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117

버샤

표명희  장편소설
출간일: 2023.02.24.
정가: 14,000원
분야: 청소년, 문학

권정생문학상 수상 『어느 날 난민』 작가 표명희 신작

“사랑의 힘으로 넘지 못할 건 세상에 없어.”

국경과 마음의 벽을 넘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행

 

 

『어느 날 난민』으로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한 표명희 작가의 새 장편소설 『버샤』가 창비청소년문학 117번으로 출간되었다. 전작에 이어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확장한 이번 작품은 무슬림 소녀 버샤와 가족들이 난민 인정 심사를 위해 국제공항에 체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실어증을 겪고 있는 버샤의 비밀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공항에서 만난 진우와의 인연이 버샤가 처했던 갑갑한 현실에 의지와 희망을 불어넣는다. 공항이라는 공간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난민 문제가 실은 우리 곁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일이라는 점을 환기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버샤의 여정을 진실하게 응원하는 소설이다.

 

 

이젠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버샤의 발돋움

 

국제공항 출국장 한구석, 임시로 마련한 작은 거처에 버샤와 다섯 식구가 산다. 그들은 내전 중인 고향을 떠나온 뒤 난민 캠프를 전전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입국은 쉽지 않고 난민 인정 심사를 위해 대기하는 신세다. 내전 중에 겪은 한 사건 이후 실어증이 생긴 버샤는 말할 수 없는 탓에 종종 가족들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달과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은 아라베스크 문양,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을 사랑하지만, 가부장적인 이슬람 문화에는 날 선 비판을 감추지 않는다.

가족들을 대표해 필담으로 통역을 맡고 버샤 가족의 사연을 취재하러 온 여성 기자를 보며 자신도 새로운 세계에서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는 버샤. 그런데 언론의 인터뷰는 갈수록 가족이 겪은 수난뿐 아니라 버샤의 비극을 파고든다. 그 사건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버샤 대신 부모인 아델과 하만이 인터뷰를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그날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버샤는 이제 목소리를 감추는 대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하는데…….

 

 

국경을 넘어서는 환대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기적

낯설지만 가까운 우리 곁의 목소리

 

모든 것이 낯선 이국의 땅에서 버샤가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서기로 결심한 데에는 공항에서 만난 진우의 도움이 있었다. 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하던 진우는 우연히 마주쳤다 홀연히 사라진 버샤를 잊지 못하고 매일 그녀를 생각한다. 그러던 중 버샤 가족의 사연이 담긴 인터뷰 기사를 본 뒤 다시 버샤를 만나 조심스럽게 자신이 키워 온 마음을 전한다. 진우는 버샤를 보며 정규직 공채 시험을 결심하고, 버샤는 진우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고 배우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 간다.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가 닿았으니 우린 이미 국경을 넘어선 거예요.”(320면)

드디어 난민 인정 심사를 볼 수 있게 되어 심사를 기다리던 어느 날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전염병으로 공항이 폐쇄된다. 진우는 버샤에게 영상을 통해 공항의 소식을 전하기를 제안한다. 버샤는 진우의 지지에 힘입어 텅 빈 공항을 배경으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알리는 영상을 촬영한다. 여행을 위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공항은 가까우면서도 낯선 곳에 대한 설렘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출국장에서 생활하는 버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버샤』는 이런 특별한 장소로서 공항을 재발견하며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 난민 문제를 조명한다.

 

 

차별과 혐오의 시대를 이겨 내는

사랑과 우정의 연대

 

재난과 전쟁으로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자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대에 그치며 선진국 중 최하위에 속한다. 전작 『어느 날 난민』에서 우리 모두는 ‘지구별 여행자’로서 떠도는 난민이기도 하다고 말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버샤의 정체성과 사연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익명의 난민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인권을 가진 동등한 구성원으로 체감하게 한다. 특히나 이슬람 문화에 대한 혐오와 인종 차별이 여전히 심각한 오늘날, 버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낯설지만 가까운 이웃인 버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과 환대의 가치를 진실하게 그려 내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인상 깊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목차

버샤

 

작가의 말

참고 문헌

인천공항 출국장 한쪽에 내전의 나라에서 떠나온 무슬림 가족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살고 있다. 난민 지위를 얻어 한국 땅에 발을 딛기 위해. 작가는 『어느 날 난민』에 이어 다시 한번 자기 땅을 떠나 떠도는 난민들의 기약 없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명민하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 주인공 버샤를 실어증으로 몰아넣은 발설할 수 없는 가족의 수난과 비밀은 정치와 종교가 뒤얽힌 착잡하고 폭력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갖고 있다. 버샤의 시선과 내면에서 한 땀 한 땀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정교하게 짜이고 풀려나가는 이야기는 생생하고 깊은 진실의 힘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일시적이나마 공항의 현대적 편의를 누릴 수 있는 이들 가족의 경우는 어쩌면 조금 운이 좋은지도 모르지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뒤에 남은 나날들을 떠올리는 일은 너무도 쓰라리다. 그런 가운데 전혀 뜻밖의 곳에서 싹트는 사랑이 만져 볼 수 있는 한 줌 희망의 근거가 되고, 경계 너머 이음과 접속의 신호가 되는 소설의 환한 출구는 오래오래 아껴두며 음미하고 싶다. 정홍수(문학평론가)
소설 『버샤』는 난민을 집단적 존재가 아닌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서 만나게 해 준다. 주인공인 무슬림 여성 ‘버샤’는 어두운 빛깔의 히잡 같은 여러 겹의 억압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버샤는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삶을 찾아갈 용기를 낸다. 책장을 덮으면 버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가 평소에 듣지 못했던, 그러나 꼭 들어야 하는 목소리. 이제는 우리가 ‘버샤’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할 때이다. 경계를 지우는 환대의 마음이 가만히 자라나게 하는 소설이다. 최지혜(교사)

저자의 말

공항 인근 동네에 살아서 마실 다니듯 공항을 자주 오갔다. 바깥 산책이 힘든 추운 겨울에는 공항 청사 안에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산책을 했다. 거대한 성이자 화려한 시장통 같기도 한 그 공간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닫혀 있으면서도 열린 공간, 멀리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에서 엇갈리며 오가는 사람들 물결이 결국 『버샤』를 낳았다. 처음엔 발상을 전환해 난민 이야기일지라도 경쾌하게 그리고 싶었다. 이를테면 뱅크시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남겨 놓고 온 벽화 발레리나 같은 작품처럼 말이다. 포연이 머무는 전쟁터 담장 위에 그려진, 무너진 벽돌을 손으로 짚고 허공에 휙 물구나무서듯 몸을 띄운 발레리나의 춤 동작 같은 놀라운 상상력의 창작물. 아니 그보다 전쟁터에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그런 불가사의한 예술혼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소심하고 자질 부족의 작가는 흉내는커녕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라는 것만 절감했다.

역량 부족의 소심한 작가가 낯선 문화, 더욱이 이 나라에서는 편견과 냉소의 시선까지 있는 이슬람 문화를 그리는 건 쉽지 않았다. 모험이자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또 매혹적이었다. 낯선 정서, 생소한 문화를 이해하느라 천일의 밤을 보낸 셰에라자드만큼이나 시간을 보냈다. 그런다 한들 이방인의 시선의 한계를 얼마나 넘어설 수 있겠는가. 혹 누군가 이슬람 문화와 관련해 문제점을 지적해 온다면 소설가의 특권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이야기는 순수한 픽션, 그러니까 허구다. 허점이 보인다면 그건 허구를 진짜인 것처럼 그려 보이는 소설가적 자질 부족을 탓해야 한다.

탈고하는 동안 여행의 밑그림이 수정되어 순례지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뱅크시 그림을 보러 우크라이나에도 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버샤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을 꿈꾼다. 전쟁이 끝나고 하루빨리 평화가 왔으면……. 간절한 바람에 버샤의 위로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믿으면 된다. 결국은 믿음이 마술을 부리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