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비행

박현민  지음
출간일: 2023.03.13.
정가: 21,000원
분야: 그림책, 창작

그림책 속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작가 박현민의 신작 『도시 비행』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엄청난 눈』 『얘들아 놀자!』 『빛을 찾아서』 등을 펴내며 그림책으로 펼치는 상상의 스케일을 확장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역동적인 전개와 깊어진 세계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의 눈으로 도시 풍경을 묘사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쉽게 소외되는 존재의 삶을 조명하고, 양극화된 세상의 경계를 솜씨 좋게 허문다. 박현민 작가는 2021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2022년 『도시 비행』으로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며 또 한 번 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다.

 

올려다보는 세상과 내려다보는 세상,

양극화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

 

『도시 비행』의 화자는 높은 빌딩 숲 한가운데에서 핀 민들레다. 민들레는 보도블록 틈새를 터전 삼아 살아가면서 도시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구두를 신고, 각자의 중요한 목적지로 바삐 향한다. 민들레의 도시 생활은 대개 외롭고 위태롭지만 민들레는 틈틈이 오는 기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자란다.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고, 다시 새순이 돋기까지의 긴 시간을 보낸 뒤 민들레를 발견한 어린이가 다가온다. 어린이는 올려다보아야만 했던 한쪽 세상 속에 살아 온 민들레가 더욱 넓은 세상을 경험하도록, 민들레가 꿈꾸어 온 ‘도시 비행’을 실현하도록 돕는다.

『도시 비행』은 박현민 작가가 도시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생하는 민들레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속 어린이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시작된 작품이다. 작은 민들레의 눈에 비친 도시 풍경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앵글로 그려져 독자가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경험하도록 한다. 독자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 주변을 다시 바라봄으로써 어린이와 어른, 자연과 인간, ‘너’와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2022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작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이미지

 

박현민 작가는 『엄청난 눈』(달그림, 2020년 출간)으로 2021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다. 흰 여백을 그림 요소로 활용하는 시도로 인상적인 데뷔작을 선보인 이래, 작가는 『얘들아 놀자!』 『빛을 찾아서』 등 독창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그의 신작 『도시 비행』은 더욱 역동적인 전개와 박력 있는 화면으로 독자가 그림책 속 공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도록 한다. 민들레의 시선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을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앵글로 그리면서 화면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이 단연 돋보인다. 작가는 사진 및 인쇄의 색 재현에 사용되는 네 가지 기본 색 모형인 청록색(Cyan), 자홍색(Magenta), 노란색(Yellow), 검정색(Black)만을 활용하여 그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디지털 작업에 전통 판화 기법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다. 색상별로 분리된 네 층의 레이어를 합해 그림 틀을 갖추고 본래 그림 일부를 지우는 방식으로 주인공인 민들레를 그렸다. 이때 작가가 민들레를 그리는 방식은 마치 조각도로 판에 그림을 새기는 방식과 유사하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조명하고자 한 작품의 의도와 작업 방식을 연결한 작가의 시도가 울림을 준다. 박현민 작가는 『도시 비행』을 통해 2022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또 한 번 주목받으며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

 

보도블록 틈새에서 화사하게 핀 꽃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를 비추는 연대의 힘

 

‘보도블록 틈새’라는 주소에서 민들레는 불안정하고 취약한 삶을 살아간다. 부주의한 구둣발도,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 햇볕도 피할 길이 없다. 그런 민들레의 존재를 모처럼 발견하고 들여다보는 것도 강아지와 애벌레처럼 작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린 민들레에게는 위협이 되고 만다. 민들레는 자신이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섣불리 포기하기보다 기다리기를 선택하고 ”내게 오는 모든 일을” “겁내지 않고 똑바로” 보겠노라고 선언한다. 민들레의 치열한 기다림은 한 어린이가 민들레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도시 비행’으로 이어진다. 『도시 비행』은 매일의 역경을 살아 내는 민들레의 삶에 경의를 전하는 한편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약자의 삶을 은유하며 연대와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간구한다. 작가는 민들레의 삶을 통해 이제 우리가 그 치열한 기다림에 응답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그림책은 영리한 실험이되 따뜻한 시도이다. 박현민 작가는 편견 없는 눈을 가진 어린이처럼 보는 방법을 새롭게 제시하고, 익히 알고 있는 세상 너머로 독자를 종횡무진 데리고 간다. 보도블록 같은 네모 책 속 여린 존재의 씩씩한 모험 덕분에 우리는 어지러운 도시의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한다.” 이수지(그림책작가)

저자의 말

누군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시 비행』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완성하면서 세상의 따스함을 발견하는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박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