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의 목소리로 노래할 거야.”
반듯하기만 한 온음의 세계에 울려 퍼지는 반음의 이야기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채기성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반음』이 창비청소년문학 115권으로 출간되었다. 열여덟 살 주인공 ‘제주’가 합창부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겪은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 입체적인 인물과 매력적인 비유가 돋보인다. 전작 『언맨드』에서 인간이 되려는 로봇의 내면을 들여다봤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제주의 감정을 찬찬히 살핀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면을 파고드는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며, 어른들의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연대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청소년과 청소년 노동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현실적인 탐구가 깊은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주위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오롯이 노래하려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힘찬 응원을 건넬 소중한 작품이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떠도는
열여덟의 마음
낯선 번호의 전화가 울렸다.
“혹시 권제주 맞나요?” (본문 11면)
열여덟 살 주인공 제주에게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온다. 합창부에 들어와서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단장 ‘재현’의 전화. 제주는 노래를 잘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고 노래를 좋아하지만, 합창부에 가입하기를 망설인다. 악보를 읽지 못해 정확한 음을 내지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가 합창부에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격투기에 빠져 딸을 방치하는, 무책임하고 철없는 아빠다.
“제주야, 돈 좀 있니?”
“……무슨 돈?”
“곧 있잖아, 대전료 받으면 내가 바로 줄 테니까…….”
“고등학생한테 돈 달라는 아빠가 어딨어.” (본문 21면)
생계비를 보내 주기는커녕 돈을 빌려 달라는 아빠 때문에 제주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한다. 제주는 노래, 연기, 춤 등의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구인 공고를 보고 연락해 ‘찰스’를 만나게 된다. 노래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찾아갔지만, 찰스는 일을 잡아 주지 않고 오히려 제주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제주 주변엔 뻔뻔하고 염치없는 어른들밖에 없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주는 친구들과 노래하며 소속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합창부에 들어간다. 하지만 제주는 악보를 보지 못해 음을 자주 틀리고, 음악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으며 폭언까지 듣는다. 자신이 합창부의 불협화음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제주. 그런 제주에게 찰스가 뜻밖의 제안을 건넨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자는 제안.
정교하게 설계되어 움직이는 오디션의 세계
세트와 배경으로 이용되는 아이들
참가비를 준다는 말에 제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다. 제주는 은연중에 방송 출연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기대했던 첫 방송에서 제주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디션에서마저 제주는 가장자리로 밀려나 주변을 겉도는 신세가 된다.
모든 것이 순간의 경쟁이며 우연의 연속이라고 자막을 넣은 프로그램이었지만, 그 경연의 세계에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움직였다. 사전에 ‘픽’을 받은 출연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꾸려졌다. (본문 94~95면)
소설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현장을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 낸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문학적인 묘사는 그간 아이돌 오디션 등 서로 경쟁하는 이야기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그렇게 주변부에 머물던 제주는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오디션의 중심에 들어가게 된다. 조별 경연 미션에서 생긴 뜻밖의 사건 때문에 제주는 어려움을 겪고, 이후 수많은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비난하며 조롱하는 악플들에서 벗어나 제주는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담담하고 힘찬 위로와 응원
주인공 제주를 비롯한 『반음』 속 청소년들은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어른들의 폭력에 좌절하지도, 순응하지도 않는다. 서로 아픔을 공유하며 힘이 되어 주고, 세상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온음과 반음 같은 이분법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연대는 읽는 이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목소리로 오롯이 노래하려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담담하면서도 힘찬 위로와 응원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곤 한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있다. 자신의 소리로 노래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거나 좌절하는 이들에게 제주의 목소리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프롤로그 006
1부 메조피아노: 조금 여리게 009
2부 라멘타빌레: 슬픈 듯이 089
3부 리솔루토: 자신감 있게 165
에필로그 216
작가의 말 219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곤 한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있다. 자신의 소리로 노래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거나 좌절하는 이들에게 제주의 목소리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