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능력주의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출간일: 2022.05.27.
정가: 20,000원
분야: 인문교양, 정치사회
전자책: 있음

명문대 졸업, 고시 합격… ‘시험형 인간’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지배질서를 재생산하는 시험능력주의를 분석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온 실천적 지식인 김동춘이 한국형 능력주의 실상을 구조적이고 성찰적인 시선으로 해부한 사회비평서 『시험능력주의: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가 출간되었다. 김동춘은 ‘전쟁정치’ ‘기업사회’ ‘가족 개인’ 등의 독자적 개념으로 한국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해명해왔는데, 이번 저작에서는 일평생 학생, 교사, 교수로 살아오면서 체득한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능력주의의 이름으로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조목조목 해체하고 그 해법을 절실한 마음으로 모색한다. 재능이 있는 능력자가 우대받는 것이 당연할뿐더러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능력주의’는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확산된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시험 합격의 이력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것이 공정함은 물론 정의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된 사고방식임을 김동춘은 지적한다. 학력·학벌주의, 그리고 능력주의와 관련된 여러 병리적인 사회현상은 단순히 교육과 관련된 현상이 아니라 지위 배분과 권력 재생산, 노동시장이 작동한 결과의 일부이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구조적 현실임을 설득력 있게 짚어낸다. ‘입시지옥’으로 묘사되는 한국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적 정의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시험이 능력을 판별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생각, 한국형 능력주의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 결과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출신인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을 봐도 국민의힘 후보 4명 중 3명이 검사와 변호사 출신이며,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끝까지 참여한 예비후보자 4명 중 2명이 변호사와 판사 출신이다. 민주당이 최근에 배출한 두 대통령 문재인과 노무현도 사법고시 출신이다. 군부정권이 물러난 이후 한국은 명문대를 졸업해 고시를 통과한, 이른바 ‘시험선수’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에는 하버드대 출신의 청년 정치인 이준석이 제1야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데, 그는 능력과 실적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과거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자랑하면서 기득권이 된 586세대를 밀어내야 한다며 능력주의를 아예 시대정신이라 말한다. 그보다 앞선 2017년 5월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관련된 인천국제공항 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공정 담론과 능력주의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9년의 ‘조국 사태’에 이르면 입시비리에 대한 논란이 정치적 갈등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공정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한국사회에 거대한 분열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이어지는 사건의 기저에는 시험이 개인의 능력을 판정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제도이며, 이 시험을 거쳐 명문대 졸업장, 고시 패스 등의 스펙을 획득한 사람은 이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인재이고, 그들이 재능과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저자 김동춘은 이러한 한국형 능력주의를 ‘시험능력주의’로 규정하고, 시험능력주의가 그 폐해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통렬하게 성찰한다. 과거시험으로 관리를 선발하던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엘리트를 선발하는 방식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유교적 권위주의, 개발독재 이후의 실용주의와 도구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쟁주의가 한국형 능력주의를 구성해왔음을 분석한다. 또한 칼 맑스, 막스 베버,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서구 사상가들의 개념과 이론을 경유해 지위 배분과 권력 재생산 문제를 통찰함으로써 이론적 보편성과 역사적 특수성을 함께 성취해냈다.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 김동춘,

교육문제는 지배체제 작동의 일환이자 노동의 문제임을 역설하다

시험이 능력을 가리는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는 인식, 그리고 입시와 고시 등 선별의 기제를 통과한 자들에게 주어진 강력한 특혜는 이 땅의 학부모와 학생을 ‘입시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명문대 입학, 고시 패스라는 좁은 ‘병목’을 통과할 수 있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실패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체제 속에서 대다수 개인들은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입시에 대해 아무리 많은 고발과 비판이 이뤄져도 이 시스템은 성공과 출세를 향한 개인의 사적 열망과 유착되어 있기 때문에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학력과 학벌에 대한 선망과 긴밀하게 얽힌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서구에서 시작해 국내에도 이미 많이 소개되었지만 한국에서처럼 심각한 사회병리를 낳는 이유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시험능력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과 메커니즘을 거쳐 초래되었으며,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강렬하게 작용하는가, 그리고 정권마다 달라져온 입시정책을 비롯해 기존의 어떤 대책도 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는가를 김동춘은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고든다. 이는 한국사회를 작동시키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현실참여적인 관점에서 천착해온 사회학자로서의 학문적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교육현장에서 보내온 개인 김동춘의 경험과 고민이 녹아든 결과이다. 분과학문의 한계를 넘어 입시문제를 단지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지배체제 작동의 일환으로, 노동현실의 관점에서 인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2015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과 이후 발생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비극적인 산재 사고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시험을 매개로 한 한국형 능력주의의 특징을 다양한 실체적 증거를 통해 분석한 노작이자, 이 시험전투 속에서 패배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의 삶에 사회적 존엄을 부여하고자 하는 김동춘의 절실한 마음이 담긴 역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보다는 정의에 집중해야 할 때,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시대적 과제

한국사회에서 학벌주의가 타파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대다수 시민들로부터 공감과 동의를 얻으며 전개되어왔다.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다수 청년들이 능력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능력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답하기 때문이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수능 강화 정책, 로스쿨 폐지와 사시 부활론을 주장하는 지배 엘리트들 역시 시험을 매개로 한 능력주의를 신봉한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이 과연 기회의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가? 오히려 시험 성적으로 서열화된 구조 속에서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학생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부자들에게는 더 많은 부를 합법적으로 가져다주는 지위 세습의 길을 열어주고 있지 않은가? 김동춘은 각종 기사와 통계자료, 직접 수행한 인터뷰, 영화 등의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시험능력주의가 불러일으키는 고통의 감각을 예리하게 읽어내는 한편 능력주의에 대한 기존 관념을 정면으로 통박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험능력주의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태도, 이데올로기 등 관념적 영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권력관계와 지배질서라는 엄연한 현실 구조의 일부임을 구체적 증거를 통해 증명해낸다. 입시 공정성, 수능 변별력, 학생 자살, 학교폭력, 탈학교 청소년, 임금 불평등, 대졸 실업,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대학 수직서열 등은 이 구조 속에 긴밀히 얽혀 있다. 이 문제들의 저류에는 시험능력주의가 깔려 있지만, 단지 시험을 둘러싼 교육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저자가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과제로 내놓은 해법들이 제도, 구조, 가치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 걸쳐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권력과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정의와 형평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험능력주의’의 극복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이 책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 즉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의 단초를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능력주의에 대한 일반론적 비판은 상당수 나왔고, 한국의 능력주의에 대한 분석서도 출간되었다. 이 책은 초점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 ‘시험능력주의’를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오랫동안 한국의 사회문화적 현실에 천착해온 사회학자 김동춘은 구조적이되 성찰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해부한 다음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시험을 매개로 한 한국 특유의 능력주의에 관심 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박권일(『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과거 귀족 사회는 노동을 천박한 행위로 여겼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능력주의는 재산과 학벌의 격차를 능력과 노력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규칙은 존재하되 체급은 고려하지 않는 ‘공정한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은 무능하고 게으르기에, 그 죄를 끌어안고 반평생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 『시험능력주의』는 그 시대상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고발한다. 이토록 정교한 논증들이 쌓이고 쌓여 능력주의의 견고한 성벽을 넘을 수 있기를 바란다. 천현우(alookso 에디터, 전 용접노동자)
학교교육의 역사는 기술의 근대성과 해방의 근대성을 가져왔으나, 다른 한편으로 제국화와 식민화 현상을 초래했다. 이 지점에서 『시험능력주의』는 정치경제학과 역사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학교교육이 전자의 기능보다 후자의 기능을 가속시켰고, 한국사회의 시험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재생산하여 참교육과 학교혁신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모순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제도·구조·가치 차원에서 제시하는 개혁정책은 한국교육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지침이 될 탁월한 혜안을 보여준다. 심성보(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장, 부산교대 명예교수)

저자의 말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출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다. 새 정부 각료 명단을 보고서 언론은 강병서(강남·병역 면제·서울대 출신) 정권이라고 부른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한 세대를 지난 지금 한국은 ‘시험선수’ 엘리트들이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그 자녀도 좋은 학교 보내서 지위까지 세습하는 나라가 되었다. 능력주의는 이 시대의 신흥종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도덕적 표준까지 되었다. ‘능력 없는’ 노동자, 장애인, 노인은 이제 혐오의 대상이다.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 되는 세상에서 대학서열 하위권 학교의 대학생들, 일터에서 산재로 불구자가 되는 비정규직 청년들은 저항은커녕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학원과 입시 준비가 학교교육을 압도하는 세상에서 능력주의의 최전선은 바로 서울 강남의 학원가다. 대다수의 ‘능력 없는’ 학생들은 성적 위주, 서열과 등급 매기기 중심의 학교교육에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 상위 10%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에만 관심을 둔 고등학교에서 나머지는 들러리에 불과하고, 그런 학교에서 공교육의 정신은 설 자리가 없다. 학교의 주변인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학교에서 입은 상처로 자존감 상실과 패배감, 그리고 자기비하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에는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 중에서도 대학에 가서 역사와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하고 국가나 사회를 위해 몸을 던지는 청년이 있었지만, 지금의 최우등 학생들은 대부분 로스쿨과 의대 진학, 공기업을 희망한다. 물론 이는 지금 청년들만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안정된 일자리 얻기가 더 어려워진 지금,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른바 SKY대)를 졸업해도 안정된 자리는 보장받을 수 없으니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경영학 부전공에 목을 맨다고 한다. 이 명문대 졸업장을 신분증처럼 여기는 대학생들은 ‘공정’의 이름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 하지만, 그들의 지적 ‘능력’은 지금 한국사회와 인류가 처한 문제 해결에는 거의 소용이 없다. 가장 우수한 청년들이 의대와 로스쿨로 가는 나라, ‘시험형 인간’이 권력뿐만 아니라 경제력까지 거머쥐고, 자녀에게 학력자본을 줌으로써 지위를 세습하는 나라, 사회와 경제의 바탕을 지켜주는 ‘필수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AI)이 노동을 대체하고, 기후위기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고, 미·중 패권 경쟁으로 한국이 생존해갈 길이 더욱 불투명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시험형 인간’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한국 교육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감당할 미래 세대를 길러낼 수 없다. ‘개천 용’의 신화가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대다수가 살아가는 개천은 방치되고, 개천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조그만 시도도 무시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계층, 계급, 불평등 문제이며, 그래서 교육개혁은 경제, 복지, 노동, 수도권 집중 문제와 동시에 접근해야 할 사회개혁 사안이다. 전문직, 관료의 과도한 특권을 제한하고, 계층이동을 위한 1차 관문에 잘 진입할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그런 병목을 통과하지 못한 청년들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동의 인간화를 이루고, 숙련 축적의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교육문제의 이러한 중층성과 복잡성을 간파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몰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문재인 정부는 역대 그 어떤 정부보다 교육문제에 무관심했다. 아예 처음부터 교육문제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 했다. 교육 관료들은 교육문제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을 알면서도 정권의 무정책에 편승했다. 그러니 이들은 그전부터 그랬듯이 입시정책을 만지작거리거나 비리 대학을 사후 관리하는 일에만 주로 신경을 쓴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 논리를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으나 한국식 시험능력주의는 이데올로기이며, 불평등을 확대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교육을 무너뜨린다. 이 이데올로기의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위 배분과 보상의 원칙을 재정립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 사람을 기르는 이유, 방법과 철학을 다시 세워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학생, 교사, 교수로서 학교에서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내게 가장 익숙한 곳이고, 교육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다. 나는 두 학급밖에 없는 읍 단위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곳에서 추첨으로 중학교에 들어갔다. 대도시의 고등학교와 서울의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입학시험을 거쳐야 했다. 고시공부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으나, 다른 사람들처럼 입시 준비와 학업 경쟁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녹아 있다. 나는 외국 유학을 하지는 않았으나, 방문 연구원, 방문 교수 자격으로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잠시 머물면서 학부모와 연구자로서 그곳의 학교와 대학을 관찰하기도 했다. 나는 학생으로서는 한국에서 가장 큰 대학을 다녔지만, 교수 생활 25년 동안은 서울에서 가장 작은 대학에서 근무했다. 내가 명문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면 아마 이 책의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운 학생들이 다니는 야간 여고에서 비등록 교사 생활도 해보았고, 20대 중후반에는 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이 많은 동네로 알려진 곳의 공립 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일했다. 6월항쟁 직후 전교조 설립 직전에 이 학교에서 교사협의회를 조직하는 등 교사운동에도 약간 관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재야 연구자, 강사, 교수로 일했던 30대 중반 이후 최근까지 교사 대상의 각종 공식·비공식 모임, 교사 연수 등에 수백회 이상 강사로 나간 적이 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현장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회대 NGO대학원과 교육대학원에서 지난 25년간 교사, 활동가 들을 만났다. 이 글의 대부분은 학생, 교사, 학부모, 교수로서의 나의 경험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 책에서 각주를 달지 않은 모든 내용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나 들은 내용들이다. 대학 초년 시절 즐겨 읽었던 성래운, 이오덕 선생님의 교육평론들,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등의 저작이 교육문제에 대한 내 문제의식을 키워주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는 칼 맑스(Karl Marx), 막스 베버(Max Weber), 마이클 애플(Michael W. Apple),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프랭크 파킨(Frank Parkin) 등의 서구 사상가들의 주장이나 이론들을 오랫동안 읽어왔고, 그러한 이론들이 이 글의 분석 작업에 동원되었다. 나는 박사논문 주제인 노동을 연구하면서 교육문제는 변형된, 혹은 거꾸로 선 노동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학교교육 문제도 교육 자체의 문제와 사회문제의 두 측면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후 한국의 학계에서나 교육계, 노동운동 진영에서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은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이 책은 내가 30년 동안 독백하듯이 써온 교육 관련 칼럼, 논문, 에세이 들을 종합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게 된 좀더 직접적인 계기는 2015년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과 그 이후 발생한 여러 특성화고 학생들의 비극적인 산재 사고였다. 이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이지만, 곳곳에 교육학·사회학·정치학 영역에서 이론적으로 더 천착해야 할 쟁점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책 전반의 방향이나 서술 방식, 개인적인 능력의 한계 때문에 이론적 문제를 끝까지 밀고나가지는 못했다. 이 책은 한국의 사회개혁, 불평등 극복,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정책 제안서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으나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대학원생 제자이기도 한 많은 현직 교사들, 사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도움을 얻었다. 프랑스와 일본의 동료들로부터 자료 도움도 받았다.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분투했던 많은 교사들,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많은 교사들께 감사하고 또 위로를 드리고 싶다. 지금의 노동 및 교육현장에 대해 필자가 잘못 파악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독자나 전문가 들께서 그런 부분을 발견하면 많은 질책을 해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출판 제안을 선뜻 받아준 창비의 이지영 국장님과 편집 교정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이하림 팀장님에게도 감사드린다.

2022년 5월 1일 김동춘