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91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독일 대표시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외 지음  ,  임홍배  편 역
출간일: 2023.03.02.
정가: 17,000원
분야: 문학, 외국문학

괴테, 니체, 릴케, 브레히트, 헤세 등

서울대 임홍배 교수의 깊이 있는 해설로 즐기는

독일 대표시의 맛과 멋

 

 

한 나라 혹은 언어권의 대표적인 시들을 친근한 해설과 함께 한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창비세계문학의 독보적 시선집 시리즈 독일어 편인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독일 대표시선』이 출간되었다.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라는 제목은 릴케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우리나라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괴테, 니체, 릴케, 브레히트, 헤세를 비롯해 「보리수」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겨울 여행」(한국에선 「겨울 나그네」로 더 유명한) 등 슈베르트의 대표적 가곡들의 가사가 된 시를 쓴 빌헬름 뮐러, 19세기의 선구적 여성 시인 드로스테-휠스호프와 노벨상을 수상한 넬리 작스, 2022년 말에 작고한 전후 서독의 대표적 시인 엔첸스베르거까지 51명의 시 105편을 시대와 사조의 흐름에 따라 6부로 나누어 풍성하게 엮어냈다. 서울대 독문학과 임홍배 교수가 2년여간 심혈을 기울여 작가와 작품을 고르고, 모든 시에 전후 맥락을 설명하는 상세하고도 애정 넘치는 해설을 달았다. ‘옮긴이의 말’에서 임홍배 교수는 “시인의 개성과 세계관, 시대적 과제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시적 상상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책은 관심은 있지만 외국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시작점이자 길잡이가 되어주고, 어릴 적 릴케의 시를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온 그 시절 문학소녀‧소년들에게는 다시금 독일시의 매력에 빠질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슈투름 운트 드랑’과 바이마르 고전주의

 

1부에서 소개한 괴테와 쉴러의 청년기 시는 독일 문학사에서 ‘폭풍과 격정’을 뜻하는 슈투름 운트 드랑 사조에 속한다. 괴테의 「오월의 축제」에서 보듯이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는 거침없는 격정을 분출하고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감정을 토로한다. 또한 「프로메테우스」처럼 억압적 권위를 타파하고 인간해방을 추구하는 것도 이 사조의 중요한 특징이다. 괴테와 쉴러의 중년기 이후 시는 ‘바이마르 고전주의’라 일컬어지는데, 진‧선‧미의 조화로운 통일을 문학적 이상으로 추구한다. 괴테가 체험시와 사상시가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면 쉴러는 사상시의 성향이 강하다. 횔덜린의 시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정신적 자양분으로 삼은 점에서 괴테, 쉴러와 공통된 정신적 기반 위에 있다. 그러나 앞선 두 시인과 달리 성스러움에 대한 깊은 동경, 지상의 덧없음을 초월해 ‘영속적인 것’을 일구려는 숭고한 소명의식으로 고유한 시세계를 구축했다.

 

가곡의 단골 소재가 된 낭만주의 시들

 

2부는 19세기 초중반의 낭만주의 시를 포괄한다. 하이네의 시는 아름다운 서정성이 넘치며 독일 시인을 통틀어 가곡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다른 한편 하이네는 봉건적 억압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급진적 정치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나는 혁명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치열한 투쟁정신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문학을 단지 투쟁의 도구로만 보는 편협한 경향성에는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노발리스는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라는 슬로건하에 근대 과학의 기계적 세계관과 계몽적 이성을 해체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낭만주의 문학의 주요 모티브 가운데 하나는 방랑이다. 한곳에 머무는 삶은 이미 정해진 것, 관습적인 것에 얽매이는 삶이기 때문에 미지의 낯선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 문학을 ‘먼 곳을 향한 동경’이라 일컫기도 한다. 브렌타노와 아이헨도르프의 시는 그런 낭만적 동경을 유현한 자연 서정으로 표현한다.

 

근대의 새벽, 19세기 대표 여성 시인부터 니체까지

 

3부는 19세기 중후반의 사실주의 시를 포괄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 드로스테-휠스호프는 섬세한 자연 관찰이 빼어난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며 반세기 후에 출현하는 인상주의 회화를 미리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헤어베크는 급진적 정치시를 지향한 ‘청년 독일파’의 대표적 시인이다. 청년 독일파는 하이네의 정치시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지만, 만년의 하이네가 정치시를 쓰면서도 시의 예술성을 옹호한 것에는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사실주의 소설가로 유명한 슈토름이나 켈러는 주로 고독한 내면을 절제된 자연 서정시로 썼다. 낭만주의 자연시가 자아와 대자연의 신비적 합일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이들의 자연시는 이미 자연과 단절되고 고립된 개인의 내면 풍경을 비춰주는 경향을 보인다. 니체의 시는 이전의 모든 전통과 결별하고 본격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해당한다. 토마스 만, 카프카, 트라클 등 20세기 독일 작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준 니체는 적지 않은 시를 남겼는데, 철학적 통찰을 아포리즘처럼 표현한 시가 주류이지만 훗날 트라클을 떠올리게 하는 개성적인 시들도 있다.

 

전쟁 이전의 모더니즘 시들

 

4부는 20세기 초반 본격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다. 릴케는 일찍이 일제 치하에 한국에 수용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한국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서구 시인으로 꼽힌다. 릴케는 조각가 로댕을 만나 ‘사물을 관찰하는 법’을 익히며 뛰어난 조형 감각을 연마했다. 사물에 대한 엄밀한 관찰을 표현한 ‘사물시’는 시인의 주관을 대상에 덧씌우지 않고 대상이 고유한 개체로서 스스로 말하게 한다. 게오르게와 호프만스탈은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다. 호디스의 「세계의 종말」은 독일 표현주의 선언문으로 평가되는데, 표현주의는 모든 가치의 붕괴와 종말론적 위기의식을 격정적 언어로 표출한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트라클의 시는 넓게 보면 표현주의 계열에 속하지만, 강렬한 색채 감각과 회화적 이미지, 죽음과 비애의 정조, 깊은 죄의식 등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했다.

 

암흑의 시대를 시로 돌파해온 시인들

 

5부는 넓게 보아 나치 정권과 직간접으로 긴장관계에 있던 시인들의 대표작이다. 20세기 전반기의 대표적 여성 시인 라스커-쉴러는 관능의 해방을 추구하는 거침없는 상상력과 간결한 시적 언어로 주목받았고, 히틀러 집권 후 스위스로 망명했다. 벤의 초기 시는 「아름다운 청춘」처럼 현실의 추악한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전대미문의 충격을 일으켰다. 뢰르케는 히틀러 정권에 협조하지 않은 괘씸죄로 절필을 강요당한 시인이다. 유대계 여성 시인 콜마는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쳤으며, 여성 시인 랑게서 역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투홀스키, 베르펠, 헤르만-나이세, 브레히트 모두 나치 시대에 국외로 망명하는 고초를 겪었다. 브레히트는 극작가로 유명하지만 불의의 권력에 항거하는 투쟁적인 시와 현실을 직시하는 아름다운 서정시도 많이 남겼다.

 

전후 독일의 폐허와 분단체제를 그린 시들

 

6부에 포함된 시들은 2차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이르는 역사적 경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아이히의 「재고 조사」는 전후의 이른바 ‘폐허문학’의 대표작으로 전쟁의 참상을 거치면서 도대체 남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최소한의 무미건조한 시적 언어로 점검하고 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첼란의 「죽음의 푸가」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문학적 증언이자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만가이다. 전후에는 특히 여성 시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카슈니츠의 「히로시마」는 원자폭탄 투하의 참상이 어떻게 언론에 의해 가짜 참회의 신화로 조작되는가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히틀러 집권 후 스웨덴으로 망명한 넬리 작스의 「지상의 민족들이여」는 유대인 대학살 이후 진정한 화해의 조건을 말한다. 바흐만의 시는 진실에 대한 탐색이 어떻게 시적 언어로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성찰을 담고 있다. 동독 출신 키르슈의 시는 동베를린의 거처에서 서베를린에서 온 연인을 만나는 분단 시대의 사랑을 노래한다. 한편 2022년 말에 작고한 전후 서독의 대표적 시인 엔첸스베르거의 「오래된 유럽」은 유럽 중심주의에 가려 있는 유럽적 정체성이 허구임을 담담한 일상적 어조로 술회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세의 시는 흔히 현실을 초탈한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탐구한 단아한 시풍으로 알려져 있지만, 1차대전 당시 열렬한 반전 평화 활동가로 나서기도 했던 면모가 「평화를 향하여」 같은 시에 남아 있다.

목차

제1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들장미 / 오월의 축제 / 프로메테우스 / 미뇽의 노래 / 발견 / 복된 동경 / 변화 속의 지속

프리드리히 쉴러―오를레앙의 처녀 / 세상의 분할 / 순례자 / 만가

프리드리히 횔덜린―반평생 / 저물어라, 아름다운 태양이여… / 회상 / 자연과 예술 또는 새턴과 주피터

 

제2부

하인리히 하이네―로렐라이 / 밤중의 상념 / 슐레지엔의 직조공들 / 시궁쥐 / 시간이여, 소름 끼치는 달팽이여!

노발리스―숫자와 도식이 더이상 / 저 너머로 건너가련다

클레멘스 브렌타노―낯선 곳에서 / 물레 돌리는 여인의 밤노래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낯선 곳에서 / 달밤 / 한통속

에두아르트 뫼리케―버림받은 소녀 / 페레그리나 V / 램프를 바라보며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죽음이 삶의 고난을 끝낼지라도 / 히지르

빌헬름 뮐러―보리수

 

제3부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어머니에게 / 레빈 쉬킹에게 / 비 그친 황야

카롤리네 폰 귄더로데―꿈속의 입맞춤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누가 일찍이 인생을 깨달았을까

아달베르트 폰 샤미소―봉쿠르 성 / 정신병원의 상이용사

게오르크 헤어베크―자장가

루트비히 울란트―좋은 친구

니콜라우스 레나우―이별 / 셋이서

프리드리히 헤벨―여름 소묘 / 황무지의 나무 한그루

테오도어 슈토름―황야를 거닐며 / 깊은 그늘

고트프리트 켈러―여름밤 / 겨울밤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로마의 분수 / 죽은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고독 / 새로운 바다들을 향하여

 

제4부

라이너 마리아 릴케―엄숙한 시간 / 표범 / 들장미 덤불 /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 오라, 그대, 마지막 존재여

슈테판 게오르게―노래 / 죽었다는 공원에 와서 보라

후고 폰 호프만스탈―어떤 사람들은… / 세계의 비밀

야코프 판 호디스―세상의 종말

게오르크 하임―베를린

알프레트 리히텐슈타인―해 질 녘

게오르크 트라클―어두운 골짜기 / 겨울 저녁 / 심연에서 / 그로덱

 

제5부

엘제 라스커-쉴러―에로스 신경 / 향수 / 쫓겨난 여자

고트프리트 벤―아름다운 청춘 / 더 고독한 적은 없었네 / 오직 두가지만 / 과꽃

오스카 뢰르케―수평선 너머 / 돌길 / 티무르와 무녀

쿠르트 투홀스키―몽소 공원

프란츠 베르펠―어느 망명객의 꿈의 도시

막스 헤르만-나이세―등불이 하나씩 꺼지고

게르트루트 콜마―방랑하는 여인

엘리자베트 랑게서―1946년 봄

베르톨트 브레히트―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사랑하는 사람들 /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 바퀴 갈아 끼우기 / 아, 어린 장미를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제6부

귄터 아이히―재고 조사

마리 루이제 카슈니츠―히로시마

넬리 작스―지상의 민족들이여

파울 첼란―죽음의 푸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진실한 것은

에른스트 얀들―문의

에리히 프리트―좌우지간

페터 후헬―망명

자라 키르슈―그날

귄터 쿠네르트―유토피아로 가는 길에

쿠르트 드라베르트―현황 묘사. 중간 보고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오래된 유럽

헤르만 헤세―평화를 향하여 / 늦가을 산책길에 / 때로는

 

옮긴이의 말 | 독일시의 흐름

수록작품 출전

원저작물 계약상황

발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