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동시집 66

코뿔소 모자 씌우기

임수현  동시집  ,  오윤화  그림
출간일: 2023.03.17.
정가: 12,0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외로움을 넘어 자유롭게 뛰노는

눈 밝은 아이들의 뒤죽박죽 상상 나라

★제2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시 부문 수상작★

 

『괭이부리말 아이들』 『기호 3번 안석뽕』 『고양이 해결사 깜냥』 등 숱한 화제작을 발굴해 온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제27회 동시 부문 수상작 『코뿔소 모자 씌우기』가 출간되었다. 임수현 시인은 섬세한 시선으로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그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상상의 나라를 선물한다. 어린이들은 상상의 놀이터에서 낯선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연결점을 찾아낸다. 이는 타인의 세계를 직접 마주하고, 잊었던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외톨이로 지내던 어린이가 움츠러든 마음을 한껏 펼치며 재미있는 ‘놀이’를 상상하게 하는 동시들이 내면의 힘을 기르는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상상의 나라

 

2016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수현 시인은 제7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에 이어 제2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시 부문까지 수상하며 동시 문학계의 튼튼한 기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은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살피는 섬세한 시선과 현실을 바탕으로 한 환상성으로 빚어낸 독특한 상상의 나라로 평단은 물론 독자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림자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어 / 거긴 개도 사람도 정어리 그림자도 / 다 같은 말을 쓰는 나라야 // 물고기는 날아다니고 / 새들은 물속을 헤엄쳐 / 사람들은 새처럼 날고 / 새들은 사람처럼 웃는 곳이야 / 모두가 엄마고 아빠야 / 누구나 친구가 되는 곳이야 // 가시로 뒤덮인 크고 작은 나무들과 / 풀들이 성처럼 우거져 / 눈 밝은 아이들만 발견할 수 있는 곳이야 // 자! 이제 눈을 감아 / 어둑어둑 밤이 다가오고 있어. ―「어둑어둑 그림자 나라」

 

『코뿔소 모자 씌우기』는 개도 사람도 정어리도 같은 말을 쓰는 자유롭고 평등한 「어둑어둑 그림자 나라」의 초대로 시작된다. 그곳은 햇볕 아래 누워 학교 가기 싫다고 외치는 고양이도(「고양이 학생 구함」), 하나도 안 심심한 척하지만 실은 무척 심심한 토끼도(「하나도 안 심심한 토끼」), 높이 집을 짓는 달팽이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나’도(「달팽이 집 짓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공간이다. 정해진 규칙과 어려운 질문이 가득한 어른의 세계에서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어린이는 외롭기 일쑤다. 시인은 동시를 통해 그동안 쌓아 온 외로움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털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바탕으로 외로울 때마다 들를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응원한다. 더불어 우리의 모습이 담긴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엉뚱한 질문도 소리 내어 말하는 일이 ‘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 큰 발판이 된다는 걸 깨닫게 한다.

 

타인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

함께 ‘놀기’로 성장하는 어린이

 

개인의 내면에 집중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코뿔소 모자 씌우기』에서는 타인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이 도드라진다. 낯선 바다에 해먹과 강아지를 그리며 홀로 외로움을 극복했던 어린이는 쨍쨍한 햇빛 때문에 힘들어하는 코뿔소에게 모자를 씌워 줄 계획을 세운다. 사다리에 함께 올라갈 친구, 장대높이뛰기를 도와줄 장화 신은 고양이를 초대해 함께 놀기를 제안한다. 산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새끼 뱀이 생크림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깜짝 놀랐던 자신의 마음도, 자기 때문에 깜짝 놀랐을 새끼 뱀의 마음도 어루만진다. 자신의 외로움을 깊이 들여다보던 어린이는 자신보다 배로 덩치가 큰 코뿔소의 외로움도, 자신보다 작은 새끼 뱀의 두려움도 알아챈다. 그러고는 흩어진 친구들을 한자리로 모아 신나게 놀며 서로의 외로움을 잊고, 달콤한 케이크로 두렵고 미안했던 마음을 함께 씻어 버린다. 자신의 슬픔 너머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새로운 ‘놀이’를 상상하는 일은 수많은 고민과 함께 걸어 나갈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햇빛은 쨍쨍하고 / 모래알은 반짝이니 / 코뿔소에 모자를 씌워 주자 / 밀짚모자가 어울릴 거야 / 야구 모자도 괜찮을 거야 / 그런데 누가 모자를 씌우지? /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자 / 누가 올라가지? / 새총을 만들어 씌우자 / 누가 새총을 만들지? / 장대높이뛰기를 해서 씌우자 / 누가 장대를 만들어 오지? / 장화 신은 고양이한테 부탁해 보자 / 어디 가서 고양이를 찾지? / 코뿔소에게 잠시 앉아 보라고 하자 / 누가 코뿔소 귀에 대고 말하지? / 햇볕은 쨍쨍하고 / 땀은 삐질삐질 / 가만 듣고 있던 코뿔소 / 물속으로 풍덩! ⎯「코뿔소 모자 씌우기」

 

엄마와 산책하다 / 새끼 뱀을 봤다 // 으악! 뱀이다 / 엄마 치마를 잡아당겼다 // 새끼 뱀도 헉헉거리며 / 엄마 뒤에 숨어 / 침을 꼴깍 삼킬까? // 다음 날부터 풀숲을 지날 때면 // 엄마 뱀 아빠 뱀 새끼 뱀 / 찔레꽃 아래 모여 // 둥글납작 돌멩이 식탁에 / 뱀딸기생크림케이크를 / 입술 가득 묻혀 가며 / 먹을 것 같았다. ⎯「찔레꽃 아래」

 

따뜻한 이야기로 실타래를 잇는 임수현 시인은 어린이가 한나절 신나게 놀다 갈 자유로운 상상의 나라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부지런히 골목길을 돌며 길 잃은 고양이의 어미를 찾아 주고, 무거운 가방을 멘 아이의 등을 몰래 밀어 주는, 작지만 지혜로운 그의 시어들이 많은 어린이 독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데 큰 용기가 되어 줄 것이다.

목차

시인의

 

1 밝은 아이들만 발견할 있는

2 공룡알 하나쯤 있다면

3 나는 하나도 심심한 토끼

4 모닥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해설|꿈과 밖을 오가는 에취 할머니_김제곤

외로운 아이가 갖는 정서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시인의 솜씨에 신뢰가 간다.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인간 사회의 은유로 세계를 확장해 보여 주는 작품들에서는 독특한 재미가 느껴진다. 진지하고 조금은 어두운 색채를 지닌 작품도 있지만 한편으로 어린이 특유의 발랄함도 잘 그려 냈다. 전반적으로 세심한 관찰력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_심사평(김제곤 원종찬 배유안 이반디)
우리는 이 시집에서 공상에 빠져 외톨이로 지내는 어떤 특별한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어쩌면 그것은 잠시 잊고 있던 나의 외로웠던 모습일지도 몰라요.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만은 아닐 겁니다. 내가 잊고 있었을지도 모를 ‘내 안의 나’에게 가만히 손을 내미는 일이기도 하지요. _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

저자의 말

사실 우린 가끔 쓸쓸하거나 외로울 때가 있잖아요. 내가 만든 세상에서 한나절 잘 놀다 오면 부쩍 자란 마음이 만져질지 몰라요. 자! 이제 눈을 감아요. 손을 뻗어 문을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면 돼요. 하나도 안 심심한 토끼를 따라오세요. 뒤죽박죽 그림자 나라에 온 걸 환영해요.

_「시인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