발랄한 말투와 산뜻한 상상력

어린이를 새롭게 발견하는 동시집

 

 

사물 뒤집어 보기와 생동감 넘치는 운율로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만들어 내는 임미성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날아라, 고등어!』가 출간되었다. 첫 번째 동시집 『달려라, 택배 트럭』(2018)에 이어 이번 동시집 역시 어린이와 가장 가까운 언어로 어린이의 생활 세계와 심리를 담아냈다. 유쾌한 반전을 담은 전개와 톡톡 튀는 상상력은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고, 자연을 그대로 옮긴 운율과 할머니의 손길처럼 다정한 관찰력은 가슴 깊숙이 숨겨 둔 속마음을 꺼내 놓게 한다. 더불어 코로나19와 기후 변화 등 우리 앞에 닥친 위기, 편견과 차별에 대한 오늘날 어린이의 감각과 사유도 녹아 있다. 경쾌하고 재치 넘치지만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 어린이의 고민을 듣고, 나누고, 해방시키는 이 동시집을 따라 읽다 보면 새로운 눈으로 어린이와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물을 뒤집어 보는 상상력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

 

임미성 시인은 아이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어린이와 가장 가까운 언어로 시를 쓴다. 초등학교에 몸담은 교육자이기도 한 시인은 매일 오후 1시, 교정에서 어린이들과 ‘맛있겠다’ 동시 모임을 진행하며 어린이의 생활 세계와 심리를 탐색한다.

 

아저씨 청바지 엉덩이에 꼈네/주름치마 아줌마 방귀도 뀌네/어떤 반바지는 허벅지에도 털이 숭숭/느릿느릿 가는 엉덩이/되똥되똥 빨리 걷는 엉덩이/손에 묻은 기름을 쓰윽 닦은 엉덩이//엄마 손 잡고 걸어갈 때/수많은 엉덩이가/내 눈을 본다 -「어린이가 되면」 전문

 

어린이는 어른과 다른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이때 포착된 새로운 ‘엉덩이’는 유쾌함 그 자체다. 청바지가 끼고, 방귀도 뀌고, 허벅지 털이 삐죽 나오기도 하는 엉덩이의 실재(實在)는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쉬이 발견하지 못하는 낯선 풍경이다. 해묵은 시선의 더께를 걷어 내고 어린이의 시선으로 읽어 낸 사물의 뒷모습은 일상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된다. 더불어 시소가 되지 못한 손톱깎이가 아이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들어 주고(「깍, 똑! 깍, 똑!」), 수학 시간의 점, 선, 면이 주근깨, 곱슬머리, 얼굴이 되어 아이의 외모 콤플렉스를 다독인다(「수학 시간에 거울 보는 이유」). 이처럼 익숙한 사물을 뒤집어 보는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은 말 못 한 속내를 넌지시 내비칠 수 있는 비밀 공간을 어린이 독자에게 만들어 준다. 경쾌하고 재치 넘치는 새로운 발견을 넘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섬세하게 건드리는 다정한 시선은 동시 읽기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한다.

 

 

다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

반짝이는 어린이의 건강한 마음

 

『날아라, 고등어!』는 코로나19, 물질만능주의, 기후 변화 등 우리 앞에 닥친 위기를 비롯해 소외된 이웃의 모습을 등장시켜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어린이가 어떻게 감각하고 사유하는지 보여 준다. 어린이는 마스크 목도리를 감은 지렁이의 쉰 목소리를 걱정하고(「숲속 발명 대회」), 도토리를 주워 가는 사람들에게 아기 다람쥐의 마지막 한 끼를 남겨 주길 부탁하고(「도토리 편지」), 원격 수업으로 만난 친구의 펭귄 인형을 연결고리 삼아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펭귄도 모르는 17번」). 이처럼 어린이는 멀어진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소소한 노력을 더하고 당장의 이익보다 다른 생명체의 삶까지 돌아보는 따뜻함을 지닌 존재다. 더불어 독특한 습관을 가진 발달 장애인 정찬이 삼촌(「정찬이 삼촌」), 한국어를 이제 막 배우는 다문화 가정의 친구(「바르게 말하기」), 성인 문해반 수업을 들으러 1학년 교실에 모인 할머니(「1학년 교실」)를 편견과 차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함께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낙담하지 않고 건강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관찰하는 어린이의 모습에는 어렵지만 함께 나누는 삶을 꿈꾸는, 반짝이는 진심이 깃들어 있다.

 

그 애는 나를 모른다//우리는 홀짝 번호를 나눠/학교에 간다//나는 10번/그 애는 17번//원격 수업 때 그 애 방에 보이는/작은 펭귄 인형 하나//우리 반 모두 학교 가는 날/그 펭귄이 그려진/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그 애는 나를 모른다 -「펭귄도 모르는 17번」 전문

 

저는 흔들 침대를 만들었습니다/다람쥐가 뽐내자//반으로 접으면 멋진 가방이 됩니다/너구리는 가방을 높이 들고//추울 때 입으면 따뜻해요/두더지가 하얀 조끼를 자랑하니//오백 년이 지나도 안 풀릴 거예요/끈 목도리를 돌돌 감은 지렁이는/쉰 목소리로 말해요//버려진 마스크로/발명 대회 하는 날/모두 할 말이 없었어요 -「숲속 발명 대회」 전문

 

 

소리 감별사가 길어 올린

자유롭고 활기찬 시어들

 

『날아라, 고등어!』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말맛이 살아나며 더 재미있게 읽힌다. 『달려라, 택배 트럭!』을 두고 유강희 시인이 임미성 시인을 ‘온몸이 듣는 존재인 소리 감별사’라 칭한 것처럼, 임미성 시인은 우리 주변의 소리를 글로 받아 적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전깃줄에 달그랑 매달린 달도(「초저녁」), 낮잠을 실컷 자고 느물텅느물텅 움직이는 뱀도(「수학 시간」), 아스팔트 위로 후두두둑 뛰어내리는 냉동실의 고등어도(「날아라, 고등어!」), 가을을 맞이한 나무의 나뭇잎 다이어트(「에어로빅 나무」)도 운율감 넘치는 시어를 통해 2차원의 지면을 뚫고 3차원의 감각으로 생생히 전해진다. 임미성 동시의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은 ‘눈’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듣고 기록한 그의 ‘소리’들이 말과 말을 잇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어 시를 더욱 풍성하고 생동감 넘치게 한다. 중국집 간판을 자신 있게 가로로 읽는 「우짜짬탕 깐팔유!」처럼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자유롭게 시를 낭송하는 어린이의 활기찬 목소리가 함께 들린다.

 

11월 되면 나무는/에어로빅 시작!/웅-딱, 웅-웅딱! 웅웅딱, 웅-웅딱!//바람 노랫소리 맞춰/나뭇잎/다/이/어/트//내년 봄엔 틀림없이/통통해질 거다/오동-통통 오동통!/가지마다 오동통!//새로 난 연두 잎엔/다시 햇살 붙겠지? -「에어로빅 나무」 전문

 

짜장면 먹으러 간다/맨날 남아서 글씨 공부하다가/내가 몇 줄 읽으니까/선생님이 나보다 더 신났다//메뉴판 한번 읽어 봐/저기 저 글자, 얼른 읽어 봐/-내가 못 읽을 줄 알고?//우짜짬탕 깐팔유!/…장…수 풍보산!/동면뽕육 기채슬!//빨간 글씨들도/찌글짜글 손뼉 친다//우짜짬탕 깐팔유! -「우짜짬탕 깐팔유!」 전문

 

시인은 새로운 눈으로 어린이와 세상을 발견함은 물론 뒤처지고 주저앉은 어린이가 다시 피어나고 떠오를 수 있도록 동시 한 편 한 편에 정성을 쏟는다.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사랑하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많은 어린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목차

제1부 널 위해 닳을 준비가 돼 있어

제2부 초록으로 웃는 눈사람

제3부 우짜짬탕 깐팔유!

제4부 보고 싶어 그 말 대신

 

해설|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보면_이안

시인의 말

임미성 동시는 가볍고 빠르고 산뜻하게 읽히면서도 깊은 차원의 감상이 가능하도록 열려 있다. 이번 동시집은 첫 동시집의 성과를 잇고 변주하면서 다채롭게 자기 세계를 확장해 가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어린이의 시간과 장소, 내면, 생활 세계에서 길어 올린 어린이의 발견이고 인식이어서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_이안(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백일홍이 수줍은 얼굴로 묻습니다. “어떻게 아셨지요? 제가 백 일 동안 구름 강물을 따라온 금붕어였다는 것을.” 의자와 손톱깎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예, 사실입니다. 혼자만 알고 있기 힘든 얘기들이 아주 많았어요.”
눈 내리는 밤의 가로등과 우산에 붙은 단추와 그림책 속의 거북이가 말합니다. “야, 이거 아주 위험한 시집이네. 우리들 정체를 다 파헤쳐 놓다니.” 냉장고 속의 고등어가 소리칩니다. “들켰다, 더 빨리 도망쳐야겠다!”
성은이 친구들이 다급하게 귓속말을 주고받습니다. “얘들아, 큰일 났다. 선생님께서 우리 비밀을 다 알고 계셔.” _윤제림(시인)

저자의 말

이 동시집에는 내가 꿈에서 되어 본 것들이 다 모여 있답니다. 읽는 사람도 하나씩 차례차례 만나다가 마침내 어린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_「시인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