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해로운 농담은 끝내야 한다"
전세계를 뒤흔든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신랄한 농담
에미상과 피바디상 수상에 빛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세계적 스타인 해나 개즈비의 에세이 『차이에서 배워라』가 출간되었다. 순회공연마다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스페셜로도 방영된 코미디 쇼 「나네트」(원제 “Nanette”, 한국어 제목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로 스탠드업 코미디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는 해나 개즈비는 이 책에서 다양성을 억압하는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신랄한 코미디를 선보이게 된 과정을 회고한다. 전세계를 뒤흔든 해나 개즈비라는 코미디언이 어떻게 자신의 소수자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포용하며 새로운 웃음을 발명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개즈비는 자폐, ADHD 진단을 받은 신경다양인이자 젠더퀴어로서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와 수치심을 강렬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이를 농담으로 전환해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분노와 웃음을 이끌어내는 솜씨 또한 유감없이 발휘한다. 젠더 정치, 대중문화, 서양미술사 등 다양한 주제를 가로지르며 웃음의 정치성과 분노의 용법에 대한 치열한 성찰도 담았다. 웃음의 힘을 믿으며 다양성의 가치와 다름을 존중받을 권리에 대해 외치는 이 책은 폭력적인 세상에서 상처 입은 이들이 조각난 삶을 재건하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줄 것이다.
“그런 코미디는 이제 안 하겠습니다”
해나 개즈비, 자신만의 웃음을 발명하다
10년 넘게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 코미디 페스티벌의 대세로 활약하며 배우, 시나리오 작가, 방송인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있던 개즈비는 어느날 갑자기 무대에 올라 더이상 사람들을 웃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희생양 삼아 대중을 웃기는 기존의 코미디 문법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일대 선언이었다. 개즈비가 장르를 거스르는 ‘코미디 같지 않은 코미디’ 「나네트」를 세상에 내놓자 코미디의 새로운 고전이자 신기원을 보여주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과연 무엇이 개즈비의 코미디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해나 개즈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변방이자 보수적인 지역으로 이름난 태즈메이니아에서 태어났다. 1997년까지 동성애가 범죄였던 이곳에서 퀴어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살아가야 했던 그는 유년시절부터 자기혐오를 내면화하며 자랐다. 외면도 내면도 젠더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았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몸이 수치스러웠다.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말과 시선을 여과 없이 견뎌야 했으며 때때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자기혐오에 익숙해진 개즈비는 너무나 쉽게 그루밍 성폭행을 당하고 젠더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술을 퍼마시고 마약에 빠진 탓에 학교생활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안정을 잃어버린 채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나 개즈비의 내면에는 작은 불꽃이 있었다. 삶을 장악해버린 지독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희망이었다. 그는 이 불꽃을 조금씩 키워나간다. 어쩌다보니 젠더퀴어이자 신경다양인으로 태어나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회 속에 내던져졌지만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병리학적으로 주의력 과다를 일으키고 무질서한 정보 처리를 수행하는 ‘비전형적(atypical) 두뇌’를 가진 그의 사고방식은 어떻게든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하려는 개즈비 자신의 노력을 번번이 무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확실히 자폐와 ADHD라고 진단받고 이를 인정하자 신경다양인으로서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 수 있겠다는 돌파구를 발견한다. 이때 미술사는 개즈비의 인생에 한 줄기 빛이었다. 그는 온갖 미술사 책을 섭렵하며 남성 중심적 시선을 극복하고 트라우마를 엮어내 자기 인생을 재구성할 실마리를 얻는다.
“비주류인 사람에게 자기비하란 겸손이 아니라 수치다”
쉬운 농담 뒤에 존재하는 진실을 표현하다
퀴어라는 정체성 역시 문제적이었다. “태즈메이니아 출신의 뚱뚱하고 뭘 해도 어색한 레즈비언”으로서 그는 이른바 ‘자기비하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언이었다. 위악적으로 자신의 소수자성을 농담거리로 삼으며 경력을 쌓던 그는, 이런 코미디가 결국 자기 존재를 해치고 있음을 인정하며 손쉬운 농담으로는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 웃음 너머에 숨겨둔 상처와 수치심을 진정성 있게 털어놓는 새로운 코미디를 시도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코미디 쇼 「나네트」다.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 끝에 개즈비는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몸이 떨리는 충격을 안기는 선언으로 끝나는 독창적인 코미디를 완성한다.
개즈비의 광팬임을 자처한 배우 에마 톰슨의 말처럼 이 책은 “개즈비를 불타오르게 한 모든 것을 말한다”. 「나네트」를 완성하기 위해 작성한 대본 메모들과 준비과정을 남김없이 털어놓은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떤 존재도 소외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년간 가장 많이 회자되고, 언급되고, 공유된 코미디”(뉴욕타임즈)를 창조한 그만의 비법을 알게 된다. 사회적 약자들을 서슴없이 웃음거리로 삼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부서진 자신을 재건한 여성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건네는
해나 개즈비의 말들
― 해나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크게 울려퍼지는 자폐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소망하던 일이었다. 아마존 독자 리뷰
― 해나 개즈비,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 고맙다. TED Talk 리뷰
해나 개즈비의 책과 무대 영상에 대한 리뷰 중에는 유독 개즈비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라는 공감을 표현하는 댓글이 많다. 유명인으로서 특별한 삶을 살아온 듯한 그의 이야기가 마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처럼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개즈비는 복잡한 모녀관계, 성소수자로서 겪은 소외와 차별, 트라우마, 우울증, 성인 ADHD와 자폐 진단의 과정, 코미디 쇼 창작 과정 등 자신의 경험을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풀어놓았다. 그는 노련한 스탠드업 코미디언답게 과거의 상처마저도 반전과 펀치라인을 이용해 잘 짜인 내러티브로 구성해놓았다. 웃음을 활용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개즈비의 믿음이자 그가 구사하는 코미디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예리한 관찰력과 진실함, 솔직함을 갖춘 이야기의 힘 덕분에, 개즈비와 비슷한 신경다양인, 성소수자, 창작자는 물론 인생에서 실패를 겪어본 사람, 세상과의 불화로 자기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한쪽 모서리를 접어두고 싶은 페이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 해나 개즈비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인 이유
해나 개즈비에게 쏟아진 찬사
들어가며
1장 에필로그_나의 쇼, 「나네트」
2장 탄생신화_개가 되고 싶은 아이
3장 성장기_벽장에 갇힌 시골 레즈비언
4장 방랑의 세월_코미디를 시작하다
5장 롤러코스터를 타다_자기비하의 늪
6장 처음 만나는 자유_진단 이후
7장 수프를 끓이며 떠오른 생각들_수치심을 휘저으며
8장 가닥 모으기_새로운 농담을 발명해야 할 때
9장 여자의 일_젠더퀴어 자폐인의 코미디
10장 나의 이야기_「나네트」의 탄생
프롤로그 | 드레스가 불편했던 시핀은……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