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Q

두고 온 여름

성해나  소설
출간일: 2023.03.17.
정가: 14,000원
분야: 문학, 소설

독자와 평단이 주목하는 신예 성해나의 첫 장편소설

우리가 두고 온 모든 인연과 마음을 위하여

한 시절의 여운 속에서 전하는 애틋한 안부 인사

 

첫번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문학동네 2022)에서 나와 타인을 가르는 여러 층위의 경계와 그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진중하고 미더운 시선으로 탐사했던 작가 성해나가 신작 소설 『두고 온 여름』을 펴냈다. 젊은 감각으로 사랑받는 창비의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여섯번째 작품이다. 왜 타인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낯설고 어렵기만 한지,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인연과 슬픔도 후회도 없이 작별할 수 있는지, 실패한 이해와 닿지 못한 진심은 어떻게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빛나는 기억으로 남게 되는지 한층 깊어진 응시와 서정으로 풀어냈다.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로 지냈지만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영영 남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 두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 소설은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와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마음을 경험한 모두에게 따스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로 다가선다. 아울러 “정확하면서 예민하고, 명확하면서 깊고, 단정하면서 힘이 센”(윤성희, 추천사) 성해나의 문장은 한국문학 독자라면 누구나 기꺼이 반길 만하다.

 

“그게 불편해요. 가족도 아닌데 가족인 척하며 사는 게.”

오해와 결별로 얼룩진 관계를 다독이는

지금 여기, 가장 특별한 가족 드라마

 

소설은 기하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사진사였던 기하의 아버지는 매년 여름 기하의 사진을 찍어 사진관 쇼윈도에 걸어두었다. 하지만 기하가 열아홉살이었던 그해 여름, 기하는 처음으로 독사진이 아니라 ‘가족사진’을 찍는다. 재하 모자(母字)와 함께. 아주 어릴 때 친모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기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갑작스레 생긴 새로운 가족과의 생활에 쉬이 적응하지 못한다. 재하 어머니는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젠가는 떠날” “객(客)”처럼 느껴지고, 여덟살이나 어린 재하의 “지나친 밝음”은 부담스럽기만 하다(12~14면). 기하의 마음을 유난히 뾰족하게 만드는 것은 아버지의 달라진 모습. 어떤 일이든 재하와 함께하고 재하의 의중부터 살피게 된 아버지를 보며 마음속엔 실망과 원망이 켜켜이 쌓여가고, 그런 치우침을 만회하려는 듯 재하 어머니가 건네는 서툰 애정은 성가실 뿐이다. 새로이 이룬 가족을 잘 가꿔보려는 그들 나름의 노력임을 알면서도 기하는 왜 “울퉁불퉁한 감정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69면) “가족도 아닌데 가족인 척하며”(73면) 살아야 하는지, 자꾸만 불만을 품게 된다. 이런 “날선 감정”과 “모난 마음”(20면)은 어린 재하와의 관계도 서먹하게 만들고, 기하는 “지긋지긋한 가족 노릇에서 멀어지고 싶어”(39~40면) 스무살이 되자마자 서둘러 집을 떠난다.

한편 재하의 기억은 어떨까. 기하가 집을 떠나고, 재하의 친부가 벌인 크고 작은 사건으로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사년 만에 갈라선 뒤에도 재하는 짧게나마 모두가 함께였던 그 시절을 가끔씩 돌이킨다. 폭력적이었던 친부와 달리 세심하고 자상했던 새아버지, 곁을 내주지 않는 기하 형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이해할 수 있다고”(60면) 말하던 어머니, “다정을 체화하지도, 자상하려 애쓰지도”(59면) 않던 기하 형. 재하는 “세 사람의 미묘한 표정”과 “공회전하는 대화”(71면) 속에서 누구에게도 온전히 기대지 못하고 외로이 지나온 시간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74면) 과거를 짚어나가는 재하의 목소리는 읽는 이의 마음을 애틋함으로 가득 채운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에서 성해나가 밝히듯, 재하는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비탄에 잠기기보다”(166면) 따스했던 순간 또한 곱씹는다. 아토피가 극심했던 자신과 병원에 동행해주었던 기하 형, 치료가 끝난 뒤 함께 먹던 중국 냉면, 면 위에 엉긴 땅콩 소스를 젓가락으로 살살 풀어주며 형이 살며시 지었던 미소 같은 것을.

 

우리가 친형제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둘만 아는 유머를 주고받으며 낄낄대었겠지요. 치고받으며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화해했을 겁니다. 용기나 궁리 없이도 대수롭지 않게 연약한 마음을 내비쳤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과거가 있다면. 그런 미래가 있다면.(61면)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관계와 감정은 두 사람에게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38면)은 기분을 남기고, 그 기분으로 인해 두 사람은 문득 뒤를 돌아본다. 기하의 기억 위에 재하의 기억이 포개어지는 순간, 서로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면면이 퍼즐처럼 맞추어지며 털어놓지 못한 진심이 기억의 낙차를 거슬러 선명하게 드러난다. 상대에게 다정하려는 노력과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애씀조차 때로는 서로를 더 멀어지게만 하는, 그 이상하고 슬픈 마음의 일이 더욱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더 다가갔다면’ ‘더 용기 냈다면’과 같은 후회를 거듭하는 대신 어떤 이해는 불가하고 어떤 오해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회한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수없이 어긋나고 멀어졌던 우리의 인연들을 가만히 다독여준다.

 

“그때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다시 만난다면 우리,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게 부모의 이혼 이후 남남으로 살아가던 기하와 재하는 십오년 뒤에 다시 만난다. ‘스트리트 뷰’에서 우연히 재하 모자를 발견한 기하가 재하 모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식당에 찾아간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고 이제 “묵은 감정들이 사라진 자리에 희미한 부채감”(97면)만 남아, 오히려 반갑고 은근히 그리운 마음이 들어 찾아간 그곳에서 기하는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라진 재하의 모습, 더이상 세상에 없는 이의 소식,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혼란스러우면서도 씁쓸한 재회 속에서 기하와 재하는 한때 기하 아버지가 즐겨 찾던 출사지이자 그들 가족의 나들이 장소였던 인릉을 산책하며 그간의 사연을 더듬더듬 나눈다.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채로 머뭇거리며 긴긴 산책을 한 끝에, 과연 그들은 과거와는 다른 현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서로에게 완전한 과거로 남게 될까.

소설가 윤성희가 “성해나는 제대로 뒤돌아볼 줄 아는 작가”(추천사)라고 말한바, 『두고 온 여름』은 아쉽게 놓쳐버린 한 순간을 섣부른 비관이나 막연한 긍정 없이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돌아봄으로써 건져 올린 눈부신 결과물이다. 소설 속에서 기하와 재하는 기하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가족’이었던 한때를 떠올린다. 곱씹으려고 마음먹자 기억은 무수한 결을 보여주며 자세해지고, 사진에는 박제되지 않은 감정과 표정이 세밀하게 되살아난다. 멈칫거리던 손, 울음으로 흔들리던 어깨, 실망을 감추던 얼굴. 상처 주고 상처받은 과거를 한 장면 한 장면 곰곰이 되짚는 동안 자책과 후회, 미련과 원망이 가슴을 깊숙이 찌르고 들어오지만, 그럼으로써 이루어지는 살핌과 헤아림은 실패한 관계를 뒤늦게나마 따듯이 감싸 안는다. 설령 관계가 재건되거나 감정이 복원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 삶에 다음 장면을 열어준다. 소설의 말미에서 이때껏 과거의 상처에 매여 있던 재하가 비로소 천천히 새 삶을 향해 가는 장면을 확인해보자. 그 찬란한 전진은 우리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두고 온 한 시절을 너른 품으로 껴안도록 격려해줄 것이다.

목차

기하

재하

기하

재하

 

인터뷰 성해나×김유나

작가의 말

대부분의 소설 속 인물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뒤늦게 묻는다. 마음에 커다란 틈이 생긴 뒤에야. 혹은 틈이 너무 벌어져 무너진 뒤에야. 그러면서 틈이 생기기 이전, 아주 가느다란 실금이어서 거의 보이지도 않던 그 순간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좋은 소설은 여기에서 결정된다. 뒤돌아보는 자의 시선, 뒤돌아보는 자의 태도, 뒤돌아보는 자의 윤리. 성해나는 제대로 뒤돌아볼 줄 아는 작가이다. 손쉽게 단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해하지 않는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곱씹고 곱씹는다.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은 문장 곳곳에 스며든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의 찰나를 문장으로 건져 올린다. 성해나의 문장은 정확하면서 예민하고, 명확하면서 깊고, 단정하면서 힘이 세다. 책을 읽다보면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천천히 스며든다. 그래, 이게 읽는 맛이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윤성희 소설가

저자의 말

소설의 마지막 장을 쓸 때마다 내가 두고 온 인물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평온하기를 빈다. 나도 모르는 세계에 그들만 남겨두었다는 죄스러움을 사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삶이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쉼표로 남아 오래 흐르기를 희원하기 때문이다.

두고 온 여름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하와 재하도 그럴 수 있기를, 그들이 살아갈 나날이 더욱 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곳에서 기하와 재하는 몇번의 여름을 맞을까.

몇번의 사랑을 하고, 또 몇번의 이별을 준비할까.

나는 어떨까.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은.

 

우리가 맞을 무수한 여름이 보다 눈부시기를.

어딘가 두고 온 불완전한 마음들도 모쪼록 무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