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양장)

백온유  장편소설
출간일: 2022.07.25.
정가: 14,000원
분야: 문학, 소설

시원쌉쌀한 여름의 맛, 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상·오늘의작가상 『유원』을 잇는 빛나는 성장소설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 문학평론가 김지은 추천!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것이 백온유 소설만의 조용한 힘이다. 정이현(소설가)

 

지금까지 이런 경로의 형이상학을 소설에서 본 적이 없다. 김지은(문학평론가)

 

 

“담대한 소설적 기량” “이 시대의 가장 긴요한 감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작 『유원』으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과 제44회 오늘의작가상을 거머쥔, 한국문학의 새로운 얼굴 백온유. 작가 백온유의 두 번째 장편소설 『페퍼민트』가 출간되었다. 『유원』에서 비극적인 사건의 생존자 유원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와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돌봄과 죽음, 용서와 화해를 가로지르며 한층 확장된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열아홉 살 시안과 해원이 6년 만에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난 두 주인공의 관계와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감각이 돋보이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밝은 자리로 나아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지가 빛난다. 전작 『유원』과 함께 나란히 기억될 눈부신 성장소설이다.

 

시원쌉쌀한 풀잎 향이 퍼져 나갔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로 끼쳐 왔다

 

시안은 매일 페퍼민트 차를 우린다. 몇 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위해서다. 6년 전 시안의 가족이 전염병 ‘프록시모’에 감염된 뒤, 엄마는 회복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나아질 가망이 보이지 않는 엄마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간병 생활의 괴로움, 문득 지겹다는 생각을 하고 만 뒤 몰려오는 죄책감까지, 시안을 괴롭히는 감정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 가족과 다름없이 지내던 사이였지만 병을 옮기고 잠적하여 사라진 해원을 다시 만났을 때, 시안의 감정은 어떠할까? 스스로도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소용돌이를 품은 채 엄마도 건강히 회복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해원을 만나면서, 시안은 ‘열두 살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애틋해지다가도 해원의 입시나 남자 친구 고민을 듣고 있을 때면 같아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상황을 자각하고 만다.

 

“내가 깜빡 존 사이에 엄마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쏟아지는 잠을 쫓는 마음을 넌 모르겠지. 해원의 빡빡한 일정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후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낙오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보통 사람들의 진도를 죽을 때까지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 미래에 실망하게 되었다.” 본문 71면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사는 듯 보이는 해원에게도 깊은 불안이 있다. 농담으로 던진 ‘병을 옮긴다’는 말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지원’이라는 흔한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사람들이 알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아는 시안이 나타났을 때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는 듯 보였던 해원의 세계가 다시 요동친다. 작가는 이처럼 위태로운 관계에 놓인 시안과 해원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원망과 거짓, 죄책감과 불안이 마주치며 만들어 내는 팽팽한 긴장을 포착하는 묘사가 돋보이며, 각기 다른 입장에 처한 두 사람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고르게 몰입하여 곁에 머물게 만든다.

 

내일을 살아낼 우리를 위해

밝은 자리로 이끄는 용서와 화해

 

시안의 페퍼민트 차는 엄마를 위한 돌봄의 차이기도 하지만 지친 시안에게 “여유와 평화”(190면)를 주는 차이기도 하다. “20대의 이시안과 30대의 이시안, 40대의 이시안이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소변 통을 비우는 모습을 내가 상상하고”(211면) 마는 숨 막히는 현실이지만, 작가는 엄마의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그리고 돌봄이란 모두가 지나야 할 시기임을 받아들이고 미리 상상해 보기를 주문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너는 조금 일찍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봐.” 본문 191-192면

 

시안은 그런 미래를 상상해 보고, 최선희 선생님과 함께 두려움과 슬픔을 나누며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라는 시안의 말은 그래서 더욱 아프고 간절하다.

있을 것 같지 않던, 준비할 수 없었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멈춰 있던 시안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처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나누었던 사랑을 기억하며 지금을 살아 내는 일. 이를 통해 상상할 수 없던 다음을 찾아내는 일. 시안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성장을 의미하며, 매일을 살아 내는 우리 모두의 성장과도 다르지 않다. 햇볕 속으로 나아가는 시안의 발걸음을 살피는 작가의 시선은 미덥고 다정하다.

 

한국문학의 젊은 미래

백온유 작가가 선보이는 또 하나의 성장

 

소설에는 많은 돌봄이 등장한다. 아이를 돌보고 강아지를 돌보고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엄마를 돌본다. 그리고 이는 누군가의 삶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으로 모아진다. 전작 『유원』에서 생존자들이 떠안는 죄의식을 들여다보았던 작가의 시선은 이번 작품에서 일반적인 일상의 세계가 붕괴되고 나서야 보이는 돌봄의 자리로 향한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121면)라며 질문을 던지는 시안의 독백이 엄마의 간병이 지우는 무게와 다르지 않게 서늘하게 들리는 것은 그런 이유다. 공백이 있고 나서야 보이는 돌봄의 중요성은 일상을 떠받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해 온 오늘의 한국문학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과 닿아 있다. ‘회복과 생존’에 이어 ‘돌봄과 생명’으로 향하며 문제의식을 갱신하고 있는 작가의 감각을 주목할 만하다. 한국문학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작가의 두 번째 발걸음을 뜨겁게 응원하게 되는 수작이다.

목차

페퍼민트  007

작가의 말  266

감염병의 시대가 끝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는 수월하게 회복되었고, 누군가는 크고 작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는 사람이 있다. 백온유 작가는 식물인간을 ‘식물적인 인간’이라고 쓴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그저 다르다. 가만히 다르다. 그 차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면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백온유 소설만의 조용한 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페퍼민트를 머금은 것처럼 혀끝이 아리고 가슴이 차츰차츰 저며 온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 던져진 십 대의 슬픔과 죄책감과 딜레마가 너무도 생생히 느껴져서다. 『페퍼민트』의 인물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려 안간힘 쓰면서 혼란을 통과해 간다. 점점 단단해져 간다. 자신들의 방식을 새로 만들어 혼돈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 안간힘과 의지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읽는다. 시안도 해원도 이젠 햇볕 아래에서 조금 더 행복하기를. 너희에겐 그럴 자격과 권리가 충분하다. 정이현(소설가)
돌봄의 총량이 있는 이 세계에서 어떤 책임은 지독하게 치우쳐진 채로 누군가에게 내맡겨져 있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한 어느 삶의 이야기이다. 돌봄의 공백 위에 서서 잠들기를 포기한 ‘영 케어러’ 시안은 묻는다. 돌봄의 위탁은 양심의 위탁인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존엄을 지켜 낸다는 것은 가능한가. 너의 불면 속에서 나의 숙면은 가능한가. 이 소설을 읽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해답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돌볼 것인가. 이 소설은 한 생명의 소실점을 향해 정교한 내면의 언어로 육박한다. 죽음의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데려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목격시키고야 만다. 생명이 정육처럼 등급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수호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도 위탁하지 못할 나의 존엄에 대한 질문을 위한 사전 응답이다. 성장은 벗어남과 떼어 냄을 거쳐 끊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한편 모든 사람은 생명의 이어짐 덕분에 살고 있으며 그 이음의 출발에는 가족이 있다. 이 소설은 끊음을 끊임없이 추적하는 얘기다. 끊어야 자랄 수 있는 주인공 시안이 제발 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할 때 느낀다. 그동안 내가 수호한다고 믿었던 것들은 얼마나 엷은 감정인가. 죽이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끌어내고 결국 잇게 만드는 『유원』의 작가 백온유의 두 번째 소설이다. 지금까지 이런 경로의 형이상학을 소설에서 본 적이 없다. 김지은(문학평론가)

저자의 말

생애 주기 속에서 길든 짧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과하게 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병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전력으로 회피한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그날이 도래하면 신발을 뺏긴 채로 한겨울 거리에 내몰린 아이처럼 아연해져 떨게 될 것이다. 한발 앞서 미리 상상할 수 없을까. 상상으로 면역력을 기를 수는 없을까. 조금 더 의연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소설을 쓰면서도 피하고 싶은 장면들이 많았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내 상상 속에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다치거나 의식을 잃었다. 몇몇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통스러운 마음의 끝에는 이기적이게도 ‘그러면 나는 어떡하지,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감염병을 겪으며 사람들은 우리 안에 도사리는 무수한 두려움을 공유했고,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은 회복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 마음을 한 번 더 믿어 보고 싶다. 우리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불안을 나눈다면 소중한 사람을 보호하면서 일상을 지속하는 삶과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계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