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꾸는 마법!
포근하고 다정한 마음을 담은 동시집
2018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김물 시인의 첫 동시집. 언어에 담긴 강력한 힘을 유감없이 발휘해 답답한 현실에서 자유를 꿈꾸는 어린이의 모습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시인은 어두운 방 안, 학교 쉬는 시간 등 언제 어디서든 탁월한 발상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치는 어린이를 그리면서도, 자칫 놓치기 쉬운 작은 눈빛과 한숨에까지 시선을 보내는 어린이의 살뜰한 마음을 발견해 낸다.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포근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가닿는 동시 52편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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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어린이를 향한 빛나는 통찰과 상상력
독보적인 창의력으로 매만진 언어의 동시집
김물 시인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들이 다른 느낌으로 읽히도록 하는 개성 넘치는 비유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으며 등단했다. 독특하고 강렬한 언어 세계를 지닌 시인이 오랜 습작 끝에 한 권의 동시집으로 엮어 낸 『오늘 수집가』에는 그간의 기다림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참신한 동시가 넉넉히 담겼다. 시인은 어딘가에 매여 있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어린이를 자주 그려 내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꿈꿀 수 있도록 무한한 공간 또한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의 빼어난 언어적 역량이다.
우주를 켠다//네모난 방 안/흩뿌려진 별들//탈탈 속을 비워 낸 책가방에/산소를 가득 채워 메고//침대에 솟아오른 이불 산맥 위/겅중겅중 우주인의 걸음을 걷는다/방방 뛰어오른다//(…)//흘러내린/우주복 고무줄을 끌어 올린다//다시, 다리를 뗀다/우주 속을 걷는다 ― 「플라네타륨」 부분
어두운 방 안은 폐쇄적인 공간으로도 보이지만 시인의 눈길을 거치면 광활한 우주로 거듭난다. 텅 빈 책가방은 산소가 가득 든 산소통이 되고, 이불은 화자를 재우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걸음을 깨우는 외딴 행성의 표면이 되며, 잠옷은 훌륭한 우주복이 된다. 뿐만 아니라 “보드랍고 캄캄”한 밤이 된 ‘옷 속’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으며 “명왕성 하늘을 날아다니다/지구 속 내 방까지 1초도 안 걸려 도착”(「옷이 너무 깊어서」)할 수도 있다.
익숙한 낱말로 돋보이는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은 김물 시인의 특장점이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행위를 보고 ‘바다를 신다’라는 신선한 의미를 발생시키며 읽는 이의 감각을 자극한다. ‘오늘을 수집하다’ ‘옷이 깊다’ ‘봄이 쏟아진다’와 같은 표현 모두 그만의 독특한 말법에서 비롯되었다. 『오늘 수집가』에는 “언어의 지시적 기능 이상을 넘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일상어가 따르지 못할”(김제곤, 해설 「닫힘에서 열림으로」) 힘이 있다. 독자들은 동시를 읽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선에 눈 뜨게 하는 기분 좋은 동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짓눌리는 현실에 균열을 내 탈출구를 모색하는 어린이
동시 위에서 재현된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
시인은 어린이가 마음속 걱정과 고민을 비워 내는 과정을 도넛에 비유했다. 「도넛의 마음」의 시적 주인공은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는 것을 깨닫자, “무거워지지 않”고 “가득 채우지 않을 거”라며 다짐한다. 마침내 “어떤 모습이건/나는 나니까”라고 씩씩하게 선언하며 한 걸음 나아가는 어린이가 미덥게 그려진다. 시인이 그려 내는 어린이가 이토록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지나온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 기인한다.
차가운 교실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바닥에 가라앉은 의자 위/떠오르는 몸을 눌러 붙인 아이들//말들은 거품으로 흩어지고/귀에 닿은 소리들은/웅웅대다 사라진다//금세 차오르는 숨//돋아난 손발로 허우적거리며/네모난 덩어리 밖으로/솟구쳐 오른다//숨 쉬는 법을 잊은 나는/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문 앞을 더듬거린다 ― 「수영장에서」 전문
‘교실’만큼 다양한 느낌을 주는 단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인은 후자에 초점을 맞추어 숨이 턱 막히는 교실 풍경을 습기 가득한 수영장에 비유했다. 그러나 시인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향한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를 보낸다. 시인은 “닫힘의 세계에 마냥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세계에 어떻게든 문을 내어 열림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존재”(해설 「닫힘에서 열림으로」)를 그리고 있다. 수영장 같은 교실 속 어린이들이 숨 쉬는 법을 터득해 고립감을 이겨 내길 응원한다. 「한낮, 교실」에서는 교실 창틈에서 흘러나온 아까시 향기를 맡고 “콧구멍 속이 달큼해진 아이들이/코를 큼큼”댄다. 수업시간에도 “향기에 버무려져/조금 흐트러”질 수 있는, 그런 여백이 있는 교육 현장이 되기를 시인은 희망한다. 날 선 세상 때문에 상처받고도, 툭툭 털고 일어나 “어쩌면/오늘은 괜찮을 것 같”(「오늘은」)다며 힘 있게 나아가는 모습이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어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을 비추는 눈길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어린이만의 정답
시인이 그려 내는 어린이 화자들에게는 어딘지 성숙함이 느껴지는 것 또한 『오늘 수집가』의 특징이다. 그들은 작은 키에 낮은 눈높이로 어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들을 보면서도, 훌쩍 자란 마음의 키로는 더 깊고 높은 곳에까지 눈길을 보낸다. 「무릎」은 그런 순간을 유감없이 포착한 동시다.
무릎은 구부러진다/나를 낮출 수 있게 해 준다/문 닫은 닭갈비 가게 앞/묶여서도 꼬리를 흔드는 개 옆에/쪼그려 앉게 해 준다/물기 젖은 까만 눈을/들여다보게 해 준다/개집 앞/먼지 내려앉은 밥그릇을/볼 수 있게 해 준다/책가방에서 꺼낸 급식 우유로/빈 그릇 채울 수 있게 해 준다/무릎이 구부러져서/까끌하고 마른 등허리/쓰다듬어 볼 수 있게 해 준다 ― 「무릎」 전문
무릎을 구부려 개 옆에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화자는 자세를 낮추지 않아도 이미 그 눈길이 아래까지 닿아 있는 사람이다. 개에게는 빈 그릇을 채워 준 화자의 손길이, 화자에게는 개의 젖은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개에게 보낸 안온한 시선은 다른 생명에까지 이어진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거미’를 보고서는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가는 행보에 주목한다. 거미는 시인의 눈을 거쳐 “길이 부서지고 사라져도/다시 길을 펼”(「거미」)치는 씩씩한 나그네가 되었다. 「택배」에서는 ‘아빠’의 하루를 조명한다. 화자는 얼음덩어리 같은 택배 상자를 나르다가 “아빠 몸에 물기가 번”지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기억한다. 이 같은 다정한 마음은 심리적 거리가 먼 이에게도 여전하다. “쪼그려 앉아/보도블록을 끼”(「퍼즐 길」)우는 아저씨를 보면서 눈가의 주름과 힘겨운 걸음을 생각하는 마음은 미덥기 그지없다. 바닥에 뿌리내린 작은 풀꽃 하나, 개미 한 마리까지 들여다보았던 어린이도 키가 자라 어른이 되면 놓치는 것들이 생긴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 유대감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시인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어린이의 대가 없는 친절과 다정한 손길을 그 지침으로 제시한다.
이 동시집이 어른에게는 잊어버린 동심과 삶의 방향을 찾는 길잡이가, 어린이에게는 “한 잠 두 잠/자고 깨며/내 집을 짓는 시간”(「고치의 시간」)을 격려하는 믿음직한 응원단장으로 남길 기대한다.
제1부 지구 속 내 방까지 1초
자유 | 내가 만약 가방이 된다면 | 플라네타륨 | 공 | 트램펄린 | 열세 고개 너머 너머 | 종이비행기 | 욕실 슬리퍼 | 수영장에서 | 복도엔 | 혼자 놀기 | 옷이 너무 깊어서 | 오늘 수집가
제2부 참외 배 타고 깻잎 이불 덮고
바다를 신다 | 봄을 튼다 | 둥글어서 | 참외 배 | 숨 | 바람 조각 | 소나기 | 그날 | 생각 엮기 | 깻잎 이불 | 우산 | 아침 해 | 한낮, 교실
제3부 고양이는 둥글다
둥근 안경이 응응 | 빈집 | 구름 | 높고 녹는 산 | 퍼즐 길 | 전봇대 이야기 | 안내 방송 | 거미 | 갯벌 | 내 품 안에 밤 | 무릎 | 달 | 고양이는 둥글다
제4부 어쩌면 오늘은
고치의 시간 | 헨젤 | 검은 비 | 택배 | 손톱 달 | 이사 | 도넛의 마음 |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 함박눈 | 네가 웃을 때 | 스노볼 | 부푼다 | 오늘은
해설 | 닫힘에서 열림으로_김제곤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