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소설
출간일: 2023.03.30.
정가: 15,000원
분야: 문학, 소설
전자책: 있음

담대한 시선, 예측불허의 전개, 묵직한 여운!

전 연령대 독자를 사로잡은 백온유의 압도적 서사

공감이 필요한 세계에 당도한 대체할 수 없는 감동

 

창비청소년문학상, 오늘의작가상 수상 작가 백온유의 장편소설 『경우 없는 세계』가 출간되었다. 백온유는 전작 『유원』과 『페퍼민트』를 선보인 후 용서와 화해, 죽음과 돌봄의 문제 등 묵직한 주제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문장과 진정성 있는 성장서사로 “문학이 갖추어야 할 진실에 한발 다가선 작품” “담대한 소설적 기량” 등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청소년소설 분야에서 ‘믿고 읽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백온유는 이번 작품 『경우 없는 세계』에서 어두운 곳에 대한 관심과 연대라는, 지금 우리에게 긴요한 문학적 테마를 힘 있게 직시하는 기존의 작품세계를 견지하면서도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더욱 깊고 넓어진 시선으로 전 세대 독자들에게 가닿을 감동적인 이야기를 내보인다.

어른이 되어서도 10대 시절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주인공 ‘인수’는 우연히 만난 가출청소년을 돌보며 집을 나와 방황했던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인수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과거 ‘가출팸’ 시절의 경험과 그 기억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현재의 이야기는 정교한 내면 묘사와 생생한 에피소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다채롭고 흡인력 있게 펼쳐진다. 특히 거리의 아이들을 다루는 백온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밀도 있는 서술에서는 동세대 작가들에게서는 찾기 힘들 정도로 사려 깊은 존중과 공감의 자세가 돋보인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갈등과 방황의 궤적을 탐색하는 감식안 역시 탁월하다. 매끄러운 필력과 단단한 심력으로 자기혐오, 자기부정의 심리를 면밀히 추적하고 가슴을 울리는 성장의 서사를 심도 있게 풀어낸다. 이 애틋한 이야기는 책장을 넘기는 순간순간 과거의 못난 ‘나’와 지금도 모난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구원하게 만든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독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우리에게 바치는 편지

오늘도 옥탑방 곳곳에 그림자처럼 떠도는 귀신들이 보인다. 한여름임에도 살갗을 에는 듯한 추위가 엄습한다. 인수는 12년 전 감행한 가출과 그때 만난 가출팸,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다 벌어진 사건 때문에 지금도 환각과 환촉으로 고통받고 있다. 어느 날 인수는 지나가는 차에 몸을 던지고 사고를 가장해 운전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소년 이호를 만난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한 채 위험천만한 자해공갈을 반복하는 이호를 보며 인수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자수성가했지만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다정한 듯 보이면서도 결국 늘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인수는 존재감 없고 특출난 것도 없고 언제나 주눅 들어 있는 소년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에 지쳐 충동적으로 집을 뛰쳐나온 인수는 PC방에서 동갑내기 가출청소년 ‘성연’과 얽힌다. 첫 만남 때부터 남의 지갑을 훔치던 성연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행동력으로 인수를 챙겨주며 둘은 함께 가출생활을 이어간다. 생필품을 훔치고 화장실에서 자다가 쫓겨나는 고달픈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 보육원에서 도망쳐 나온 ‘경우’가 합류하고, 인수와 성연, 경우는 집 나온 아이들이 드나드는 반지하방 ‘우리집’에 정착한다.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가 시련이고, 달콤한 호의에 속아 뼈 빠지게 일해도 돌아오는 것은 교묘한 노동착취와 물건을 훔친다는 의심, “너희 같은 새끼들”(130면)이라는 멸시와 손가락질이다.

소설은 이른바 가출청소년, 비행청소년으로 불리는 아이들이 미성년자라는 신분으로 겪는 처절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저기 이용당하며 위험한 일에 거리낌 없이 가담하는 노동현실부터 화장실과 폐건물을 전전하던 아이들이 모여드는 반지하방의 열악한 주거현실까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처절한 생존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한다. 세계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아이들의 일상도 점점 지독해져간다. 소매치기와 절도, 조건만남, 자해공갈…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라앉는 아이들의 아슬아슬한 질주는 위험한 수위로 치닫는다. 이는 실제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한바, 그래서 백온유의 문장은 문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이 실감나는 핍진함은 또한 독자들이 『경우 없는 세계』에 빠져드는 이유이다.

 

흔들리고 위태로웠던 지난날

비로소 ‘나’를 만들어준 우리 모두의 ‘경우’에게

경우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딜 가도 “구김살 없”(95면)이 구는 선하고 착실한 소년이다. 인수는 마치 “사랑받아본 아이처럼”(256면) 보이는 경우에게 점점 의존하게 된다. 동시에 경우의 존재는 끊임없이 인수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경우는 도무지 ‘우리집’의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엉망진창 ‘우리집’을 청소하고 공과금을 납부하는 경우. 어리고 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경우. 허드렛일을 할지언정 남의 돈에 손대지 않는 경우.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고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함께 살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경우. PC방에 갈 돈은 천원도 빌려주지 않으면서 인수를 치과에 데려가 진료비를 내주는 경우. 선량하고 반듯한 경우의 존재는 한없이 이질적이고 어딘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소설은 경우를 무한히 신뢰하고 경우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과 그런 경우의 올곧음을 깎아내리고 밀어내고 싶은 인수의 이중적인 마음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소설 속 경우라는 인물은 우리가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언제고 한번쯤 있었거나 있었으면 좋았을 존재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그 속마음은 간단하지가 않다. 그의 행동을 따라해서라도 닮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잊고 싶은 과거를 대번에 상기시키는 불편한 인물이기도 하다. 백온유는 이처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소설을 읽는 누구나 떠올릴 법한 자신만의 ‘경우’를 소환한다. 가장 초라했던 시절 내 곁을 지켜줬던 각자의 ‘경우’를 상상하며 읽어나가는 재미 또한 이번 소설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압도적인 이야기로 마주하는 지난날의 너와 지금의 나

백온유가 어루만지는 우리 마음속의 그림자와 빛

인수와 경우,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모여 나름의 질서로 공동생활을 하는 ‘우리집’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어느 한겨울 밤 자해공갈을 시도하다가 뺑소니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가출청소년 A가 ‘우리집’의 문을 두들긴다. 이윽고 지금까지 아이들이 겪었던 무질서나 비행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아이들의 연대도 단숨에 산산조각난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모두가 패닉에 빠졌을 때,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지를 주장하는 경우의 의견은 겁에 질린 다수의 아이들에 의해 묵살당한다. 짓밟히는 경우를 외면하고 “세간의 평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상식적이지 않은”(190면) 선택을 해버린 인수와 아이들. 인수의 몸과 마음은 죄책감과 후회로 망가져간다. 벌레가 피부를 기어다니는 듯한 끔찍한 환촉, 망령들이 주변을 떠도는 환상, 뼛속까지 파고드는 정체불명의 한기로 벼랑 끝에 내몰린다. 결국 나약하고 의존적인 마음으로 붙잡은 것은 경우의 손이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인수는 부모도, ‘우리집’의 아이들도 철저히 외면한 채 도망친다. 경우와의 만남마저 회피하고 우연히라도 자신의 과거의 흔적을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고독한 새 출발을 결심한다. 하지만 한번 망가진 마음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고 여전한 환각과 한기가 십수년째 인수를 괴롭히고 있다. 이호는 그런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인수에게 찾아온 실낱같은 희망이다. 자신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온 인수는 이호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까 염려하며 보살피고, 그 과정에서 애써 잊어온 과거와 대면하며 속죄와 희망의 길을 발견한다. 저 멀리 밀어뒀던 경우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간다. 죄책감과 수치심, 혐오와 불안이 씻겨 내려가기 시작한다.

 

“갈등의 서투른 봉합이나 안이한 도식의 결말을 경계하는 백온유 소설”(해설, 백지연) 속에서 인물들의 고통은 섣불리 미화되거나 가벼운 성장통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고통은 여전히 아프고 상처는 흉터로 남지만 그 아픔을 직시하는 묵묵한 결말 속에서 오래도록 잊지 못할 여운이 퍼진다. 『경우 없는 세계』는 또한 개인의 성장담에서 한걸음 나아가 내 곁의 타인을 돌보고 우리 사회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사회적 사건 이후의 “깊은 파장의 시간” 속에서 고뇌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녀야 할 심성의 세계에 대해 예리한 질문의 추를 드리”(해설)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열려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와의 불편하지만 진솔한 대면,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는 더딘 발걸음,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배려와 희생 끝에 반드시 감동적인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묻는다. 이제 막 과거를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기 시작한 인수에게, 또 현실의 무게를 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경우’가 될 수 있을까.

지금 방황하고 있거나 그 언제고 방황했을 모두에게 『경우 없는 세계』는 오로지 백온유만이 전할 수 있는 속 깊은 위로로 읽힐 것이다. 잊고 싶은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얻고, 막막한 삶일지라도 끝끝내 살아낼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마침내 “한권의 소설이 이 비정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책을 덮고 조금 성장”했다며 “기꺼이 고개를 끄덕”(추천사, 정용준)일 것이다.

목차

경우 없는 세계

 

해설

작가의 말

성장한 자는 잊었다. 자신이 어떤 시간과 사건을 뚫고 여기에 이르렀는지. 찢겼다 회복된 살. 부러졌지만 다시 붙어 크고 단단해진 뼈. 자기 자신을 성장시킨 어른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지만 남을 성장시키기로 결심한 이야기는 소중하다. 해피엔드의 주인공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이의 슬픈 하루를 기쁨의 내일로 바꾸려 애쓰는 각오가 좋다. 나의 성공으로 남의 절망을 함부로 대체하지 않는 마음이 좋다. 한권의 소설이 이 비정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책을 덮고 조금 성장한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용준 소설가

저자의 말

내가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쓸수록 미숙함은 쉽게 들통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가만히 멈춰서 살필 수 있는 시선을 주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 예전에는 그런 말들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양육자의 사랑과 신뢰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은 칭찬으로 다가올까, 상처로 남을까. 스스로 던진 이 질문의 답을 오래도록 고민했다.

배려를 받지 못한 아이, 좋은 어른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소년이 커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청소년기에 가출한 경험이 있거나 소년원에 가본 경험이 있는 인터뷰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편견에 가득 찬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질문이 무례한 건 아닐까,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그들이 내게 반감을 가져서 솔직한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인터뷰 요청을 받고 나온 그들은 미리 준비해 간 내 질문에 성의껏 대답했다. 그러다가도 아, 이런 말 불편하시죠, 작가님은 좀 이해 안 되시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변명이라는 것 저도 아는데요, 하고 어린 날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며 난감해했다. 나는 아니요, 충분히 이해돼요,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솔직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하고 그들을 독려하며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이해했는지, 이해를 하면 얼마나 했는지,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지는 않았는지…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마음은 후련하기는커녕 매번 답답했고 그래서 자책하게 되었다.

소설을 다 쓴 지금, 내가 또 잘못 짚은 것이 없는지, 안일하게 처리한 부분이 없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지만 지금 당장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후회하며 깨닫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